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ESG풍향계] 협력사 ESG 관리 못해서 망한 대기업들

최남수 서정대 교수 / 기사승인 : 2025-10-14 08:00:02
  • -
  • +
  • 인쇄

국내의 한 글로벌 기업은 지난 2023년에 협력업체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이 회사의 미국 내 공장과 거래하는 협력업체가 아동 노동착취 문제로 미 연방 당국의 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조사를 해보니 이 협력업체가 미성년자를 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업체는 인력 대행사가 허위서류를 내서 상황을 잘 몰랐다고 말했지만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이 글로벌 기업은 자회사인 협력업체를 매각했다.

또다른 사례. 북미에 본사를 둔 한 광산기업은 아프리카에서 광물을 채굴하는 협력업체가 노예 노동 등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소송의 대상이 됐다. 캐나다 대법원은 이 소송에서 원청업체가 국제 공급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 침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블랙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 기업에 대한 수백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철회했다.

공급망에서 발생한 ESG 이슈가 원청 기업의 리스크로 곧바로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결국 대기업이 ESG 경영 수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협력업체와 '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맞물려 가는 촘촘한 관리체제가 불가피함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공급망에 대한 ESG 관리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하나는 제도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의 자율적인 대응이다.

먼저 대표적인 제도는 유럽연합(EU)에서 활발하게 논의 중인 공급망 실사(CSDDD)이다. 이 제도는 EU 기업들이 공급망 안에서의 환경훼손과 인권 침해를 식별, 예방, 해소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민사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벌금을 물릴 수도 있게 했다. CSDDD는 시행 시기를 1년 정도 늦추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문제는 EU에 수출하는 국내 기업이 1만8000여개에 이르는 데다 CSDDD를 위반해 공급망에서 배제될 위험이 있다는 데 있다. 세밀한 대응이 필요한 대목이다.

제도와 별도로 글로벌 대기업들도 협력업체에 대한 ESG 관리를 체계화하고 있다.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의 요구가 커서 자사 ESG 경영의 성패가 공급망 관리에 달려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 기업인 베인이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의 절반 가까이(49%)가 지속가능한 협력업체들로부터 보다 많은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향후 3년동안 이렇게 하겠다는 기업 비율은 68%로 더 높았다. 특히 26%의 응답 기업은 지속가능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협력업체와는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2028년까지 거래 종료를 하겠다는 기업 비율은 49%로 상승했다.

국내 기업의 상황은 어떨까? 공급망 관리가 강화되고 있는 흐름은 동일하다. 중소기업 중앙회의 조사 결과를 보면 주요 대기업 30개 사 중 협력사에 대해 ESG 평가를 실시한 기업은 90%에 가까운 수준이다. 또 적지 않은 기업들이 평가결과를 인센티브 또는 페널티 부여 등의 방식으로 구매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응이 아직 부진한 부문도 적지 않다. 100대 기업 중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공급망 ESG 관리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공시한 기업은 54%에 불과하다(동반성장위원회 조사). 중소기업은 상황이 더 미진하다. 많은 협력업체가 ESG 경영에 필요한 데이터를 관리하지 않고 있고, 인력과 설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자산규모 5000억원 미만 기업 중 ESG 공시 준비를 '매우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에 그치고, 'ESG 대응조직이 없다'는 응답 비율은 57%에 달한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의 공급망 ESG 관리는 이처럼 갈 길이 먼 상태이다. 하지만 인권 침해 등 대부분의 ESG 리스크가 공급망 안에 숨어있기 때문에 리스크 축소 차원에서 이를 철저하게 관리해나가야 하는 필요성은 점점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의 위험 요소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기업들은 소비자와 투자자 등의 비판으로 매출 손실에 직면할 수 있으며, 자본조달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아울러 명성이 크게 훼손되고 소송으로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공급망 관리는 그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잘못을 피해야 한다. 사전예방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공급망의 ESG 리스크 데이터를 적극적 수집, 탐지하고 상시 스크리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협력업체에 대한 실사 이후가 중요한 데 고위험 업체에 대해서는 개선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이 모든 방안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ESG 경영에 있어 대기업과 협력업체는 '한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망 관리가 대기업 ESG 경영 성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도 ESG를 피해갈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 최남수서정대 교수 nschoi@seojeong.ac.kr  다른기사보기
  • 현 서정대 교수/더이에스지연구원장/전 YTN 대표/ 전 MTN 대표

핫이슈

+

Video

+

ESG

+

KT도 '유심' 무상교체 시행...김영섭 대표는 연임포기

KT는 최근 발생한 무단 소액결제 피해 및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다시한번 사과하고, 고객의 보안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5일부터 교체를 희망하는 전 고

노동부 칼 빼들었다...'런베뮤' 지점과 계열사도 근로감독

고용노동부가 과로사 의혹이 불거진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모든 지점과 운영사인 엘비엠의 계열사까지 근로감독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런던베이글

SPC 허진수-허희수 형제 '나란히 승진'...경영승계 '속도낸다'

SPC그룹은 허진수 사장을 부회장으로, 허희수 부사장을 사장으로 각각 승진 발령하면서 3세 경영승계 작업을 가속화했다.4일 SPC그룹은 이같은 인사단행

英자산운용사, HLB에 2069억 투자…"신약허가 모멘텀 탄력 기대"

영국계 글로벌 자산운용사 LMR파트너스가 HLB그룹에 1억4500만달러(약 2069억원) 규모의 전략 투자를 진행한다. HLB의 간암신약 재신청과 담관암 신약허가

인적분할 완료한 삼성바이오...'순수CDMO' 도약 발판 마련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적분할 절차를 마치고, 본연의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순수(Pure-play) CDMO' 체제로의 전환을 완료했다고 3일 밝

[ESG;NOW] 재생에너지 12% 롯데칠성...목표달성 가능할까?

우리나라 대표 음료회사인 롯데칠성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을 60%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2025년을 두달 남겨놓고 있는 현 시점

기후/환경

+

[단독] 정부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률 '61%안'으로 가닥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가 '61%안'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4일 정부 안팎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5

국제기후기금 97%는 기술에 '몰빵'...사회적 지원은 '찔끔'

국제적으로 조성된 기후기금의 97%는 기술투자에 투입됐고, 사람과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3일(현지시간) 영국

갯벌도 탄소흡수원으로...IPCC 보고서 개요에 韓 입장 반영

2027년 발간될 'IPCC 기후변화 보고서'에 갯벌도 탄소흡수원으로 포함된다.유엔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2027년 발간할 '이산화탄소 제거와

두달새 8㎞ 사라졌다...10배 빨리 녹고있는 남극 빙하

남극반도 동부의 헥토리아 빙하(Hektoria Glacier)가 기존에 관측된 최고 속도보다 10배 빠르게 녹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4일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학 나

엑손모빌, 기후변화 부정여론 확산에 금전 살포 '발각'

석유대기업 엑손모빌이 라틴아메리카 단체들에게 금전을 살포하면서 기후변화 부정 여론을 퍼뜨린 사실이 발각됐다.3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익

기후리더십 美→中으로 전환?...10일 개막 'COP30' 관전포인트

이달 10일~21일 브라질 베렘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올해 회의의 핵심 아젠다는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