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꿀이 막 올라오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서 꿀벌들이 꿀을 모을 시기를 놓치고 있다."
최근 여름철을 방불케하는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양봉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특히 꿀벌의 주요 채밀원(꿀을 모으는 식물)인 아까시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아직 아까시꿀을 수확하지 못한 양봉농가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25년째 양봉업을 이어가고 있는 박종규 한국양봉벌침교육중앙회 회장은 20일 뉴스트리와 통화에서 "올해 아까시꿀을 한 번도 채밀하지 못했다"며 "연일 비가 내려 꿀벌이 꿀을 채집하러 나가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주에 여름 장마처럼 퍼붓는 폭우에 아까시꽃들이 몽땅 떨어져 버렸다는 것.
아까시꽃은 국내 꿀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채밀수종이다. 주로 5월 초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중순쯤 만개한다. 그런데 올해는 하필 아까시꽃이 만개한 시점에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컸다. 특히 지난 16일 세차게 쏟아진 기습 폭우는 만개한 아까시꽃을 몽땅 떨어지게 만들었다. 경기도 남양주 오남읍에는 5월 한달치 강수량보다 많은 130㎜의 비가 하루에 모두 내렸다. 이 가운데 74㎜는 1시간에 퍼붓듯 쏟아져 꽃잎이 다 떨어졌다.
양봉협회경기지회 관계자는 "꽃이 늦게 피는 경기 북부와 강원도 지역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수도권과 경기 남부 양봉농가는 아까시꽃을 구경도 못해본 상황"이라며 "일부 농가는 갑작스러운 폭우에 벌통이 노출되는 바람에 피해를 더 키웠다"고 말했다.
문제는 꿀벌이 '꽃꿀'을 먹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꿀벌이 직접 채밀한 꿀에는 화분(꽃가루)이 포함돼 있는데, 이 안에는 단백질 등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분이 들어있다. 이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꿀벌은 면역력이 약해져 기생충이나 전염병에 취약해진다. 또 체력도 떨어져 최악의 경우 기온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단폐사될 수도 있다. 꿀벌은 과채류, 견과류 등 전세계 농작물의 75%의 꽃가루받이를 책임지는 만큼, 꿀벌의 위기는 식량위기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기습폭우처럼 기상이변은 해마다 반복될 우려도 크다. 실제로 최근 3년간 5월에 여름 장마철 수준의 비가 내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어린이날 연휴동안 남부지방과 제주도를 중심으로 하루동안 200㎜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졌고, 2023년 5월초에도 서귀포에 하루동안 288㎜의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난 16일 폭우에 대해 "당초 소나기 수준으로 예보됐지만, 대기 상층의 찬 공기와 남쪽에서 유입된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충돌하면서 불안정성이 심화됐다"며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대기 내 온도차가 심해지고 있어, 이로 인한 강수의 양과 강도 예측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5월 20일은 유엔(UN)이 꿀벌 보호를 위해 지정한 '세계 벌의 날'"이라며 "우리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꿀벌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 지 오늘만이라도 함께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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