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집 앞에 설치돼 있으면 좋겠어요. 맨날 분리해서 버리는 거 솔직히 귀찮잖아요."
자원순환 박람회를 찾은 향모(62)씨는 플라스틱이나 캔 등 쓰레기를 알아서 분류하고 압착해주는 폐기물 수집기에 직접 쓰레기를 넣어보면서 이같이 말했다.
7일 서울시가 9월 6일 '자원순환의 날'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개최한 '서울 자원순환 신기술 박람회'에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다시 자원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다양한 기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플라스틱, 캔 등 쓰레기를 버리면 알아서 분류해주는 인공지능(AI) 폐기물 선별 로봇부터 폐플라스틱을 연료로 만드는 열분해 기술, 커피박·투명페트 등을 활용한 재활용 제품 등을 선보인 20개 기업들의 부스들을 살펴봤다.
◇ AI가 대신해주는 분리배출
눈길을 끈 것은 ACI테크의 'AI 폐기물 선별 로봇'이었다. 컨베이어 벨트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쓰레기들을 로봇 팔이 쏙쏙 집어 종류별로 분류하는 모습에 너도나도 감탄했다. AI가 지나가는 쓰레기를 촬영하고 색깔, 투명도, 무게 등을 입력된 정보를 통해 어떤 소재인지 순식간에 판단하고 분류하는 것이다.
로봇을 보던 박도연(27) 씨는 "사람보고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다"면서 "바쁘고 피곤할 때 가장 귀찮은 게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는 것인데 이런 로봇이 어디에나 있다면 훨씬 편할 거 같다"고 말했다.
폐기물 선별 로봇 옆에는 종량제 봉투도 필요없는 친환경 스마트 자동압축쓰레기수거함 '자연상점'이 자리했다. 커다란 컨테이너 형태의 자연상점은 쓰레기를 넣으면 알아서 3분의 2 수준으로 압축해 부피를 줄이고, 무게를 재 카드나 티머니 등으로 폐처리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결제 방식에는 종량제봉투도 있어 만약 종량제봉투로 쓰레기를 묶었어도 버리는데 문제는 없다.
자연상점은 5톤(t)까지 쓰레기를 모을 수 있으며 밀폐형으로 쓰레기가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고양이, 새 등 유해 조수가 접근해 어지럽히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ICT 시스템을 통해 쓰레기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주기적으로 움직일 필요 없이 가득 찼을 때만 수거 차량이 필요해 운송비 절감 및 탄소배출량 감축 효과도 있다.
쓰레기를 넣으면 알아서 종류를 구별해주고 유리병을 버리면 빈용기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폐기물수거기도 있었다. 알이랩에서 선보인 '무인빈용기수거기'는 플라스틱, 캔, 유리 등 빈용기를 알아서 구별해내고 플라스틱과 캔 등은 10분의 1 수준까지 압축한다. 세 종류의 센서가 작동하고 있어 버릴 수 없는 종류의 쓰레기는 알아서 뱉어내기 때문에 폐기물이 뒤섞일 걱정도 없다. 빈용기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소주병, 맥주병 등을 버리면 마트 등에서 환금이 가능한 영수증을 출력해줘 사람이 굳이 쓰레기를 분류할 필요를 없애 자원순환율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쓰레기로 만들어진 길
충청북도 충주에 있는 재생플라스틱업체 ESR산업은 플라스틱 종류와 상관없이 물리적 파쇄를 통해 원료로 만들고 이를 활용해 쓰레기통부터 전통 한옥에 올라가는 기와, 방음판, 배수로 등 다양한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탄생시킨다.
특히 ESR산업과 JS그린에너지가 협력해 제작한 '시스템 블록'이 눈길을 끌었다. 시스템 블록이란 다양한 종류의 블록을 삽입할 수 있는 플라스틱 트레이인데 보도블록 대신 이 트레이를 설치하고 그 안에 작은 블록들을 끼워넣기만 하면 도로가 완성된다. 블록 종류는 단순한 콘크리트는 물론 LED패널이나 잔디블록도 있어 용도와 미관에 맞게 조정이 가능하다.
