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며칠 전부터 책 나들이를 시작했다. 아침 산책길인 호수를 걷다보면 책 읽기 좋은 한적한 곳이 몇 군데 있다. 물기 먹은 공기를 마시고 춤추는 오리들이 보이는 곳을 골라 앉는다. 책을 펼치고 독서 삼매경에 들어가기 전, 호수를 한 번 더 본다. 실룩거리는 오리의 몸짓이 지난 가을날 아침 '오일장 책 나들이' 간다고 재잘거리던 아이들이 오버랩된다.
5학년 아이들이 그림 동화책을 들고 지나간다.
"효서야, 정현아, 너희들 그림책 읽는 거야?"
"네, 선생님. '오일장 책 나들이' 가요."
"오일장 책 나들이? 그게 뭐야?"
"5학년 책동아리가 1학년 동생들에게 책 읽어주는 걸 오일장 책 나들이라고 불러요."
"와, 그 이름 정말 멋지다. 하여튼 5학년은 제목 잘 만드는 킹 들이야."
"모르셨어요? 우리 선생님이 모르시는 것도 다 있네요."
아이들의 스스럼 없는 농담에서 나의 관심에 대한 고마움과 친밀함이 느껴진다.
"그럼! 난 너희에게 관심 많아. 너희들은 호기심 천국이야. 근데 오늘 읽어줄 책은 뭐야?"
"『프레드릭』이에요."
"그 책 내용은 1학년에게 어렵지 않을까? 책은 어떻게 선정하는 거야?"
우리 학교에는 다양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이 있다. 그중에서도 '선배가 후배에게 책 읽어주기'는 인기가 높다. 이를 '오일장 책 나들이'라고 부른다. 5학년의 '오'와 1학년의 '일'을 붙여 만든 기발한 이름이다.
효서와 정현이가 1학년이었을 때, 5학년 선배들이 책을 읽어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수선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효서와 정현이는 그 시간이 좋아졌다. 선배가 고마워서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책 읽어주기가 끝나는 날에는 서로 헤어지기 싫어서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경험과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효서와 현정이는 5학년이 되었을 때 책 읽어주기 동아리를 선택했다.
5학년 아이들은 1학년 후배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동아리를 만든다. 서너 명씩 한 팀을 이루고 주 1회 참여한다. 5학년 팀원들은 후배에게 책을 읽어줄 일정을 확인하고 미리 1학년 선생님들과 읽을 책을 선정한다. 책을 읽기 전에 미리 목소리를 내어 책 읽는 연습을 하는 것은 필수이다. 특히 1학년 후배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책을 깊이 읽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1학년 후배를 만나 책을 읽어준다.
오일장 책 나들이는 학생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독서 프로그램이다. 사실상 선후배가 교육과정을 공유하는 셈이다. 선배들을 만나면서 1학년 아이들은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게 된다. 반면 5학년 아이들은 책을 좀 더 깊이 읽고 내용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책을 읽도록 서로를 이어주는 일은 학교가 할 일이다. 나머지는 아이들끼리 잘 진행한다.
함께 책을 읽다가 친해지면 선배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후배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시체 놀이, 멍 때리기, 큐브 놀이 등을 함께 한다. 1학년 아이들은 카드에 소감을 적어 선배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카드에는 이런 단어들이 담겨 있다. '배움, 감사,감동, 진심, 재미, 기여, 기쁘다, 사랑, 도전, 놀이, 가슴 뭉클하다, 행복하다.' 1학년 후배들의 읽기 경험과 선배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요즘 나의 책 나들이는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아이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글/ 김향숙 작가
교육자
前 혁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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