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사용감축 목표 합의도 불발
기후취약국을 위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보상을 위한 기금조성이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에서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실속없는 합의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COP27 의장인 사메 수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은 '손실과 피해' 보상을 위한 기금조성 등의 내용을 담은 총회 결정문이 당사국 합의로 채택됐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지난 6일 개막된 COP27 총회는 당초 18일 폐막 예정이었으나, 올해 처음 정식 의제로 채택된 '손실과 피해' 보상 문제를 놓고 당사국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다가 이날 새벽까지 연장된 마라톤 회의에서 극적으로 마무리됐다.
COP27 참가국들은 최종 결의문에서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즉각적이고 신속하며 지속가능한 조치를 하기로 뜻을 모았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언급된 지구 온도상승폭 '1.5도 제한' 목표도 재확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에도 합의했다.
핵심 의제였던 '손실과 피해' 보상 기금조성 문제는 총회 내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들이 극명한 입장차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합의문에 내용이 실렸다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성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열린 COP26의 결론을 재확인 차원에서 그치고 구체적인 내용도 결여됐다는 점에서 '속빈 강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게다가 이번 COP27에서 화석연료 사용감축 목표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2030년까지 메탄 30% 감축을 담은 '국제메탄서약'에 서명한 나라들은 150여개국으로 늘었지만 메탄 최대 배출국인 인도와 중국이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하기 어렵게 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올해 COP는 정의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으며, 여기서 합의한 손실과 피해 보상 기금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손실과 피해' 보상 기금 합의에 환영하면서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지구온도 상승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생 에너지 분야에 과감한 투자와 화석 에너지 사용 중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손실과 피해' 극적 합의했지만···
올해 COP27의 가장 큰 성과는 기후변화 피해를 본 개발도상국들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기금 조성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합의문은 "기후변화의 악영향은 주민의 비자발적 이주, 문화재 파괴 등 엄청난 경제적, 비경제적 손실을 유발하면서, 손실과 피해에 대한 충분하고 효과적인 대응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손실과 피해'는 기후 변화에 따른 경제적, 비경제적 손실을 뜻하는 말이다. 해수면 상승, 홍수, 가뭄 등에 의한 인명 피해나 이재민 발생, 시설 파괴, 농작물 피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실제로 올해 파키스탄은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로 1700여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조원의 피해를 입었다. 수재민은 전체 인구의 약 15%인 3300만명에 이른다. 카리브해와 남태평양의 섬나라들도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에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고 있어 보상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합의문은 큰틀에서 기금조성에 대해 합의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개도국은 선진국이 연간 1000억달러(약 132조원)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기후위기 촉발의 무한 책임을 지고 천문학적인 액수를 보상해야 할 처지에 놓은 선진국들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55개국은 지난 20년간 발생한 기후재앙으로 5250억달러(약 705조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손실과 피해' 보상기금의 상세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선진국-개도국 인사들로 구성된 준비위원회(transitional committee)를 설립해 △기금의 제도적 장치 마련 △기존 재원 확장 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내년까지 지속할 계획이다. 어느 시점부터 피해를 보상할지, 보상금 부담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등 앞으로 기금운용 방식을 놓고 계속해서 이견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2006년부터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1위인 중국도 보상해야 할 국가에서 제외돼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 석탄 단계적 감축합의는 '실종'
지구 온도 상승폭 '1.5도 제한' 목표는 재확인됐지만 화석연료 감축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도 COP27의 아쉬움으로 지적되고 있다. 석탄의 단계적 감축에 대한 명확한 후속조치도 없었다. 게다가 온실가스 배출국과 석유 수출기업 등은 로비스트를 동원해 화석연료 감축 결의를 방해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한마디로 '1.5 제한'이라는 구호만 요란했던 총회였다.
유럽연합(EU)은 이번 총회 결과에 대해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유럽의 기후정책을 조율해온 프란스 티메르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지금은 (기후 대응의) 성패가 좌우되는 시기"라며 "그런데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인류와 지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개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주요 배출국의 화석연료 사용 감축을 위한 새로운 약속이 없었다"고 혹평했다.
COP26 의장인 알록 샤르마는 "과학자들은 2025년 전에 탄소배출이 정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번 합의문에는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석탄의 단계적 감축에 관한 명확한 후속 조치와 모든 화석 연료를 단계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약속도 빠졌다"며 "마지막의 에너지에 관한 문구가 최종 순간에 약화했다"고 설명했다.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무장관은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국과 산유국들이 온실가스 저감과 화석연료 에너지 이용의 단계적 중단을 방해하는 것을 지켜보고 크게 좌절했다"고 밝혔다.
기후 위기를 겪는 몰디브의 아미나스 쇼나 기후변화장관은 "손실과 피해 보상에 합의한 것은 역사적인 진보"라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1.5도 목표를 살아 있게 만들어야 하고 2025년까지 배출량이 정점을 찍도록 해야 하며 화석 연료 사용을 단계적으로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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