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석유 대기업 엑손모빌(Exxon Mobi)이 자사의 배출량 감축을 요구하는 제안이 주주투표에 부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후투자 활동가들을 고소한 사실이 밝혀졌다. 석유 대기업이 기후투자자를 고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시간) 엑손모빌은 기후 투자자 활동가 모임인 아르주나 케피털(Arjuna Capita)과 팔로우 디스(Follow This)를 미국 텍사스 북부지방법원에 고소했다. 엑손모빌은 고소장을 통해 "이들이 주주투표 제안 절차를 남용했다"며 "이를 통해 회사의 기존 사업을 약화시키기 위한 주주 의결안을 먼저 투표에 부치려는 조작행위를 했다"고 소를 제기한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12월 아르주나 케피털과 팔로우 디스는 엑손모빌이 탄소배출량 감축계획의 속도를 높이고, 공급업체와 고객을 포함해 탄소배출량 측정범위를 확대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해당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엑손모빌은 고소를 강행한 것이다.
또한 엑손모빌은 "해당 결의안은 자사의 경제적 성과를 개선하거나 주주가치를 창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사운영을 제한하고 세부 경영지침까지 간섭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엑손모빌은 지난 5월 이미 "미국 증권법에 따라 회사는 회사의 일반적인 사업운영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주주청원을 제외할 수 있다"며 "주주투표에서 해당 결의안을 표결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번 고소가 단순히 주주회의에서 배제하는 것에서 나아가 법원 판결을 통해 기후관련 의견을 원천봉쇄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불어 엑손모빌은 "해당 투자자그룹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SEC 규정에 따르면 어떠한 주주 청원이 일정기간동안 투자자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같은 주주제안이 해마다 다시 제출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22년과 2023년에 열린 엑손모빌 주주총회에서도 비슷한 기후안건이 상정됐지만 각각 27.1%와 10.5%의 찬성률을 얻으며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 이에 엑손모빌이 "팔로우 디스와 아르주나는 재제출에 필요한 SEC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밴더빌트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 재무학과 교수인 조슈아 화이트(Joshua T. White)는 "이는 엑손이 기업가치를 훼손할 것으로 생각되는 제안을 더이상 의결권 대리인단에 맡길 수 없다면 법원으로 바로 가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해석했다.
소송을 당한 기후투자 단체들은 "회사가 주주권리를 침해한다"고 맞서고 있다. 마크 반 발(Mark van Baal) 팔로우 디스설립자는 "이 움직임은 엑손이 주주들이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또 나타샤 램(Natasha Lamb) 아르주나 케피털 공동대표는 "주주는 회사가 기후위험, 세계 경제 및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할 기본적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엑손모빌이 고소를 강행한 배경에는 점점 강해지는 반-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서가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 공화당을 중심으로 ESG를 반대하는 기조가 더욱 강해지면서 엑손모빌 등 주요 탄소배출 기업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 민간경제연구기관 컨퍼런스 보드(The Conference Board)에 따르면 2023년 기업의 ESG 제안 건수는 증가했지만, 주주들의 지지는 전년보다 떨어져 환경관련 제안 중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폴 워싱턴(Paul Washington) 컨퍼런스 보드 ESG센터 이사는 "이는 일반 주주들이 확실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 것과 더불어 기후투자자들의 제안에 점점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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