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초래한 관세전쟁이 보복에 보복을 낳으면서 무역전쟁으로 격화되고 있다. 이 여파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미국 소비자 물가를 부추기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우려다.
미국은 4일(현지시간)부터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에 관세를 부과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제조한 수입품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서 제조한 수입품에 대해서는 지난 1월 10% 관세에 이어 이번에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결정한 명분은 마약 단속이다. 트럼프는 3개국을 통해 '좀비마약'이라고 불리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이 미국으로 다량 유입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3개국이 펜타닐 유입을 충분히 차단할 때까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관세를 다른 외교 현안을 해결하는 압박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이웃나라이자 오랜 우방인 멕시코, 캐나다와 무역협정(USMCA)을 체결해 상호 무관세를 적용해왔는데 지금에 와서 이 협정을 모두 무시하고 관세를 부과해버린 것이다.
중국도 표적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2월 4일부터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여러 품목에 부과한 25% 관세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중국산 제품은 이날부터 최대 45%의 관세가 부과됐다.
트럼프의 이같은 조치에 3개국은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캐나다가 300억 캐나다달러(약 30조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즉각 부과하겠다고 맞받아쳤다. 또 미국의 관세 부과가 지속되면 21일 후 추가로 1250억 캐나다달러(약 125조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도 관세를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트뤼도 총리는 "미국은 가장 가까운 파트너이자 동맹, 친구인 캐나다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시작했다"면서 미국의 관세를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고 맹비판했다. 이어 그는 "그(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캐나다 경제가 완전히 붕괴해 우리를 합병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이라며 "우리는 절대 51번째 주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 국내 지지율이 낮은 트뤼도 총리를 캐나다 주지사라 부르며 압박해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트럼프 관세에 맞대응하는 차원에서 미네소타와 미시간, 뉴욕주 150만가구에 공급하는 전기에 25% 세금을 물리겠다고 밝혔다. 더그 포드 온타리오 주지사는 트럼프가 오는 4월 2일 추가로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에 공급하는 전기를 모두 차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원료인 니켈 수출도 중단하겠다고 했다.
멕시코도 보복에 나섰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미국의 결정에 관세·비관세 조처로 맞대응한다"면서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 관세를 예고했다. 관세를 부과할 구체적인 품목은 오는 9일 대통령궁 앞 소칼로 광장에서 연설을 통해 발표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국 역시 오는 10일부터 닭고기, 밀, 수수, 대두 등 미국산 농축산물에 10∼1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산 농산물의 약 80%에 해당한다. 미국은 수출 농산물의 약 17%를 중국에 팔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농가들에게도 적지않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또 미국산 원목수입도 중단하고, 방산업체 10곳을 정해 교역 및 신규투자를 금지했다. 15개 미국 업체에 대해서도 이중용도 물자 수출을 금지했다.
중국은 앞서 미국이 지난달 4일 10% 관세를 부과했을 때도 바로 보복에 나섰다. 당시 중국은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15% 관세, 원유·농기계·대형차·픽업트럭에는 10% 관세를 더 물렸다. 또 텅스텐과 텔루륨 등 광물의 미국 수출을 통제하고, 구글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를 착수했다.
이처럼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이 '강대강'으로 맞대응하고 나서자, 트럼프 대통령은 재보복을 예고하고 있어 4국간의 관세전쟁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약 단속 외에도 무역적자 해소와 세수 확보 등을 이유로 다양한 관세를 추진중이며 이미 오는 12일부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예외없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에도 25% 이상의 관세를 예고했는데 이는 오는 4월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구리와 원목에 대해서는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에 착수했는데 이 또한 관세 부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트럼프발 무역전쟁이 우리나라 등 전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멕시코에는 삼성전자, LG전자,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트랜시스 등 400여개 한국기업이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멕시코가 미국보다 생산원가가 저렴한 데다 멕시코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기에 이 지역에 생산기지를 설립했는데 이제 25% 관세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또 미국의 관세 장벽에 막힌 값싼 중국 공산품들이 미국 대신 한국 등 주변국에 쏟아지면서 한국 기업들이 저가 공세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미국도 이 부메랑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미국 수입품에 적용된 관세가 고스란히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대형 유통업체들은 며칠 내 상품가격이 인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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