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제외 8개 보험사 정책 자체가 없어
기후리스크가 최대의 안보·경제 위협으로 지목받는 가운데 국내 손해보험사는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보험 인수심사나 투자정책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국내 대표 손해보험사의 언더라이팅(보험사가 보험가입 희망자의 계약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의사결정 과정) 및 투자정책을 분석해 점수를 매긴 '인슈어링 아워 퓨처 코리아 스코어카드 2022'(Insuring Our Future Korea Scorecard 2022)를 지난 28일 공개했다.
점수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9개 보험사 가운데 삼성화재를 제외한 8개 보험사가 석유 및 천연가스 언더라이팅 정책을 수립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 및 천연가스 관련 투자제한 정책을 수립한 보험사는 아예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점수로 나타내면 석유 및 천연가스를 포함한 화석연료 언더라이팅 정책 평균점수는 10점 만점에 1.5점, 투자정책은 1.7점이다.
알리안츠(Allianz), 악사(AXA), 스위스 리(Swiss Re) 등 글로벌 10대 손해보험사의 점수(언더라이팅 4.1점/투자 3.9점)에 미뤄볼 때 국제적인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점수다. KoSIF는 "글로벌 10대 손해보험사 및 재보험사가 보험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국내 손해보험사는 글로벌 손해보험사와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에 KoSIF가 공개한 점수표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보험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글로벌 캠페인 '인슈어 아워 퓨쳐'(Insure Our Future)의 연례보고서와 동일한 문항 및 평가방법론을 적용한 한국형 스코어카드다.
인슈어 아워 퓨처는 매년 전세계 30개 주요 손해보험사와 재보험사를 대상으로 석탄, 석유 및 천연가스에 대한 언더라이팅 및 투자 정책을 평가한다.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보험사들에게 지구기온 상승폭을 1.5℃로 제한하기 위해 새로운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보험 지원을 중단하고 기존 석탄, 석유 및 천연가스 운영에 대한 지원을 1.5℃ 목표에 따라 단계적으로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인슈어 아워 퓨처는 지난 21일 30개 보험사 대표들에게 "보험이 없으면 대부분의 신규 화석연료 사업들은 시행될 수 없고, 기존 사업들은 계속해서 운영될 수 없다"면서 "사회의 리스크 관리자로서 보험사들은 이를 멈추기 위한 특별한 책임과 변화를 주도할 힘을 지녔다"며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언더라이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의 1.5℃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전세계 화석연료 생산량 가운데 석탄 9.5%, 석유 8.5%, 천연가스 3.4%를 매년 감산해야 한다. 국내 손해보험사의 경우 2018년부터 시작된 금융권의 탈석탄 주류화로 인하여 전반적으로 석탄 관련 정책 수립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석탄 언더라이팅 정책은 신규 석탄 보험으로 제한돼 있고, 기존 보험에 대한 단계적 축소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진 보험사는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2022년 6월말 기준 9개 보험사의 총 화석연료 금융지원 규모는 약 105조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석탄 관련 부보 잔액은 38조1000억원, 투자 잔액은 6조6000억원이었다. 석유 및 천연가스 관련 부보 잔액은 56조8000억원, 투자 잔액은 3조1000억원에 달했다.
KoSIF는 보고서를 통해 보험산업은 기후 리스크 관리를 위해 언더라이팅·투자 대상 기업의 화석연료 관련 매출 비중, 설비, 생산량 등을 지표로 배제 또는 유의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석유 및 천연가스를 포함한 화석연료 자산의 출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화석연료 대체제인 신재생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변환점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oSIF 양춘승 상임이사는 "이번 보고서 발간을 기점으로 국내 보험사를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인게이지먼트를 계획하고 있다"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보험산업의 역할을 금융당국, 민간 금융기관과 함께 공유해 보험산업의 변화가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기후변화 리스크를 경감시키는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체제 전환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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