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대규모 정전 사태...원인으로 지목되는 5가지

장다해 기자 / 기사승인 : 2025-05-02 17: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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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탓이다"vs"아니다" 공방
정전사태 발생한 원인 아직도 못밝혀
▲스페인 정전 이후 갈 곳을 잃은 여행객들이 아토차 기차역에 누워있다. (사진=AFP)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정전 사태는 전기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두 나라의 정전은 11시간만에 해소됐지만 사회를 연결하는 모든 시스템이 '올스톱'되면서 국가비상사태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이 대규모 정전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심각한 불안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사태가 또다시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전세계 전문가들은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정전사태 원인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들이 꼽는 이번 정전사태 원인은 크게 재생에너지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프랑스와의 전력망 단절, 재생에너지로의 급속전환 등으로 요약되고 있다.

◇ 재생에너지 공급과 수요 불균형이 원인? 

스페인과 포르투칼 정전의 원인으로 재생에너지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지목되고 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옥스퍼드대 한나 크리스텐슨 물리학 교수는 "안정적인 전기공급을 위해서는 전력망에 유입되는 에너지와 유출되는 에너지의 양이 같아야 한다"며 "재생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시스템에서는 이 균형을 맞추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는 사용자들이 잇따라 연결을 끊는 연쇄적인 현상이 발생해 공급이 수요를 크게 초과하면서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킹스 칼리지런던의 그라치아 토데스키니 공학 연구원도 "전력망은 생산된 에너지와 사용된 에너지의 불균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전력망은 거대하게 서로 연결된 시스템이며, 이 망의 안정성은 전기 생산과 수요 균형과 매우 긴밀하게 관련돼 있다"고 AP통신을 통해 말했다. 이어 그는 "한 지역이 단절되면 주변 지역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전력망 불균형이 커질수록 정전이 빠른 속도로 퍼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스페인 대표 일간지 엘 파이스(EL PAÍS)의 1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정전 발생 당시 스페인의 전력 수요는 특별히 높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력 공급도 최저 수준이 아니었다. 태양광 발전은 거의 최대 용량으로 가동돼 소비량의 약 60%를 충당하고 있었고, 수력과 풍력 발전은 20%를 추가로 공급하고 있었다. 원자로는 4개가 가동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재생에너지 전력시스템 관리에 어려움이 생겼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PwC의 에너지 담당 파트너인 오스카르 바레로는 "태양광 발전이 대규모로 보급되면 전력시스템 관리에 어려움을 초래한다"며 "수요가 많을 때뿐만 아니라 잉여전력이 발생했을 때에도 예비전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출력 주파수가 허용범위 벗어났다?

전력망이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라이스타드 에너지의 프라티크샤 람다스 수석 분석가는 가디언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대량으로 전력망에 공급하려면 전력망을 적절하게 설계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하면서 주파수 교란을 흡수하기가 더 어려워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시스템 고장이나 송전선의 약화 등이 그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계통 안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계통형 인버터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발전 시간과 발전량이 불규칙해 출력 주파수를 제어하기 어렵다. 각 국가별로 계통 주파수가 정해져 있어 이를 일정하게 고정해 전기를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주파수 조정용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 ESS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발전량을 조정할 수 있다. 주파수 상승 시 전력계통의 잔여 전력을 ESS에 충전한다. 주파수 하락시 저장해둔 전력을 방전함으로써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래서 대규모 정전에 대비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의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다. 엘 파이스에 따르면 스페인은 독일과 호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이미 시행 중인 배터리 대량 배치를 지연시키고 있는데 배터리를 연결하는 것이 정전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동기화하는 배터리 설치를 늘리고 풍력 발전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BBC도 전력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로 전력망의 주파수가 변경됐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유럽의 경우 주파수가 50헤르츠(Hz)인데, 해당 주파수 범위를 벗어나면 장비에 무리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옥스퍼스대 하나 크리스텐슨 교수는 "주파수가 허용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감지하면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오프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다"며 "이런 일이 연달아 발생하면 '연쇄효과'로 정전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과잉생산되지 않도록 정확한 일기예보를 바탕으로 미리 예측해서 전력 공급을 이미 조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대규모 정전 사태의 근본원인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재생에너지는 '간헐적'이기 때문에 화석연료 에너지와 다른 과제를 안고 있지만, 이는 잘 알려진 문제이며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 있다"며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측하지 않았다면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결 전력망이 끊겼다?

