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석유회사들이 최근 몇 년동안 기후공약을 거창하게 내걸었지만,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준하는 탄소배출량 감축을 이행한 곳이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기후금융싱크탱크 카본 트래커(Carbon Tracker)가 세계 최대 석유 및 가스회사 25곳의 생산 및 전환 계획을 평가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평가대상 25곳 가운데 파리기후변화협약 핵심목표에 부합하는 곳은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최대 2℃ 낮게 유지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보고서 공동저자인 메이브 오코너(Maeve O’Connor) 카본 트래커 분석가는 "전세계 화석연료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파리협약 목표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해결책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파리협약의 목표에 부합하는 기업은 없는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연구진들은 조사대상 기업의 화석연료 탐사 및 생산계획 및 투자, 탄소배출량 감축목표, 임원급 이사들의 주요 경영정책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파리협약 준수 점수표와 대조했다. 그리고 각 기업에 A~H까지 등급을 매겼다. 연구진들은 "A는 파리협약 목표에 잠재적으로 부합하는 기업을 뜻하고, H는 가장 부합하지 않는 기업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BP가 D등급을 받아 가장 높았고, 나머지 기업들은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브라질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Petrobras), 엑손모빌(ExxonMobil)은 G등급을 받았고, 미국 석유회사 코노코필립스(ConocoPhillips)는 최하점 H를 받아 꼴찌를 차지했다. 오코너 분석가는 "모든 기업이 실망스럽지만 기업간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가스회사에서는 체사피크 에너지(Chesapeake Energy)를 제외한 모든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BP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 생산량을 줄이려는 유일한 회사였고, 스페인의 렙솔(Repsol)과 노르웨이의 에퀴노르(Equinor), 영국의 쉘(Shell) 등 3개 회사는 기존 생산수준을 유지할 계획이다. H등급을 받은 코노코필립스는 2030년까지 2022년 생산량보다 47% 증산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는 석유 및 가스 회사들이 공개적으로 기후공약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BP와 쉘은 1년 간격을 두고 초기 탄소배출량 목표를 하향 조정했고, 지난해 10월에는 엑손모빌이 셰일가스 기업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스(Pioneer Natural Resources)를 인수했다. 셰브론(Chevron)도 텍사스 석유회사 헤스(Hess) 인수계획을 발표했다.
기후단체 오일체인지 인터내셔널(Oil Change International, OCI)의 데이비드 통(David Tong) 글로벌산업 캠페인 매니저는 "이 보고서는 정부가 석유 및 가스 산업의 단계적 퇴출을 관리하기 위해 개입해야 한다는 증거"라며 "불을 덜 피우겠다고 약속하는 방화범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대규모 석유 및 가스 기후 공약과 계획을 믿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OCI는 대형 석유기업의 기후계획이 전세계 기후목표를 달성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마이크 코핀(Mike Coffin) 카본 트래커 석유, 가스 및 광업 연구책임자는 "이 새로운 점수표를 통해 투자자들은 동종업계와 비교해 기업의 행동을 평가하고 에너지전환의 현실과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기업 경영진에게 따져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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