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간호사 업무 확장시켜 의료현장 투입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17일째 돌아올 기미가 없는 가운데 전문의에 의과대학 교수들까지 이탈할 조짐을 보이면서 병원의 '개점휴업' 상태가 우려되고 있다.
7일 복귀한 전공의가 대전 5개 주요 대학·종합병원과 천안지역 대형병원(단국대·순천향대병원) 2명을 제외하고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복귀자보다 사직자들이 오히려 더 늘어나면서 의료공백은 더 심해진 상태다. 천안 단국대병원에서는 전날 전공의 2명이 사직서를 제출함에 따라 사직 전공의가 109명으로 늘었다.
인천 수련병원 전공의 상당수도 의료현장 복귀 대신 재계약 포기를 선택하고 있다. 인천시는 11개 수련병원의 전체 전공의 540명 중 360명(66.6%)이 근무지를 이탈하고 199명(36.8%)이 계약을 미체결한 것으로 파악했다.
옆친 데 덮친 격으로 의대 교수들마저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공동성명을 내거나 단체 사직서를 제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학장단은 이날 '의대 증원 신청'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전원 사퇴서를 제출했다. 경상국립대 의대도 전날 보직교수 12명 전원이 '보직 사직원'을, 보직이 없는 교수 2명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원광대 의대 교수들도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집단행동 가능성을 내비쳤다.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역시 성명을 통해 "수련의, 전공의, 의대생의 피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사태의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충북지역 유일의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은 전공의 151명 중 149명이 병원을 이탈한 데 이어, 최근 심장내과 교수마저 사직서를 제출했다.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충북대병원 교수들이 모인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오후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이처럼 현장을 이탈한 의료진들이 늘어남에 따라 병원은 텅텅 비어가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이탈로 환자와 수술 건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고, 환자수가 줄어들자 병원들은 병상을 줄이거나 간호사와 사무직 등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권장하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전날 입원 환자가 급감한 2개 병동을 폐쇄하고 해당 병동 의료진을 응급·중환자실과 필수의료과 등에 재배치했다. 현재 50개 병동 가운데 6개 병동이 빈 부산대병원도 유사 진료과끼리 병동을 통합 운영하기 시작했다. 동아대병원은 이미 응급실 병상을 40개에서 20개로 축소해 운영중이다.
전체 전공의의 94%가 이탈한 제주대병원도 간호·간병서비스통합병동을 2개에서 1개로 통폐합했다. 또 이번주 중 내과 중환자실 운영 병상수를 20개에서 12개(내과 8·응급 4)로 축소한다.
을지대병원 응급실에서는 의료진 부재로 피부과·정형외과·정신과·이비인후과 진료가 불가능하고, 신경외과는 평일 업무시간에만 진료를 볼 수 있다. 또 내과와 정형외과 일부 병상을 폐쇄, 축소 운영하는 한편 지난 4일부터 간호사를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대전성모병원 응급실도 성형외과·소아과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건양대병원은 간호·행정·의료기사 직군을 대상으로 연차휴가 사용을 권고했다.
7일 보건복지는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8일부터 간호사들도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응급약물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간호사 업무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내놨다.
이 보완지침은 건강 문제 확인·감별, 검사, 치료·처치 등 총 10개 분야에서 98개 진료지원 행위를 구분해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업무를 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종합병원과 수련병원의 간호사들은 사망진단, 엑스레이촬영, 대리수술, 전신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을 제외한 여러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응급상황에서의 심폐소생술이나 응급약물 투여를 할 수 있고, 혈액 등 각종 검체를 체취하거나 심전도·초음파·코로나19 등 검사도 할 수 있다.
자격시험을 통과한 전문간호사와 진료보조(PA) 간호사를 뜻한 전담간호사는 위임된 검사·약물의 처방을 할 수 있고, 진료기록이나 검사·판독 의뢰서, 진단서, 전원 의뢰서, 수술동의서 등 각종 기록물의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또 수술부위 봉합(suture) 등 수술행위에도 참여하고, 석고 붕대나 부목을 이용한 처치와 체외 충격파 쇄석술, 유치 도뇨관(foley catheter) 삽입도 가능하다. 특히 전문간호사는 중환자 대상 기관삽관·발관과 중심정맥관 삽입·관리, 뇌척수액 채취도 할 수 있다.
종합병원의 경우 간호사 업무범위를 설정한 뒤 복지부에 제출해 승인받아야 한다. 각 의료기관은 간호사 업무범위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담간호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간호부서장과 협의해서 업무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각 병원은 이 조정위원회에서 정한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지시해서는 안된다. 의료기관장이 간호사 업무를 추가했을 때는 자체 보상해야 한다. 관리·감독 미비에 따른 사고가 발생하면 최종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이 져야 한다.
복지부는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넓힌 이번 지침을 제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전공의 집단사직 후 수익성 악화로 직원 무급휴가를 시행하는 대학병원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간호인력도 여유가 있을 수 있는데, 이번에 간호사 업무지침을 다시 정함에 따라서 간호사들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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