특히 블록과 트레이 사이에 얇은 틈이 있어 통기성과 배수성이 뛰어나 기존 보도블록이나 콘크리트 도로와 달리 침수 걱정을 덜어도 된다. 임기현 JS그린에너지 본부장은 "콘크리트 블록은 비를 맞거나 압력이 가해지면서 형태가 변형돼 물길을 막게 되고, 이로 인해 도로가 침수되거나 싱크홀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시스템 블록은 이같은 문제도 없고 만약 문제가 발생해도 손쉽게 교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잔디식재를 통해 생태면적율도 확보할 수 있고 100% 재활용 플라스틱을 소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배출량도 감소시키는 자원순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로 건축자재로 활용되기 때문에 물성만 맞으면 어떤 원료도 이용 가능해서 페트(PET), PS, PP 등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을 구분하는 수고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이 다시 폐기되면 또 파쇄해 원료로 사용할 수 있어 자원을 순환시킬 수 있다. 다만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섞인 혼합플라스틱 재질인 만큼 화학적 재활용은 어렵고 다른 플라스틱 제품으로 재활용하긴 힘들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최근 바이오 소재로 크게 관심을 받고 있는 커피찌꺼기 '커피박'을 소재로 활용한 기업도 있었다. 커피박 자원순환 전문기업 동하는 박람회에 커피박이 20% 함유된 목재 데크로 만든 길과 벤치, 펜스 등을 선보였다.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던 시민들은 한국에서만 연간 22만톤(t)의 커피박이 쏟아진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이렇게 버려진 커피박이 튼튼한 목재 제품으로 재탄생하는 점에 신기해 했다.
오상열 동하 부대표는 "생활 속 쓰레기가 이렇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분들이 많았다"며 "이날 박람회에서 이처럼 다양한 자원순환 제품들이 있다는 걸 시민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방법
박람회 한쪽에는 폐자동차로 만든 테이블과 폐보드로 만든 의자 등으로 꾸민 '서울광장 개인컵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막에 앉은 시민들의 손에는 너도나도 다회용기와 텀블러가 들려 있었다. 이날 박람회와 함께 열린 '개인컵 사용의 날'(텀블러 데이)에서 다회용기를 대여하거나 텀블러를 가져온 시민들에게 무료로 음료를 제공한 것이다.
음료를 나눠주는 부스 옆에는 에코텀의 '텀블러 세척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별다른 조작없이 텀블러를 몸체와 뚜껑, 빨대로 구별해 넣고 버튼만 누르면 30~45초 만에 깨끗하게 세척해준다.
세척기를 사용해본 김모(28)씨는 "평소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면서도 세척하는 게 불편해서 물만 마시거나 끈적한 음료를 담지 않았다"며 "이런 세척기가 회사나 공공시설에 놓여있다면 텀블러 사용을 더 늘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인컵카페 옆에는 무인리필스테이션 '지구자판기'가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지구자판기는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결제하면 화장품, 디퓨져, 세제 등을 다양한 용기에 받아갈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이다. 최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용기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상점뿐만 아니라 화장품 브랜드 등에서도 리필스테이션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구자판기는 '24시간 언제든 이용이 가능한 리필스테이션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이같은 무인리필스테이션을 만들었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키오스크를 탑재해 더 이용하기 편한 형태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람회는 이날 단 하루만 열려 아쉬움이 남았지만 현장행사 외에도 10월5일까지 기후환경본부 '제로서울' 인스타그램'에서 온라인 인증 캠페인(#금쪽같은내컵이 챌린지)이 진행된다. 해시태그와 함께 개인컵 사용인증 사진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110명에게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한 에코백이나 카페 기프티콘 등 경품을 증정한다.
김권기 서울시 자원회수시설추진단장은 "폐플라스틱 감축과 자원화는 순환경제 도시로의 전환을 위한 필수 과제"라며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자원순환 분야 산업의 질적 성장과 폐기물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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