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분류와 탄소감축실적 표준화 미비가 걸림돌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이 타결되면서 생태계 보호에 있어 금융의 역할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가운데 국내 시중은행들이 이에 발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제도적 기반이 미비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합의안에 따르면 전세계는 오는 2030년까지 생태계의 30%를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보호해야 한다.
합의안을 이행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금이다. 합의안에서는 △공공 및 민간 재원으로 매년 2000억달러(약 257조원) 기금 마련 △환경을 파괴하는 정부보조금은 매년 최소 5000억달러(약 643조원) 삭감 △선진국의 개발도상국 지원금 연간 최소 300억달러(약 39조원) 증액 △다국적 기업과 금융기관의 투명성 공개요구 등 목표로 제시됐다. 한마디로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이 적극 개입해야만 달성 가능한 목표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이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기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을 핵심수단으로 언급한 바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2030년까지 현 '녹색금융' 규모를 3~6배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국내 시중은행들을 포함한 전세계 150여개 금융기업은 지난 14일 '금융과 생물다양성의 날'을 맞아 COP15에 대한 지지선언을 표명하며 생물다양성 보전에 대한 선도적 대응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금융사들은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의 보호 및 복원에 기여하고, 2030년까지 자연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 정부 및 중앙은행과 체계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담았다.
실제로 국내 시중은행들은 체계적이고, 검증 가능한 대안을 마련해 유의미한 생태계 보전 성과를 내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지속가능한 산림 관리를 통한 기후위기 대응 및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레드플러스'(REDD+) 사업을 본격화한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레드플러스는 개발도상국의 산림 보전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활동이다.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에서 제안됐고,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자연기반해법'의 대표적인 사업이기도 하다.
앞서 우리금융은 지난 6월 한국임업진흥원이 주관한 '민간분야 레드플러스 타당성 조사 지원사업' 시행 기업으로 선정돼 8월 국내 금융회사 최초로 레드플러스 타당성 조사를 캄보디아에서 수행했다. 캄보디아는 우리은행 최대 해외 네트워크 중 하나로 국제 산림협력 경험이 풍부하다.
특히 이번 사업의 탄소감축 실적은 '자발적탄소감축제도'(VCS·Verified Carbon Standard)의 '계획되지 않은 산림전용을 위한 레드플러스 방법론' 가운데 VM0006을 적용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국제적 합의에 근거해 국제산림 분야 최초 설립된 정부간 국제기구인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가 조사하고, 산림청 산하 준정부기관인 한국임업진흥원이 검토함에 따라 공신력이 매우 높은 측정 방식이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단순히 지역사회에 기부하거나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는 등의 소극적인 형태가 아니라, 사업운영 구성원으로 참여해 글로벌 산림보전 및 지역사회 삶의 질 개선 등 지속가능성 제고에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제로 카본 드라이브'(Zero Carbon Drive)를 내세우며 국제적인 친환경 금융 전략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 11월 신한금융그룹은 영국, 덴마크 등의 친환경 관련 인사들과 ESG 채권, 친환경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등에 대한 투자 기회를 발굴하고, 녹색금융 활성화를 논의했다.
신한금융은 국내 금융사 최초로 금융배출량 산출시스템을 구축했다. 금융배출량은 고객사들의 탄소배출량에 금융이 기여한 정도를 산정한 값이다. 일례로 연간 1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이 있다면 해당 기업에 대한 신한금융 대출금 및 투자금 비중이 10%일 경우 신한금융의 금융배출량은 1000톤이다. 이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한금융은 탄소배출량을 줄여나가는 기업들에 대해 투자나 대출에 있어 금리적인 혜택을 부여하면서 탄소저감을 유도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제도적 기반이 없어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으로 확장하거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생물다양성을 위해 조성된 사업에 기금을 투여한다거나, 투여하는 회사에 투자하는 정도의 간접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금융권이 직접적으로 나서 실질적인 사업으로 이행하는 부분은 미진하다"고 짚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지속가능연계대출(SLL·Sustainability-Linked Loan)을 포함해 금융을 통한 ESG 실천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지만, 한국형 녹색·사회 분류체계가 확정되고 당그룹 여신 시스템에 반영되는 기간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적용 및 확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자연기반해법 등의 표준화 작업을 통해 생물다양성 관련 정책에 반영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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