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부른 '에너지 전쟁'…탄소배출 감축 노력도 '헛수고'

백진엽 기자 / 기사승인 : 2022-07-27 08:00:02
  • -
  • +
  • 인쇄
역사적 폭염으로 전세계 전기사용량 급증
"겨울 오기전 가스 확보해야"…에너지위기
석탄화력발전 늘리기도…기후위기 악순환


재앙처럼 지구촌 곳곳을 덮친 살인적 폭염이 전세계를 다시 '에너지 전쟁'으로 몰아넣으면서 그간의 탄소감축 노력도 무위로 만들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득이나 에너지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폭염으로 전기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주요 국가들은 에너지 확보와 전기사용량 절감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 폭염으로 전기사용 급증…"겨울이 더 문제"

유럽과 미국의 폭염 상황은 좀체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 영국 링컨셔의 코닝스비 영국공군기지의 기온은 40.3도까지 오르면서 영국 역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히드로 공항도 40.2도, 서리의 찰우드가 39.1도, 북쪽에 위치한 스코틀랜드까지 35도 가까이 오르는 등 영국 전역이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7월 평균 기온이 20~25에 불과해 에어컨 보급률이 5% 수준인 영국인들에겐 이번 폭염이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다. 응급환자가 급증하고, 도로가 녹아내리고, 철로가 휘고, 전선이 녹아 정전이 발생하는 일은 예사가 됐다.

영국뿐만 아니다.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아일랜드 등 유럽 전역이 모두 펄펄 끓고 있다. 포르투갈은 한때 기온이 47도까지 오르기도 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도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국도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의 최고 기온이 37.8°C까지 올라 89년만에 이전 최고기록(36.7°C)을 갈아치웠다. 뉴욕 인근에 있는 뉴저지주 뉴어크는 5일 연속 37.8°C를 넘어 1931년 이후 최장기 기록을 세웠다. 동부연안이 아닌 캔자스주,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와 같은 중서부 지방과 캘리포니아주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 텍사스주, 테네시주도 뜨겁긴 마찬가지다.

일본도 6월부터 도쿄 기온이 35~36도를 넘나드는 등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열사병 환자가 속출했고, '열사병 보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폭염은 어떻게 넘긴다고 하더라도 겨울이 오면 에너지 위기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유럽의 경우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현재 러시아는 EU의 반(反) 러시아 동맹, 그리고 대러 제재 등에 맞서 천연가스 공급을 크게 줄였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대적하는 국가에게 에너지를 무기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록적 폭염으로 인해 여름부터 에너지 사용이 크게 늘면서 EU 국가들은 '히터없는 겨울'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 "최대한 확보하고 사용 절감하라"…에너지 전쟁 시작됐다

지난 5월 EU는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리파워EU'라는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수입원을 다각화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찾아온 폭염으로 인해 이같은 정책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제대로 준비를 갖추기 전에 폭염으로 인해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당장 살기 위한 방안을 찾으려 할 것이라는 뜻이다. 헝가리가 최근 러시아를 찾아가 가스 공급을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문제는 비단 유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EU 국가들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처 다변화에 나서고 있고, 이는 가스 가격 상승 가속화로 이어진다. 결국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가스와 에너지 확보라는 전화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에너지 확보 경쟁과 동시에 절감을 위한 정책도 펼치고 있다. 프랑스는 상점에서 에어컨을 가동할 경우 문을 열지 못하도록 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 750유로(약 100만원)를 부과한다. 이밖에도 △소매점 영업종료 직후 간판 소등 △공공시설 적정 실내온도 지정 △철도 및 공항 제외 오전 1~6시 전광판 광고 금지 등의 조처가 시행될 예정이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심야 시간대 신호등을 끄는 방안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제한 속도로 유명한 ‘아우토반’의 최고속도를 시속 130㎞로 제한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시장 평균보다 더 많은 전기와 가스를 쓴 가정에 페널티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 "우선 살아야"…기후위기 늦추려는 노력 허사되나

한편 이번 폭염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들을 수포로 돌리고 있다. 가스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석탄이라는 탄소배출이 많은 화석연료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최근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대기오염의 주범인 갈탄을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오스트리아는 겨울철 전력난에 대비해 2020년 중단한 석탄 발전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도 3월 운영을 중단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리스의 국영 에너지 회사는 석탄 사용량 감소 이행 시점을 늦추려 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때 이른 폭염을 겪은 뒤 석탄 발전량을 늘렸다.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인 중국도 충분한 전력공급 능력 확보를 위해 석탄 생산과 발전을 확대하는 추세다. 인도 역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면서 석탄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야기된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가 다시 탄소배출을 늘리는 악순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이젤 아넬 영국 레딩대학 기후과학 교수는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2050년대까지 2~3년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지구기온이 금세기 말까지 2도 이상 오르면 그 빈도가 더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ESG

Video

+

ESG

+

[최남수의 ESG풍향계] '아리셀' 판결이 던진 과제

지난해 6월에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에 대한 1심 재판 결과가 지난 9월 23일에 나왔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위반한 이 회사

'종이제안서' 없앤다...서울시, 지자체 최초 '온라인 평가' 도입

서울시가 제안서 평가를 통해 계약상대자를 결정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에서 '제안서 온라인 평가제도'를 시행한다고 10일 밝혔다.이번 제도는 전국 지

경기지역 수출 중소기업 "탄소배출량 산정·검증 어려워"

여전히 많은 수출기업이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배출량 산정·검증 절차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경기도 '기후행동 기회소득' 사회적 가치 1015억 창출

경기도가 '기후행동 기회소득' 사업이 지난해 총 1015억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10일 밝혔다. 국내 지방정부가 특정 정책사업의 환경적·경

브라질, COP30 앞두고 '열대우림 보전기금' 출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 의장국인 브라질이 열대우림 보전 주도에 나선다.6일(현지시간) COP30 홈페이지에 따르면 '세계 지도자 기후

"자연자본 공시...기후대응 위한 기업·정부 공동의 과제"

6일 서울 삼성동 웨스틴서울 파르나스에서 '녹색금융 시장의 확대와 다변화'를 주제로 열린 '2025 녹색금융/ESG 국제 심포지엄' 세션3에서는 자연기반 금

기후/환경

+

'2035 NDC' 53~61% 감축안 탄녹위 통과...국무회의 의결만 남았다

2035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2035 NDC)이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안으로 굳어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10일 오후 3시 전

[COP30] 개방형 '배출권거래제' 논의...브라질-EU-中 등 연합체 결성

탄소배출권을 사고파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기준이 전세계적으로 통일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앞서 브

10년간 기후난민 2.5억명...절반이 올해 기후재난으로 발생

올해 전세계적으로 1억1700만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지난 10년간 발생한 전세계 기후난민 2억5000만명의 절반에 달한다.기후난민

ICJ “기후방치는 인권침해”… COP30 협상 지형 흔든 판결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국가의 기후변화 방치를 인권침해로 볼 수 있다는 자문 의견을 내놓으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협상에 새

'종이제안서' 없앤다...서울시, 지자체 최초 '온라인 평가' 도입

서울시가 제안서 평가를 통해 계약상대자를 결정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에서 '제안서 온라인 평가제도'를 시행한다고 10일 밝혔다.이번 제도는 전국 지

나흘만에 또 '괴물 태풍'...필리핀 230㎞ 슈퍼태풍에 '초토화'

태풍 '갈매기'에 이어 최대 풍속 230㎞/h에 달하는 슈퍼 태풍 '풍웡'이 필리핀을 또 강타했다. 풍웡은 홍콩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봉황(鳳凰)을 뜻하는 광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