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돼 있는 발전소 하나처럼 통합운용
날씨 변화에 따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할 수 있는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VPP)가 뜨고 있다.
차세대 전력망으로 불리는 가상발전소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과 같은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클라우드 기반의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통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되는 일종의 '스마트 그리드'다. 이를 통해 분산된 재생에너지의 운영 및 관리를 최적화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미 VPP사업에 뛰어들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2월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가정용 태양광과 전력수요자들을 대상으로 VPP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SK텔레콤도 지난 9월 식스티헤르츠, 소프트베리 등과 VPP 기술개발 업무협약을 맺었다.
해외에서는 VPP에 대한 투자가 오래전부터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테슬라는 호주와 2018년부터 5만 가구를 대상으로 가상발전소 실험을 하고 있다. 글로벌 석유기업 로얄더치쉘은 지난해 유럽 최대 가상발전소 회사인 독일 넥스트크라프트베르케(Next Kraftwerke)를 인수하기도 했다.
넥스트크라프트베르케는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 8개국에 설치된 1만여개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발생하는 전력을 통합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 기업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전기사용자 및 ESS를 모집하고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세계 최대의 VPP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인 P&S 마켓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까지 VPP 시장은 약 11억8700만달러(약 1조5500억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VPP는 재생에너지 시장의 성장과 함께 필수적인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VPP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전세계적으로 탈 화석연료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에 이르면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석탄발전을 제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향후 5년간 새롭게 확충되는 에너지원의 90% 이상은 신재생에너지일 것으로 예상했다.
재생에너지는 대형발전소인 원자력이나 화석연료와 달리 가정용 태양광처럼 소규모로 설치되기 때문에 전력망이 분산돼 있다. 이에 가상발전소는 분산돼 있는 소규모 발전 설비를 하나의 발전소처럼 통합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식이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가상발전소를 통해 미리 발전량을 예측하는 일이 중요하다. 가상발전소를 이용하면 3일에서 최대 일주일까지 날씨변화에 따른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예측할 수 있다.
가상발전소 스타트업 '식스티헤르츠'는 국내에서 가동중인 태양광·풍력·수력발전소 등 재생에너지 발전소 약 8만개의 에너지 발전량을 이틀전부터 예측해주는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데이터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기상청과 미국해양대기청(NOAA) 예보를 활용하고 있다.
식스티헤르츠 김종규 대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위치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발전소별로 최소 1년치 데이터를 모아 예측한다"며 "이를 통해서 예측 오차 범위는 2.6%까지 달성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태양광마다 그림자를 받는 각도, 풍력발전기 위치에 따른 풍속 차이 등 미세한 부분까지 고려해 미래 발전량을 계산해준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VPP 필요성은 아직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을 내건 우리나라는 지속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확충할 계획이어서, 국내에서도 VPP가 필수 기술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
16일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중요성이 커지면서 국내 VPP 시장은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한화솔루션은 2020년에 미국 에너지 소프트웨어 업체 젤리를 인수하는 등 VPP 발전을 위한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 관계자도 "신재생에너지가 많이 사용될수록 발전량과 수요량을 예측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이에 잉여전력을 저장하는 ESS나 플랫폼을 통해 전력을 정확히 예측하는 VPP를 통한 기술개발을 내년부터 본격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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