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닐 분리배출 점검해보니...SRF 방식으로 재활용

"재활용 분리수거 나부터 실천합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붙어있는 문구다. 수거장 앞에는 형형색색 비닐들이 가득 담긴 비닐 포대가 층층이 쌓여있었다. 다음날 재활용 선별장으로 보내기 위한 포대들이다. 포대 속에는 아주 작은 과자 포장지부터 냉동만두 포장지, 두루마리 휴지 포장지, 택배 포장지 등 다양한 종류의 비닐들이 들어있었다.
이 아파트 경비실에 따르면 1동당 일주일에 6~7kg짜리 비닐 포대가 최소 10개씩 나온다. 총 28개동이 있는 이 아파트에서 일주일에 배출되는 비닐포대는 최소 280개에 이른다. 무게로 따지면 약 1600~1800kg이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10.7kg의 일회용 비닐을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발생하는 비닐쓰레기의 양이 55만2600톤에 달한다는 의미다.
이 아파트에 사는 50대 김모씨는 "비닐을 재활용하도록 신경 써서 배출하고 있다"면서 "물이 아깝긴 하지만 비닐에 음식물이 묻어있으면 물로 씻어내고, 귀찮아도 비닐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일일이 떼어내고 재활용 쓰레기로 배출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시민들은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폐비닐을 분리배출하고 있다. 이유는 내가 배출한 비닐쓰레기가 재활용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과연 그럴까.

◇ 폐비닐 연료처럼 태우는데 '재활용' 인정
재활용될 것으로 굳게 믿었던 폐비닐은 사실 대부분 소각되고 있는 것으로 본지 취재결과 파악됐다. 2022년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하루에 배출되는 폐비닐 730톤 가운데 328톤(45%)은 '고형폐기물 연료' 등으로 활용된다. 나머지 402톤(55%)은 소각·매립된다.
'고형폐기물 연료(SRF)'는 석탄처럼 태워서 열이나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로 쓰인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소각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SRF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다이옥신 등 발암물질이 배출될 위험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SRF열병합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SRF와 같은 에너지 회수 방식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재활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폐기물관리법 제2조에서 '재활용'을 "폐기물을 재사용·재생이용하거나 폐기물로부터 에너지를 회수하거나 연료로 사용하는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OECD 국가들은 재활용과 에너지 회수를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 유럽은 폐기물기본법(WFD) 제3조 17항에서 '재활용'을 "폐기물을 제품, 재료 또는 물질로 재가공하는 작업으로 에너지 회수 및 연료 등에 사용되는 것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정의한다. 일본도 순환형 사회형성 추진기본법 제2조 6호에서 '재활용은 순환자원의 전부 또는 일부를 원재료로서 이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도 '에너지 회수'와 재활용을 별도로 정의하고 있다.

◇ 결국 소각되는 폐비닐 왜 분리배출?
서울시는 지난해 7월부터 '폐비닐 분리배출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을 시행한 이후 폐비닐 재활용량이 2023년 일평균 279톤에서 2024년 301톤으로 증가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그러나 폐비닐을 연료처럼 사용하는 SRF 방식으로 재활용되는 것이라면 이같은 증가율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폐기물 업체들을 관리하는 한국순환자원유통센터 관계자는 "지원금을 받는 폐비닐(복합재질) 재활용 업체 가운데 60%는 SRF 등으로 열회수하는 방식이고, 40%는 열분해 방식으로 재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열분해' 방식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고온에서 열분해해서 얻은 기름이나 가스를 원료로 재사용하는 것이다. 연료처럼 태우는 '열회수'와 달리, 열분해는 폐기물을 자원화하는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열분해 방식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에너지효율이 3%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OECD에서는 '열분해' 방식도 재활용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
폐비닐을 물질적으로 재활용하는 비중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폐비닐로 쓰레기 봉투를 만들거나 맨홀뚜껑을 제작할 때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순환자원유통센터에서도 이 비중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폐비닐 재활용' 방식이 순환경제로 이어지지 않다면 분리수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게 된다. 시민들이 폐비닐을 비롯한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는 수고가 헛일이 되지 않게 하려면 '물질 재활용'으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상우 저탄소자원순환연구소장은 "폐비닐이나 폐플라스틱을 다시 원료로 만드는 기술이 획기적인 것이 아닌데, 정책적으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물질 재활용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유럽이 비닐포장재에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순환경제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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