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이전보다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자는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이행하려면 전세계 각국은 고성장에 매달리지 말고 복지와 생태계 개선을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학교(University of Barcelona) 환경과학기술연구소(ICTA-UAB)가 국제학술지 원어스(One Earth)에 게재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각국이 2023년~2030년 경제성장이 높일수록 파리협정을 달성할 가능성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경제성장률을 낮추면 파리협정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구팀은 "기존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고성장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며 "그러나 이같은 시나리오들은 성장 자체가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동인인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탄소중립 계획은 연 4%의 세계 경제성장을 가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계획들은 실제 시행되더라도 파리협정 목표와는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논문의 수석저자 알요사 슬래머삭(Aljoša Slameršak) ICTA-UAB 연구원은 "온난화를 1.5°C로 제한할 수 있을 만큼 전세계 배출량을 빠르게 줄이려면 성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고소득 국가들이 저성장 국면으로 전환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2%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낮을수록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현저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니엘 오닐(Daniel O'Neill) 바르셀로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저성장 시나리오와 고성장 시나리오를 비교한 결과,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것만으로도 2030년까지 CO2 배출량을 10~13% 줄일 수 있다"며 "부유한 국가들이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기후위기와 탄소중립간 간극을 상당히 좁힐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연구진은 "이는 경제성장의 기후영향에 대한 거시적 국제분석"이라며 "실제로는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제이슨 히켈(Jason Hickel) ICTA-UAB 연구원은 "우리의 시나리오는 기후위기 완화 책임과 경제 개발 요구를 둘러싼 고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 간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저소득 국가는 더 높은 경제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반면, 고소득 국가는 성장 후 수요감소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장 후 수요감소'란 국민 복지와 지속가능성을 달성하는데 필수적인 생산에는 우선순위를 두는 반면, 사치품 등 불필요한 물품의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히켈 연구원은 "성장 후 수요감소의 주요 특징은 불평등 감소, 필수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 저탄소 에너지 전환을 위한 공공투자 증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르고스 칼리스(Giorgos Kallis) ICTA-UAB 연구원은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약한다"며 "고소득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은 고성장을 목표로 삼는 것을 포기하고, 성장 이후의 정책을 고려해 복지와 생태계 개선을 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그는 "향후 연구에서 다양한 경제부문과 활동이 탄소배출량과 사회 복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명확하게 밝히려고 한다"며 "이를 통해 사회적, 생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부문과 활동을 줄이거나 늘려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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