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소수자와 비슷...인간과 동물은 동등"
지구온난화로 서식지를 잃어가는 북극곰, 한반도에서 사라진 호랑이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려 찾아가봤다. 바로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고상우 작가의 개인전 'Forver Free-그러므로 나는 동물이다' 전시회. 국내에서 멸종위기종을 주제로 전시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고상우 작가(44)는 "인류가 개발을 위해 무분별하게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이 동물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행동에 경각심을 불어넣고 싶었다"며 전시회 개최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멸종위기종도 인간이 지배하는 지구에서 결국 소수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멸종위기 동물이나 소수자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어릴 때 건너간 미국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수없이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대체로 파란색인 것도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암실에서 사진작업을 할 때 동양인 피부는 인화하기전 파랗게 보인다는 점을 발견하면서 이후부터 파란색을 사진작품에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멸종위기 동물도 인종차별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파랗게 표현했다. 이번 전시된 디지털 회화 34점과 드로잉 138점, 영상 2점에 담긴 멸종위기종들도 대체로 파란색으로 표현돼 있다.
고 작가는 멸종위기종과 직접 눈을 맞춘 후 작품에 담아냈다. 그래서 그는 멸종위기종을 만나기 위해 미국과 동남아, 유럽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2017년에는 태국 치앙라이 엘리펀트 밸리 서커스에서 구출된 아시아 코끼리 6마리를 만나 교감했다.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서울대공원을 방문해 오래동안 눈을 맞추고 교감을 시도했다. 만약 10초안에 동물이 눈을 피한다면 그는 교감에 실패했다 생각해 작품에 담지 않는다.
고 작가는 "야생동물들은 눈을 마주치기 매우 어려워 서울대공원이나 미국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을 방문했다"며 "교감에 실패하면 며칠동안 동물원을 계속 방문해 교감에 성공한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도저히 눈맞춤이 어려운 동물은 다큐멘터리를 참조했다. 이번 진시회는 3년동안 멸종위기종들과의 눈맞춤을 통해 만든 결과물이다.
고상우 작가는 "눈맞춤을 통해 멸종위기종들의 상황에 이입하다보니 작품을 만들면서 슬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얼음물이 떨어지는 곳에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북극곰 작품 '동굴'은 너무 슬퍼서 작업을 몇 번이나 중단했다고. 그는 "멸종위기종들의 작품을 그릴 때 힘든 동물들을 더 잔인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멸종위기종을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을 관람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정면초상화' 즉 관람객들을 똑바로 응시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관람객들은 동물이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고 작가는 "정면초상화를 통해 동물에 귀족적인 느낌을 부여해 동물과 관람객인 인간이 수평적 관계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시된 작품을 보니 동물들이 모두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녹아내리는 고드름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으며 정면을 바라보는 북극곰, 정면을 매섭게 응시하는 호랑이, 사자, 표범 등 디지털 회화 작품 모두 정면 초상이었다. 그 눈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슬퍼보였다. 멸종위기종들이 기후위기에서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듯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았다.
고 작가 작품의 또다른 특징은 멸종위기종의 눈이나 얼굴에 하트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비무장지대(DMZ)의 철조망 뒤에서 서있는 백두산 호랑이를 그린 작품 'Black Star(검은별)'는 오른쪽 눈 주변에 분홍색 하트가 그려져 있다. 이에 대해 고 작가는 "DMZ에는 무려 101종의 멸종위기종과 5929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며 "통일이 되더라도 이곳의 멸종위기종들이 보존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트를 그렸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표범을 그린 '레오 LEO' 작품에는 왼쪽눈을 반짝반짝한 다이아몬드로 표현됐다. 이 다이아몬드 눈은 인간의 욕심으로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동물의 서식지가 심하게 파손되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다. 1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기 위해서는 256톤의 광물이 채굴되어야 한다.
고 작가는 "전시회를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환경단체나 환경관련 관계자분들인데 환경에 관심이 없는 일반 시민들이 많이 와서 멸종위기종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전시회를 통해 인간이 파괴하는 환경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지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특히 멸종위기종의 현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체불가토큰(NFT)을 제작하기도 했다. 지난달 롯데호텔과 NFT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해 100개 이상의 NFT를 판매했다. 고 작가는 "NFT는 MZ세대에게 관심이 많다"며 "처음엔 예뻐서 작품을 구매했다가 작품의 의미를 알게 돼 멸종위기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들도 더러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작품들은 개인보다는 영향력있는 기관·기업이나 인플루언서들 위주로만 구매하고 있다.
그는 향후 멸종위기종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다양한 동물을 그릴 예정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토끼와 소를 담은 작품을 전시했다. 이유는 토끼의 경우 화장품 실험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고, 소는 일평생 인간을 위해 쓰여지고 죽기 때문이다.
고 작가는 "인간과 동물은 상위 개념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공존해야 한다"며 "인도나 네팔에서 개체수를 늘리고 있는 Tx2 프로젝트등과 같은 활동에 많은 분들의 기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Tx2 프로젝트는 호랑이 서식국가와 국제환경보호단체 등과 함께 2010년 대비 2022년까지 전세계 야생호랑이 개체수를 2배로 늘리려는 행동계획이다.
고상우 작가는 시카고예술대학교에서 사진과 회화를 전공했으며, 음영과 색이 반전되는 네거티브 효과를 사용한 사진작품으로 '푸른색 사진예술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북경무역센터, 런던 제임스 프리만 갤러리, 암스테르담 완루이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베이징비엔날레와 대구사진비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2009년 뉴욕 AHL재단 아시아 현대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전시회는 사비나미술관과 세계자연기금(WWF) 한국지부 공동주최로 개최됐으며, 오는 9월 1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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