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천에 있는 전통시장 '서천특화시장'은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됐다. 292개 점포 가운데 227개 몽땅 불에 타버렸다. 모든 점포가 문을 닫은 22일 밤 11시쯤 화재가 발생한 데다, 때마침 불어온 강풍에 불길이 번지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
간밤에 뜬눈으로 밤을 새운 상인들은 굵은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처참하게 타버린 점포와 시설물 앞에서 망연자실한 모습들이다. 강한 불길에 화재를 진압하는데 9시간이나 걸렸다. 설 대목을 앞두고 수천만원어치 쟁여놨던 건어물은 밤새 재로 사라지고 매케한 연기만 남았다.
23일 소방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화재는 1층 빈 점포에서 시작됐다. 22일 오후 10시52분쯤 시장 1층 수산물동 한 점포에서 스파크가 튀며 불꽃이 일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꽃은 5분만에 점포 전체를 밝힐 정도로 커졌다. 15분 후에는 인근 점포까지 번졌다.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탓에 불길은 인근 점포로 순식간에 확산됐고,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로 이어진 점포 칸막이들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여기에 강풍까지 불면서 불길은 순식간에 시장을 집어삼켰다.
화재를 탐지하고 알리는 시설도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건물 내부에는 스프링클러와 자동 화재탐지·속보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 탐지기기들은 화재가 발생한지 20분이나 지난 뒤에 작동했고, 이 때문에 화재를 초기대응할 시간을 놓쳤다.
자동화재속보기는 불꽃이 시작된지 16분만인 오후 11시 8분쯤 작동해 119로 자동 신고했다. 소방대는 신고를 받은지 3분만인 11시 11분쯤 현장에 도착했지만 불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 작동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통상 스프링클러는 연기와 열을 통해 화재를 감지하고, 작동과 동시에 탐지·속보 설비로 전달돼 즉각 119종합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신고가 접수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지체됐다는 점에서 제때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충남소방본부에 따르면 해당 건물에는 스프링클러, 화재탐지·속보설비, 옥내소화전, 방화셔터 등이 설치돼 있다. 지난해 2월과 8월 민간관리업체 점검결과 이상은 없었으며, 올 1일 국무총리 지시사항으로 소방당국이 직접 점검했을 때도 방화셔터 수동기동 불량 외 화재탐지·속보설비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도 화재에 초기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방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경찰은 "건물 내부가 전소돼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하는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며 "내부 CCTV 영상을 복원해 분석할 방침"이라고 했다.
경찰은 동작 감지가 아닌 열 감지 방식의 무인경비시스템이 작동한 점 등으로 보아 화재 당시 건물 안에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화재 전후로 시장건물 안으로 들어간 행인은 없었고, 늦은 밤시간대라 시장 앞을 오가는 차들도 거의 없었다.
시장이 복구되는데 최소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돼 상인들의 시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화재현장에 방문해 특별재난지역선포 가능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 상인들이 기다리는데도 만나지 않고 발길을 돌려 원성을 사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피해지역에 긴급 구호품을 보내는 한편 피해상인들을 대상으로 특별대출, 만기연장, 금리우대, 보험료·카드대금 유예 등의 금융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