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엽수로 조성된 산림은 여러 수종이 섞여있는 혼합림에 비해 산불이 발생했을 때 1.5배 더 취약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올 3월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삽시간에 안동 등 인근지역으로 급속히 번진 원인이 소나무숲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5월 22일 생물다양성의 날을 맞아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대학과 공동연구한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 보호지역 관리 실태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 식물이 함유한 수분비율을 나타내는 '산림 연료습도'가 낮으면 단순 침엽수림은 산불이 발생하고 2시간이 지나면 전체 산림의 바이오매스 30%가 연소됐다. 반면 혼합림은 바이오매스 연소량이 20%에 그쳤다.
2000년 발생한 동해안 산불 피해 사례에서도 혼합림의 산불 피해가 가장 적었다. 침엽수와 활엽수 단순림은 특정 지형에서 취약한 반면, 혼합림은 대부분의 지형에서 일관되게 낮은 피해를 보였다.
침엽수가 산불에 취약한 것은 보통 줄기 겉면에 마른 껍질이 붙어있고 내부에 송진이 있어 산불이 발생하면 땔감으로 변한다. 송진은 불에 타기 쉬운 탄화수소인 '테르펜' 성분으로 인화성이 높아 옛날에 횃불연료로 주로 사용됐다. 게다가 침엽수 잎은 불똥으로 날아다니기 때문에 피해범위를 넓히는 문제도 있다. 이에 비해 활엽수는 줄기와 나뭇잎에 수분이 많아 비교적 불에 빨리 타지 않아 산불확산을 막는 방화벽 역할을 한다.

실제로 산불이 났던 주왕산 국립공원에서도 이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침엽수가 밀집한 지역의 마을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다양한 수종이 혼재된 너구마을 주변은 산불 피해가 거의 없었다. 주민들은 "주변 혼합림이 방화림 역할을 했고 위에서 아래로 바람이 부는 계곡 지형의 특성도 산불이 번지는 걸 막았던 것같다"고 했다.
혼합림의 우수성은 산불 피해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진화 이후 복원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영남 산불로 260헥타르(㏊) 수준의 면적이 피해를 입은 지리산국립공원 내 능인암 일대에서 이날 조릿대 새순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자연 형성된 혼합림인 지리산은 이미 땅속에 여러 종자를 저장한 상태로 대개 남아 있다"며 "산불 피해가 있더라도 다른 인공적 조치 없이 자연적으로 복원이 이뤄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생물다양성이 높은 숲이 산불을 막는 천연 방패막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산불 피해 후의 숲은 자연스럽게 극상림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간섭을 최소화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보호지역과 이에 준하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 등의 보전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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