[김향숙의 토닥토닥] 엄마가 보내준 신발

김향숙 작가, 교육자, 前 혁신학교 교장 / 기사승인 : 2024-08-20 08:00:02
  • -
  • +
  • 인쇄

어느새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방학은 휴식이라는 설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어 매력적일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성장하고 변화한다. 아이들에게 방학의 의미는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방학이 뜻밖의 행운을 몰고 올 때도 있다. 방학이 다가올 때쯤, 엄마가 보내준 새 신발을 신고 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자랑하던 아이가 생각난다.

그날도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산아, 어서 와. 조금 늦었네."
"신발 끈 때문에 늦었어요. 할머니가 신발 끈을 이상하게 매어주잖아요. 이건 축구화거든요. 축구를 하려면 신발 끈을 조여야 하거든요. 제가 다시 매느라 늦었어요."
"오, 그래. 축구화 끈은 그렇게 묶는구나."
"축구화는 축구 할 때 신잖아요. 근데 일반 운동화랑 끈을 다르게 매거든요."
"그렇구나, 신발마다 끈을 다르게 매어야 하는구나."

아이의 모든 에너지가 신발을 향해 있었다. 걷는 모습도 달랐다. 발을 죽죽 내밀면서 축구공 차는 흉내를 내기도 하다가 발등을 살짝 들어 올려 신발 전체가 잘 보이도록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 축구화 브랜드를 알아보지 못하는 나에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선수가 신는 축구화라고 자랑하며 우쭐거린다.

"제가 방과후 학교 축구부에 들어갔거든요." 산이는 축구화를 자랑하고 싶어 교실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며칠 후 교문에서 산이가 내 옆으로 다가와 섰다. 아이들이 뜸해진 틈을 타서 무언가 내밀며 보여주었다.

"엄마가 보내주신 실내화예요."
"어머, 눈부셔라. 산이 실내화 정말 곱다."
"엄마가 이거 신고 열심히 공부하면 저를 보러 온대요."
"오, 그래서 신발을 먼저 보내셨구나. 이 신발은 산이 엄마구나. 그치? 산이 엄마 반가워요. 산이는 학교생활을 참 잘하고 있어요."

실내화를 가만히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신발을 통해 엄마의 냄새를 맡고 있는 것 같았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산이는 엄마랑 공부하게 되어 신나겠다!"
"맞아요, 엄마는 짜증내는 걸 싫어해요. 엄마가 오면 우리말 잘하는 모습도 보여줄 거거든요."

엄마 소식이 온 날이면 산이의 발걸음이 다르다. 교문을 들어서는 산이의 신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산이의 부푼 공기를 한껏 마신다. '아, 엄마가 신발을 보냈구나.'

산이는 신발이 참 많다. 해외에서 엄마가 보내주는 신발들이다. 새 신발을 신은 날이면 산이는 내게 와서 자랑한다. 호랑이 디자인이 달린 샌들을 신고 왔을 때는 '백두산 전통 호랑이 모양'이라고 자랑했다.

"이 신발을 신으면 나도 왕이 된 것 같아요."

4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산이는 초록색 새 운동화를 신고 뛰다시피 성큼성큼 다가왔다.

"방학하면 엄마 만나러 가요. 엄마가 비행기 표도 다 예약해두었대요."

아이의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기분이 고양되고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방학만 되면 이 신발을 신고 엄마 보러 갈 거예요."

나는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엄마가 보내준 신발을 신고, 엄마에게 찾아가렴. 그 신발을 신고서 맘껏 달리렴.' 산이가 엄마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꿈에도 그리던 엄마와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 김향숙작가, 교육자, 前 혁신학교 교장 hanqqi321@naver.com  다른기사보기

핫이슈

+

ESG

Video

+

ESG

+

삼성물산, 판교 건설현장 사망사고에 사과..."모든 공사중단"

삼성물산은 29일 경기도 분당구 '판교PSM타워' 오피스텔 신축현장에서 60대 하청 노동자가 작업중 사망한 사고에 대해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고 사과한

KT "해킹 피해 고객에 5개월간 100GB·15만원 보상"

KT가 소액결제와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에 대해 5개월간 무료 데이터 100기가바이트(GB)와 15만원 상당의 통신요금 또는 단말기 교체비를 지원한다고 29일

우리금융, 차기 회장 선임 위한 공식절차 돌입

우리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는 지난 28일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경영승계절차를 공식적으로 개시했다고 29일 밝혔다.임추위는 사

"밥도 못 먹고 일해"...런던베이글뮤지엄 10대 과로사 의혹

유명 베이커리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20대 직원이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과로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직원은 지난 7월 숨졌는데 사

[APEC]전세계 유통기업들 '경주선언' 채택...'AI·친환경' 협력

전세계 유통기업 리더들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막되는 경주에서 모여 'AI·친환경·국제표준'을 미래 유통산업 발전을

하나금융, 시니어 일자리 창출 위한 도시락 제조시설 개소

하나금융그룹이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함께 시니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반찬 도시락 제조시설 '한 끼를 채우는 행복 담:다'를 개소했다고 28일 밝혔다.

기후/환경

+

목표를 이미 60% 달성?...2035년 NDC 산업 배출전망 '뻥튀기'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 과정에서 과거의 '산업부문 배출 과대추정 방식'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윤석열 정부가

해상풍력 확대한다면서..."개정된 기후부 지침서 환경·주민 배제"

정부가 개정한 해상풍력 환경성평가 지침에 환경영향과 주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이 녹색연합과 함

수입산 폐목재가 국산으로 둔갑..."REC 관리 사각지대 바로잡아야"

수입산 폐목재가 국산 원목으로 둔갑하는 등 국내 발전5사가 사용하는 폐목재의 원산지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29일 남동·남부·서부&mi

억만장자 1명 하루 800kg 탄소배출...하위 50% 하루 2kg 배출

세계 최상위 0.1% 부유층이 단 하루동안 배출하는 탄소량이 전세계 하위 50% 인구의 1년치 배출량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

[영상] 시속 298㎞ '괴물' 허리케인...자메이카 쑥대밭 만들고 쿠바行

카리브해 섬나라 자메이카가 올해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이 상륙하면서 쑥대밭이 됐다.자메이카를 강타한 허리케인 '멀리사'(Melissa)'는 카

빌 게이츠 "기후위기, 온도보다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데 집중해야"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 빌 게이츠가 "기후위기 대응은 온도제한보다 인류의 고통완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빌 게이츠는 오는 11월 브라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