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위치한 페이퍼팝에 들어서자 곳곳에 종이로 만든 가구들로 가득차 있는 사무실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종이로 만든 노트북 거치대, 종이로 만든 칸막이, 종이로 만든 책장. 국내 유일의 종이가구 회사의 명성만큼 온 공간이 종이들로 가득했다. 사무실 한켠에는 골판지들이 천장까지 쌓여있어 이곳이 택배센터인지 사무공간인지 순간 헷갈렸다.
특히 수십권의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이 눈에 띄었다. 종이로 만든 책장이 저렇게 많은 책들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기자에게 한 직원이 살짝 다가와 "종이가구는 최대 150kg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며 빙긋 웃었다.
일반적으로 '종이 가구는 견고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종이는 쉽게 찢어지고 무게에 약하다는 선입견 때문일거다. 또 종이 가구는 물에 약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하지만 페이퍼팝에서 제작한 종이 가구들은 이런 선입견을 무참히 깨트렸다. 나무로 만든 가구만큼 단단할 뿐만 아니라 표면에 방수처리를 해서인지 물에도 강하다.
2018년 국내 최초로 종이 가구회사인 '페이퍼팝'을 설립한 박대희(35) 대표는 종이로 가구를 만들기로 작정한 동기를 묻자 "환경에 대한고민의 결과"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사를 한번씩 할 때마다 사용하던 가구를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버려진 가구들은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되는데 이는 엄청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고 했다.
페이퍼팝의 타깃은 명확하다. 이사를 자주 해야 하는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다. 박 대표는 "이사가 잦은 1인가구들이 버리는 가구 양은 어마어마하다"며 "종이가구를 사용한다면 버리는 가구들을 모두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1인가구를 타깃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 1인가구의 비율은 전체 2092만가구의 31.7%에 달한다.
종이가구 사용처는 의외로 다양했다. 일상속 가구 외에도 축제나 전시회 등에서도 활용 가능하다. 박대희 대표는 "종이로 만든 가벽이나 책상 등을 사용하면 전시회가 끝나도 쓰레기로 버리지 않아도 된다"면서 "전시회 기간에 사용한 종이 가구와 물품은 다시 수거해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페이퍼팝 제품들은 기업 주문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페이퍼팝은 현재 34종의 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페이퍼팝의 종이가구 재활용률은 무려 95%에 달한다. 재활용률을 우선 순위에 두고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재활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가구는 염색을 하지 않는다"면서 "또 코팅도 겉면만 하고 안쪽에는 모두 재생 골판지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자석이나 부가적인 플라스틱들은 오려낼 수 있다.
실제로 전시회 폐기물은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전시회를 마치면 수백톤의 종이, 목재, 가죽, 나일론, 스티로폼, 플라스틱 등이 배출되는데 이를 소각하면 다이옥신, 납, 수은 등의 독성물질이 발생한다. 부스 1개에서 나오는 폐기물의 양은 270kg에 달할 정도다.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에서 발생하는 전시폐기물은 1회당 평균 20톤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축제에서 사용됐던 가구들도 대부분 폐기처분된다. 이에 페이퍼팝은 접이식 종이의자를 만들었다. 의자의 등받이는 평평하게 접어서 다시 사용할 수 있고, 100% 재활용 가능하다. 페이퍼팝은 재즈축제를 비롯해 한강몽땅축제 등에 이 의자를 납품했다.
일본은 이미 종이가구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도쿄올림픽에서 골판지 침대로 전세계의 조롱을 사기도 했지만 일본 국민들 실생활에선 종이가구가 흔하게 쓰인다. 박 대표는 "종이가구는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50년전부터 제작돼 왔다"며 "그런 일본 소비자들이 페이퍼팝 제품을 찾는다"고 자랑했다. 그 이유는 일본 종이가구 제품보다 저렴하고 품질이 좋기 때문이라고.
페이퍼팝 가구들은 자동차 엔진 블록이나 수출용 중화물 포장재에 사용되는 고배합 골판지로 만든다. 이 골판지는 일반 택배상자보다 2배에서 3배 튼튼하다. 박 대표는 "나무만큼 단단한 소재로 저렴하게 만드는 것이 페이퍼팝만의 전략"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게다가 트렌디한 디자인도 강점이다. 실제로 종이 침대의 가격은 7만9000원으로 유명가구 브랜드인 이케아보다 50%~70% 저렴하다.
박 대표는 "앞으로 1인가구뿐 아니라 일반 가구 시장을 겨냥한 제품도 개발할 예정"이라며 "전시용품이나 펫용 등 다양한 제품으로 일본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 등지에 수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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