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기업의 허위 친환경 마케팅을 막기 위해 추진해온 '그린 클레임 지침(Green Claims Directive)' 입법이 무산될 처지다.
지난 2023년 3월 처음 제안된 이 법안은 '에코' '친환경' 등 근거없는 홍보 문구를 규제하고, 기업이 주장하는 환경성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검증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유럽의회 제1당인 유럽국민당(EPP)이 공개서한을 통해 철회를 요구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같은 요구에 유럽연합집행위원회 대변인 마치에이 베레스테츠키는 지난 2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현 상황에서 집행위는 '그린 클레임 제안' 철회를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이 사안을 놓고 이사회·의회·집행위 3자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나온 돌발 발표였다.
집행위는 뒤이어 낸 입장문에서 그린 클레임 지침을 철회하는 배경에 대해 "집행위의 '규제 간소화 기조'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3000만개에 달하는 초소형 기업(micro-enterprise)이 규제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문제를 들었다.
그러나 집행위의 이같은 입장 번복은 그동안 법안 추진에 참여해온 각국 정부와 유럽의회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EU측 협상 대표인 산드로 고지는 "의회는 협상 중단을 요청한 적이 없다"며 "협상 지속 여부는 특정 정당이 아닌 공식 보고자들의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유럽의회는 해당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연합 조사에 따르면 EU 내 환경 관련 상표·문구의 53%는 신뢰할 수 없거나 모호했으며, 40%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안은 자발적 환경 주장을 하는 모든 기업에 대해 과학적 근거 제시와 독립적인 제3자 검증을 의무화하고, 환경 라벨도 EU 차원 인증 체계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토록 하고 있었다. 이는 기존 소비자 보호법과 병행되는 장치로 '친환경' 등의 일반 문구를 넘는 세부 주장을 사전에 심사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집행위의 입장 변화 직후,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정부도 돌연 "제안안 채택에 반대하며 철회를 지지한다"고 이사회 의장국에 공식 통보하면서 협상은 완전히 중단됐다. 결국 24일로 예정됐던 협상은 무산됐다.
이번 사태는 유럽연합이 오랜 협의 끝에 출범시킨 소비자 친환경 정보 개선 전략의 핵심 법안이 정치적 이유로 좌초되는 첫 사례다. 그린 클레임 지침은 앞서 지난해 1월 통과된 '그린워싱 금지 지침'의 보완 입법으로, 향후 '제품의 수리권 보장', '에코디자인 기준 강화'와 함께 순환경제 전환의 핵심 축이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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