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경전시대 연 '운허스님' 그리고 독립운동가 '이시열'

뉴스트리 / 기사승인 : 2021-05-24 12:28:22
  • -
  • +
  • 인쇄
[독립운동가 이야기] 운허 대스님
'유교-대종교-불교' 회통한 종교인
경기도 남양주 광릉(光陵)에서 멀지 않은 곳. 맑고 탁 트인 운악산 자락에 교종본찰(敎宗本刹) 봉선사(奉先寺)가 있다. 이곳은 일주문(一柱門)부터 남다르고 흥미롭다. 일주문 편액은 한자 가로쓰기가 아니라 한글 세로쓰기다. 두 줄로 쓴 '운악산 봉선사'의 한글 서체가 보는 이를 미소짓게 한다. 봉선사는 대웅전 대신 '큰법당'이라 이름짓고 편액도 한글로 만들어 걸었다.

큰법당 기둥에 써붙인 주련(柱聯)도 한자가 아니라 한글이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물을 모두 마시고 /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하고'.

▲봉선사는 대웅전 대신 '큰법당'이라고 한글로 써있다.


1970년 봉선사 주지였던 운허(耘虛. 1892~1980) 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한자 대신 한글로 편액을 걸었다. 우리나라 사찰 법당 가운데 최초의 한글 편액이다. 당시로선 파격이다.

'큰법당' 글씨체는 단정하고 원만하다. 큰법당 편액은 서예가 금인석씨의 글씨다. 큰법당 주련의 글씨는 석주(昔珠) 스님의 것이다. 큰법당 뒤편 조사전(祖師殿)에도 한글 주련이 붙어있다. '이 절을 처음 지어/ 기울면 바로잡고/ 불타서 다시 지은/ 고마우신 그 공덕'이다. 그 내용 또한 소박하고 진솔하다.

운허 스님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경찰의 추격에 몸을 피하기 위해 1921년 '박용하'라는 가명으로 불교에 귀의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원래 이름은 '이학수'였지만 항일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대종교에 입교하면서 이름을 '이시열'로 바꿨다. 광복 이후인 1962년 '이운허'로 개명했다.

▲ 운허 대스님
그래서 '이운허'보다 '이시열'이라는 이름으로 항일독립운동 기록에는 더 많이 등장한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운허 스님은 1911년 대종교에 입교하는 동시에 비밀결사대 '대동청년단'에 가입했다. 이때 호를 '단총' 이름을 '이시열'로 바꿨다.

'이시열'은 '광한단' 단장으로 1920년 12월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와 독립운동 방법을 협의했다. '흥사단'에 가입한 후 국내 각 단체들과 연락목적으로 국내 잠입했다가 일제에 발각되면서 추격을 피해 금강산으로 가던 중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 소재 봉일사로 피신했다. 이때 '박용하'라는 이름으로 은천선사에게 사미계를 받았다.

광복 후에도 '이시열'은 대종교 총본사로부터 1946년 2월 23일자로 '지교', 두달 뒤인 4월 24일자로 '상교'의 교질을 제수받았다. 통상 지교에서 상교까지는 5년이 걸리는데 이시열의 대종교단 내에서의 위치와 교리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이시열은 비록 불교에 귀의했지만 과거 동창학교 시절 '단애 윤세복' 종사와의 인연으로 대종교단과 아주 긴밀한 인연을 이어갔다. 불교인으로서 대종교의 교질을 받았다는 점은 홍암 나철 대종사의 유훈인 종교다원주의를 실천한 인물로서 큰 의미가 있다.

대종교와 인연이 깊었던 불교인으로 '한용운'과 '김법린'을 들 수 있다. '한용운'은 나철 대종사의 유고집을 간행하려다가 미완에 그쳤을 정도로 대종교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김법린'은 대종교 청년이었던 국어학자 '권덕규'와 독립투사 '서상일'의 영향을 받고 훗날 조선어학회에도 참여했다.

봉선사에는 운허 스님과 춘원 이광수와의 인연도 깃들어 있다. 운허 스님과 춘원은 6촌간이다. 이광수가 친일 변절자의 오명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끼던 광복 직후, 운허 스님은 잠시 봉선사에 묵을 곳을 마련해줬다. 그리고 법화경을 통해 이광수를 불교의 세계로 이끌어줬다. 이광수는 6‧25전쟁 때 납북됐지만 이런 인연으로 1975년 봉선사에 이광수 기념비가 세워졌다.

