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 압구정 라인갤러리에서 이색전시회가 열렸다. 희망의 집 작가 15인의 '2023 여름이야기' 전시회가 그것이다. 갤러리에 들어서자 단아한 벽면에는 이들이 그린 회화들이 강렬한 색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느 전시회와 다른 점은 작가들이 모두 중증 신체장애인들과 느린학습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강원도 가평 꽃동네에 살고 있다. 수녀들과 자원봉사자 및 후원자들의 사랑으로 운영되는 꽃동네가 이들을 위한 작업실 '다림방'을 열었고, 평생 붓을 잡아본 적이 없는 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문화예술기획자 이혜경 씨는 전시회를 연 동기와 기획의 초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분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를 마련해 드리고 싶었어요. 서울시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했는데 그 때마다 제가 행복했어요. 가평 꽃동네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는데 언제나 충만한 기쁨을 느껴요. 특히 그림은 치유효과가 크지요. 다림방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표정이 밝아지고 자긍심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서 너무 행복해 해요. 그림을 전혀 그려보지 않았던 분들인데 회화 실력이 놀랍게 성장하고, 놀라운 작품 이미지를 그려 내기도 해요. 뜨개질 하는 두 분을 발견했는데 이번에 뜨개 작품을 공개해서 공예작가가 되었어요. 구석진 곳에 사시는 다림방 작가들이 압구정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작품들 앞에 서보았다. 투박한 선들과 짙은 원색들도 조형된, 구상인지 비구상인지 구별할 수 없는 회화 이미지들이 말을 건다. 전문적인 아티스트의 작품과는 분위기나 결이 전혀 다르다. 교과서적으로 쳐다보면 초보자나 어린이의 그림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 기발한 상상의 세계와 원초적인 순백의 파장이 일어난다. 이런 감응을 일으키는 전시회는 흔치 않을 것 같다. 기묘하고 낯선 이 미학적 울림의 정체가 무엇일까?
격주로 꽃동네를 방문해 이들의 창작활동을 돕고 있는 이상미 섬유예술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작가들이 장애인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아요. 장애인작가라는 수식어도 불편해요. 이들의 작품은 그 어느 작가도 흉내낼 수 없는 차원이 있어요. 가끔 특이한 정신세계를 묘사하거나 장애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서구 작가들도 있는데, 이 작가님들과는 크게 달라요. 그건 작가의 작품 기획과 전략에 따라 무언가를 흉내내고 만들어낸 것이잖아요? 꽃동네 작가님들은 자신들의 존재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작품을 그렸어요. 작품에 그분들의 존재와 내면이 그대로 나타나요. 존재의 순수함이 원색적으로 묻어나오는 거죠. 그래서 다른 모든 작품들과 구별되는 차이성이 일렁거리죠. 우리와 같은 회화 작가들이 오히려 배워야 할 감각과 이질적인 정서가 담겨있어요. 제가 이분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배우고 있어요."
많은 이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작품을 구매했다. 40여점의 작품들이 완판됐다고 한다. 장애인을 돕는다는 시혜적 마음으로서가 아니라 그 작품들과 삶의 이야기에 담긴 어떤 예술적 진실에 매료되어서다. 전시회를 방문한 이들과 작품을 구매한 이들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서 이혜경 씨에게 물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 아시아모델 페스티벌 회장, 서울시의원, 아나운서, 중구예총 회장, 이대 동문들, 시니어 모델들, 더조이플러스 여자축구단원 등이라고 한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방문해 작품을 구매하기도 했단다. 가슴이 훈훈해졌다. 다림방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이 가평의 작업실과 연결되고 있다!
날 것의 삶을 담은 그 작품 앞에서 관람자들은 순수해진다. 온갖 구별이 사라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해묵은 도식도 깨어진다. 이것이 2023 여름이야기다.
한 사람의 방문자로서 작품들을 둘러보고 작가들과 대화도 나눴다. 가슴 아픈 삶의 사연들도 듣게 됐다. 한 중년작가의 경우 열 손가락에 지문이 없었다.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으며 거친 노동을 하며 살았는지 알 수 있는 흔적이다. 다림방 작가들의 지문들이 궁금했다. '2023 여름이야기' 전시회는 강렬하고 순수한 꽃 이야기의 향연같아 보였다. 갤러리를 나서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 세상 어느 꽃이 이 꽃들만큼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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