프랑스와 연결된 전력망이 끊어진 것이 스페인 정전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CNN에 따르면, 전력망 운영사인 레드 일렉트리카(Red Eléctrica)의 에두아르도 프리에토 서비스담당 이사는 "첫번째 정전 이후 전력망이 복구됐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1.5초 후 두번째 정전이 발생해 전력공급 감소에 따른 '대규모 발전 단전'과 '프랑스와의 연결선 끊김'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유럽 ​​전력 산업을 대표하는 무역단체인 유르일렉트릭(Eurelectric)의 크리스티안 루비 사무총장은 "월요일 정오 무렵 프랑스와 스페인을 잇는 고압 전선이 끊겼고, 이로부터 30분 후에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에너지 섬'으로 불리지만, 프랑스와 전력망 연계가 유럽 집행위원회의 요구보다 낮아 케이블을 통해 송전할 수 있는 전력량이 크게 제한돼 있다. 스페인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자, 프랑스는 이 사태가 자국과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해 스페인과 연결된 전력망을 차단했다. 이 여파로 스페인의 전력 부족은 심해지고 포르투갈은 더 큰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전 사태가 안정되자, 프랑스는 스페인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 재생에너지로의 급격한 전환이 정전 유발?

스페인이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한 것이 정전의 원인이라고 꼽는 이도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 자국에서 필요한 전력의 절반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면서 전기요금을 크게 떨어뜨리는데 성공했지만 이에 상응하는 전력망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아 이같은 문제가 생겼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스페인이 예비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배터리와 같은 전력망 인프라와 에너지저장 시설에 더 많이 투자했다면 전력망 불안정성을 관리하기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AP통신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에 대비해 가스와 원자력 등으로 전력공급을 안정화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사 레드 일렉트리카(REE)는 "재생에너지원이 전국에 분산되어 있는데 대용량 발전량을 감당하도록 변전소는 설계돼 있지 않다"면서 "급격한 주파수 변동을 견뎌내기 위해 전력망은 발전량이 급감할 때 충격 흡수 장치 역할을 하는 부하분산 릴레이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에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재생에너지 과잉으로 인한 문제는 없었다"며 "이 사건을 원자력 발전 부족과 연관짓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산체스 총리는 "안전상의 이유로 원자력 발전소는 정전 이후 전력망 복구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사이버 공격으로 인한 정전?

대규모 정전의 원인으로 '사이버 공격'의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이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스페인 정부는 송전망에 대한 사이버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의 송전망 운영사인 레드 일렉트리카는 "사이버공격의 증거가 없다"고 잘라말했다.

엘 파이스에 따르면 사이버 보안전문가인 마르틴 비고는 "전력망이 여러 곳에 분산돼 있기 때문에 사이버 공격으로 이처럼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킹스 칼리지런던의 전문가인 루카스 올레이닉은 "변압기나 변전소를 공격해서 하드웨어를 손상시키고 고장을 일으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동시에 공격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이번 정전 사태는 전기공급이 중단되면 사회가 멈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휴대폰은 무용지물이 됐고, 병원은 수술을 못했으며, 비행기와 철도도 멈췄다. 호텔예약을 못해 길거리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엘리베이터와 지하철이 멈추면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속에 갇혔다.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아 도로는 사람과 차들이 뒤엉켜 다니는 아수라장이 됐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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