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생에너지 공급부족탓에 'RE100' 달성못해
국내 탄소배출량 2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RE100과 관련해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민간기업의 자발적 선언인 'RE100'에 왜 국내 1위 삼성전자는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을까.
그동안 삼성전자는 'RE100에 왜 참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국내 사업장은 제도와 여건을 고려해 향후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지속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라며 "RE100가입 선언은 현재 다양한 요건을 고려해 검토중"이라는 원칙적인 답변만 했다. 여기에는 국내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국내 여건이 반영돼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미국과 유럽, 중국 사업장에서는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설비 설치, 재생에너지 인증서 구매(REC), 재생에너지 구매계약(PPA), 재생전력 요금제(GP) 등 지역별 상황에 맞는 방법을 통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100 선언에 주저하는 이유는 삼성전자가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고 있는 국내 사업장 때문이다.
그린피스 추산에 따르면 2020년 삼성전자의 국내 전력 소비량은 17테라와트시(TWh)다. 이는 삼성전자 전세계 사업장 전력 소비량의 약 70% 수준이다. 같은 기간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37.8TWh다. 즉 삼성전자가 국내 사업장의 사용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45%가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재생에너지 인증서 구매(REC), 재생에너지 구매계약(PPA) 등 대체수단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제도들은 가격 등의 문제로 기업들이 꺼리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1REC(1MWh) 거래가격은 최근 5만원대 중반까지 올랐다. 저점이던 지난해 8월 2만9000원대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오른 상황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직접 구매할 수 있는 PPA 제도는 지난해 10월부터 허용되기는 했지만 한전의 높은 전력망 임대료 요구 등으로 인해 기업들에게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여러 상황에 발목이 잡힌 삼성전자는 국내 사업장의 100% 재생에너지 달성에 대한 확신을 하지 못했고, RE100 선언을 하기 힘들었다는 분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삼성전자를 이끌던 경영진들을 중심으로 '선언만 해놓고 지키지 못할 경우 돌아오는 역풍을 고려해야 한다'며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내 상황을 이유로 계속 미룰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구글, 애플 등을 비롯한 삼성전자의 글로벌 주요 거래업체들은 RE100을 달성하지 않는 기업의 부품은 쓰지 않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도 탄소국경조정세 등을 통해 화석연료 비중이 높은 기업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삼성전자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네덜란드연기금 등 글로벌 투자기관들은 삼성전자에게 RE100 선언 등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유경 APG 아시아태평양 책임투자 총괄이사는 최근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 10곳에 서한을 보내면서 "글로벌 투자자 사이에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가 큰만큼, 이제는 국내 기업들도 탄소배출량을 실제로 감축해야 하고, 이행 계획을 주주와 소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상황도 점차 나아질 전망이다. 우선 여야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이재명 후보의 경우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50% 가까이, 윤석열 후보는 25% 정도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비중은 6.6% 수준이다. 이를 재생에너지 발전량으로 단순 계산할 경우 이 후보 공약대로라면 연간 320TWh, 윤 후보의 경우 160TWh 정도로 늘어난다. 아울러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정부도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독려하고 제도도 지속적으로 정비할 방침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RE100 선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올해부터 새로운 사장단 출범과 맞물려 ESG 경영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만큼 전보다 RE100 선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 DS부문 한 직원은 "삼성전자가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RE100 선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폄훼되는 것 같다는 우려가 직원들 사이에서 있다"며 "여러 사안들을 고려해 경영진이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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