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낳은 '우크라이나 전쟁'...우려가 현실됐다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2-28 17: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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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너지 안보위기가 불러온 '우크라 사태'
에너지 수요 떨어지는 봄...러 제재 탄력받을 것
▲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재한 러시아인 주최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의 처음과 끝은 '기후위기'라는 분석이다.

기후위기가 전쟁의 위협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전망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2004년 영국 주간지 옵저버(The Observer)는 미국 펜타곤으로부터 한 비밀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문건은 조만간 기후변화가 국제안보에 미칠 위협이 테러리즘을 능가한다는 예측을 골자로 한다.

보고서는 2020년을 전후로 기후변화가 큰 가뭄과 기근을 불러일으키면서 식량이나 식수 등 자원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탓에 지정학적 갈등이 잦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때 기후변화가 특정 임계점을 넘어서면 3~5년내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특히 중국과 인도의 갈등이 핵전쟁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아래에서 발간됐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 기후·에너지 안보위기가 불러온 사태



지난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이같은 예측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아틀란틱 카운슬(Atlantic Council)에 따르면 2020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는 사상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이상기온으로 가뭄이 지속되면서 같은해 우크라이나는 서울시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57만ha 규모의 겨울작물이 피해를 입었다.

우크라이나의 국기는 하늘과 밀을 상징하는 하늘색과 노란색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적인 곡창지대 중 하나로 꼽히는 우크라이나는 예부터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려왔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농작물 수확량이 전년대비 16% 감소하면서 곡물가격이 불안정해졌고, 이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불안이 나타나면서 러시아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내줬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기조가 러시아와의 협상력을 저하시키면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벌어지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11일 ABC뉴스에 따르면 미국석유협회(API) 대변인과 미국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리사 머카우스키(Lisa Murkowski)는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위기 대응 명목으로 화석연료 생산을 감축하면서 유럽의 에너지 안보에 구멍이 생겼고, 러시아가 천연가스 송유관을 움켜쥐고 유럽을 위협할 수 있도록 역내 입지를 강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미국 기후안보센터(Center for Climate and Security) 부소장 에린 시코르스키(Erin Sikorsky)는 "단기적인 위기와 장기적인 전략을 혼동해선 안된다"면서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유럽의 에너지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조처를 취해야겠지만 이는 더 신속하게 재생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화석연료 생산 감축 자체를 문제삼아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양측 모두 지나친 에너지 의존도가 화를 불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 러시아 천연가스에 코가 꿰인 EU



특히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코가 꿰인 상태다. 이 때문에 EU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며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유럽 집행위원회(EC) 교통·에너지 총국에 따르면 EU는 천연가스 최대 수입국이며, 전체 천연가스 수입량의 41%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4일 세계 원유거래의 기준이 되는 대표 유종 브렌트유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천연가스 가격은 51% 급증하면서 EU의 에너지 위기는 가중되고 있다.


1960~1970년대 영국 북해 가스전과 네덜란드 가스전이 고갈됐다. 같은 시기 EU는 공격적인 탄소저감정책을 시행했다. 석탄화력발전량을 대폭 줄였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 의존도도 줄였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하면서 EU는 압도적 가격경쟁력 우위에 있던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경로를 넓혀나갔지만, 공급망 전체를 다변화하지는 못하면서 EU의 대(對)러시아 의존도는 높아만 갔다.

하지만 천연가스는 EU와 동시에 러시아 쪽으로도 칼날이 서 있는 양날의 검이다. 러시아 경제 역시 천연가스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러시아의 국가 총수입의 30%가 화석연료 기업에서 비롯했고, 여기에는 유럽에 수출한 400억달러(약 48조1694억원) 규모의 천연가스도 포함된다.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올렉시 혼차렌코는 "우리는 실질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며 "러시아산 석유·천연가스에 대한 금수조치가 필요하다. 수입되는 러시아산 석유 매 배럴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피를 채워 사고 파는 것과 같다"고 밝힌 바 있다.


◇ EU 재생에너지 전환여부가 전쟁 승패좌우



실제로 봄이 가까워질수록 러시아산 화석연료 금수조치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같은 온대기후에 속한 아시아권의 날씨도 풀리면서 난방 수요가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EU 차원에서 미국과 카타르 등을 통해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망을 넓혀가고 있어 늦가을까지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러시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덕택에 외환보유금액이 6300억달러(약 758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서방의 제재가 큰 압박으로 작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러시아를 실질적으로 압박하려면 올해 이후에도 천연가스에 대한 제재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EU가 재생에너지 전환을 얼마나 빨리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EU 차원의 새로운 에너지 전략이 오는 3월 2일 공개될 예정이다. EU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 비중을 40% 줄이고, 유럽 에너지 기업들이 여름내 천연가스를 확보해 겨울에 대비할 수 있도록 비축분을 할당할 전망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Jens Stoltenberg)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뮌헨안보회의에서 "EC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일은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정치적 도구로 삼는 것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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