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탄소시장 선도 '탄소 허브' 구상
싱가포르가 탄소배출권 거래소를 본격 가동하면서 민간에서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거래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8일(현지시간) 싱가포르 국제탄소배출권 거래소 '클라이밋 임팩트 X'(CIX)가 스팟 거래플랫폼 'CIX 익스체인지'를 개설하고 첫 거래를 마쳤다. 하나증권,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중국국제금융공사, 셰브론 등이 참여한 첫날 거래량은 탄소배출권 1만2000주로 마무리됐다. 시작가격은 1주당 5.36달러(약 6940원)였다.
탄소배출권 1주는 검증된 온실가스 저감사업을 통해 확보한 1톤의 감축실적을 나타낸다. 검증된 저감사업은 케냐의 카시가우 회랑 REDD+프로젝트, 페루의 코르딜레라 아줄 국립공원 REDD+ 프로젝트, 인도네시아의 림바 라야 생물다양성 보호구역 프로젝트 등 11개 프로젝트다.
싱가포르는 그동안 구축해온 역내 '비즈니스 허브' 지위를 지렛대 삼아 세계적인 탄소거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국제탄소배출권 거래주체들로부터 탄소배출권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추후 활성화될 탄소선물시장에서 가격결정자 역할을 맡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탄소배출권 거래활성화를 통해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상승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당분간 현행 저감기술이나 정책으로는 단기간에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려워 탄소배출권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고, 탄소 저감기술과 사업에 대한 발굴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기술이나 사업을 발굴하더라도 그에 따른 실적이 거래되는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면 상품성이 떨어지고, 배출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시장동력이 약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환경 원자재 시장 인프라 플랫폼인 엑스팬시브(Xpansiv)가 출범시킨 탄소배출권 거래소 CBL에서 탄소배출권은 1주당 1.15달러(약 1490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배출권 판매자들 입장에서는 5~10달러를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공인된 국제시장이 없어 체계적인 검증시스템이 부재한 탓에 '그린워싱' 사례가 급증했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탄소배출권 거래로 신뢰도가 무너져내렸다. 이에 따라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가격도 회복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싱가포르는 이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환경친화기업 '화이트리스트'를 관리하고, 이들의 실적을 세계은행이 출범시킨 데이터 플랫폼 기후행동데이터재단(Climate Action Data Trust)에 공시해 탄소배출권의 신뢰도를 높였다. 또 CIX는 CBL과 달리 거래량이 적더라도 양질의 상품성을 갖춘 탄소배출권을 발굴해 거래량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차별화 전략을 채택했다.
탄소배출권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선진국이나 기업들에 대한 규제 측면이 강했지만, 교토의정서를 통해 탄생한 청정개발체제(CDM)가 오는 12월 31일부로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른 지속가능발전체제(SDM)로 전환되면서 배출권 거래 주체가 모든 당사국, 기업, 기관, 개인 등으로 확장된다. 이에 따라 민간에서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VCM 규모는 2030년에 이르면 2020년 대비 15배 성장하고, VCM 내 탄소배출권 수요는 20억톤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CIX가 공신력 있는 탄소배출권 거래플랫폼으로 자리잡게 되면 전세계 탄소자금이 몰리면서 싱가포르는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켈 라슨 CIX 대표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탄소배출권 시장은 침체기여서 더 나은 시기를 기다릴 수 있었지만, '탄소허브'로 거듭나는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없다"며 "매번 외부요인에 휘둘리기만 하면 목표를 절대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거래소를 지금 연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에 있는 한 탄소배출권 거래업자는 "싱가포르가 배출권 거래자들이 신용할 수 없는 저감사업들을 배제시키면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처럼 탄소에 있어서도 핵심 벤치마크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읽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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