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적 대책 없는 '맹탕 총회' 우려
지난달 30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개막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실속없는 대책 남발로 빈축을 사고 있는 가운데 COP28 의장인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가 화석연료 감축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발언해 또다시 파장이 일고 있다.
알 자베르는 COP28 의장을 맡을 때부터 뒷말이 무성했다. 아부다비 국영석유공사(ADNOC)의 CEO인 그에게 COP28 의장을 맡긴다는 것은 '여우에게 닭장을 맡긴 격'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자격 논란이 일었다. 알 자베르는 이같은 논란을 의식한듯 온실가스 저감에 산유국들이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조율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 자베르는 COP28 행사를 앞두고 지난달 21일 한 온라인 생중계 행사에서 전 유엔 기후변화 특사인 매리 로빈슨의 관련 질문에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발언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며 COP28 안팎이 술렁거리고 있다.
◇속셈은 석유장사?···"여우에게 닭장 맡긴 격"
환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COP28 회의장에서 UAE를 향해 먼저 직격탄을 날렸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은 3일(현지시간) 환경단체 클라이밋 트레이스와 전세계 탄소배출량 분석결과를 공개하는 자리에서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규모는 가장 큰 데 비해 책임감은 가장 떨어지는 석유기업 중 하나의 CEO를 의장으로 임명하면서 대중의 신뢰를 악용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날 공개된 전세계 탄소배출량 분석결과는 300개의 인공위성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전세계 3억5200여개 산업현장의 온실가스 배출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한 것을 토대로 했다. 그 결과 2022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대비 1.5%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COP28 의장국인 UAE 배출량은 전년보다 7.5% 늘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보다 5배 높았다.
고어 전 부통령은 UAE의 아부다비 국영석유공사(ADNOC) 소유 파이프라인에서 온실가스인 메탄이 유출되는 지점이 표시된 지도도 함께 공개했다. 그는 "ADNOC는 여전히 석유와 가스 운송 과정에서 메탄 등이 배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우리는 우주에서 그것들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UAE는 지난달 30일 COP28 개최국 지위를 활용해 석유·가스 로비를 시도한 내부문건이 폭로되기도 했다. 여기에 알 자베르 의장이 지구온난화 악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단계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의장국으로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COP28 역시 '그린워싱의 장'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생에너지 3배 확충···화석연료 퇴출은 조용
COP28에서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118개국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시설을 3배 늘리는 결의안에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에너지기업 아람코, 엑손모빌, 쉘, 토털에너지 등 글로벌 석유·천연가스업체들도 참여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중국과 인도는 참여 여부가 불확실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은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만으로 기후변화에 제동을 걸 수 없다며 '화석연료 전면 퇴출'을 요구하고 있다. 마셜제도 환경특사인 티나 스티지는 재생에너지 3배 확대 결의안에 대해 "반쪽짜리 해법"이라고 일갈하며 "끊임없이 화석연료 생산량을 늘리는 나라들이 이 약속으로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포장하게 할 수는 없다"고 맹비판했다.
세계은행과 세계 주요 지역별 개발은행들은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금융지원을 약속하며 '원칙론'엔 공감하면서도,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 중단 등 특단의 대책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세계은행 등 주요 개발은행의 공동성명에 따르면 이들 은행은 친환경 금융·기술 지원 플랫폼 구축 사업, 재난위험 관리 및 대비역량 구축 지원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화석연료 개발에 직접 제동을 걸 만한 강경책은 성명에 담기지 않았다.
◇원전·탄소포집 '기술 세일즈' 경계해야
기술적인 해법에 대한 논란도 진행중이다.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을 3배 늘려야 한다는 존 케리 미국 대통령기후특사의 선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20여개국이 서명했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는 "원자력이 모든 에너지원의 압도적인 대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아니지만, 원자력 없이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과학, 사실, 증거에 근거한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후·환경 단체들은 핵발전 시설의 위험성과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 문제를 지적하면서 "화석연료의 좋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평균 350ppm으로 낮추자는 국제 기후변화 방지 운동 '350.org'의 북미 담당자인 제프 오도워는 "미 바이든 행정부가 화석연료의 대체재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 감사하지만, 핵발전과 같은 위험한 오락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케리 특사는 탄소포집·활용·저장기술(CCUS)을 활용하지 않은 '언어베이티드'(unabated)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만을 약속하고 있다. 산유국들을 비롯해 알 자베르 의장 역시 CCUS를 강조하며 화석연료 퇴출보다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어 전 부통령은 "CCUS가 화석연료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며 COP28 최종 발표문에서 해당 기술에 대한 경고나 언급 없이 아예 배제시켜버릴 것을 권고했다. 그는 "CCUS는 현재 연구 프로젝트 단계 수준"이라며 "지난 50년간 비용 절감은 없었고, 화석연료 기업들이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기술이라는 것을 과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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