운허스님이 본래 대종교인이었고 대종교의 한글학자인 이극로, 최현배, 이병기등과 깊은 교류를 했다. 운허스님의 불경의 한글번역과 봉선사의 한글 현판도 이와 무관치 않다. 법정 스님은 1960년대 운허 스님과 함께 불경을 번역하며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종교인 이시열이자 불교의 운허 스님. 그는 팔만대장경과 수많은 불경을 한글로 번역해 불자들이 불경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한 큰스님이었다. 또 1910년~1930년대 서간도 지역에서 민족교육과 독립투쟁에 일조한 독립운동가이자 '유교-대종교-불교'를 회통한 종교인으로, 후대에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글/ 민인홍
  법무법인 세종 송무지원실 과장  
  대종교 총본사 청년회장
  민주평통 자문위원(종로구협의회)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ESG

Video

+

ESG

+

英자산운용사, HLB에 2069억 투자…"신약허가 모멘텀 탄력 기대"

영국계 글로벌 자산운용사 LMR파트너스가 HLB그룹에 1억4500만달러(약 2069억원) 규모의 전략 투자를 진행한다. HLB의 간암신약 재신청과 담관암 신약허가

인적분할 완료한 삼성바이오...'순수CDMO' 도약 발판 마련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적분할 절차를 마치고, 본연의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순수(Pure-play) CDMO' 체제로의 전환을 완료했다고 3일 밝

[ESG;NOW] 재생에너지 12% 롯데칠성...목표달성 가능할까?

우리나라 대표 음료회사인 롯데칠성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을 60%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2025년을 두달 남겨놓고 있는 현 시점

CJ제일제당, 유럽 인조잔디에 '생분해 플라스틱' 공급

CJ제일제당이 유럽서 생산되는 인조잔디 충전재에 생분해성 바이오 소재 'PHA'를 공급한다.CJ제일제당은 스웨덴 바이오소재 컴파운딩 기업 'BIQ머티리얼

남양유업, 포장재 전환 '속도'…42종 ‘지속가능성 A등급’ 달성

남양유업이 주요 제품 포장재 42종에 대해 '지속가능성 A등급' 인증을 받았다.남양유업은 사단법인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으로부터 대표 제품

"한달짜리 계약에 CCTV로 감시까지"...런베뮤 산재 '63건'

직원 과로사 의혹이 불거진 유명 베이커리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오픈 이래 63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근로계약을 매달 작성하고, CCT

기후/환경

+

또 새벽에 '흔들'...아프간 규모 6.3 지진에 주택 '와르르'

9월과 10월에 세차례에 걸쳐 지진이 발생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11월 초부터 또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했다.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3일(현지시

中 '기후리더' 노리나?...'석탄 1.5억톤과 탄소 4억톤 감축' 깜짝 발표

중국이 향후 5년간 석탄 사용을 1억5000만톤 줄이고 이산화탄소 4억톤을 감축하겠다는 탄소절감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중국 신화통신과 차이나데일리

호주 야당 '2050 넷제로' 지지 철회…총선 앞두고 입장 뒤집기?

호주 보수 야당이 당론으로 채택했던 '2050 넷제로(Net-zero)' 목표를 공식 철회했다. 이는 호주 정부가 수립한 '2050 넷제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철새들 월동지 '주남저수지' 11월 생태관광지로 선정

기후에너지환경부가 11월 이달의 생태관광지로 창원 주남저수지를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한국의 습지는 시베리아․몽골고원 등의 대륙과 일본·

삼성물산, 카타르 탄소압축·이송설비 공사수주..."최소 1.9조"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이 카타르의 초대형 탄소 압축·이송설비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삼성물산은 카타르에너지LNG(QatarEnergy LNG)가 발

[날씨] 또 찾아온 '가을 한파'...강풍에 체감온도 '뚝'

'가을 한파'와 함께 11월 첫주를 맞이했다.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2일부터 찾아온 추위는 4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아침 기온이 5∼10℃가량 크게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