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보다 잔류 위험성 문제...사람에게도 위험
빈대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늘어나자, 보건당국이 빈대 박멸을 위해 그동안 사용을 제한했던 살충제를 긴급허가하면서 양봉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기후변화 등으로 해마다 꿀벌 집단폐사 피해를 당하고 있는 지경인데 꿀벌에게 치명적인 살충제까지 허가됐기 때문이다.
최근 '빈대믹'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전국 곳곳에서 빈대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국립환경과학원에 빈대 방제용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디노테퓨란'(DTN) 살충제 8개 제품의 긴급사용 승인을 요청해 지난 10일 사용을 허가받았다.
이 살충제들은 현재 미국 일부지역과 유럽에서 시판되고 있고, 비교적 인체와 생태 독성이 낮다는 게 질병관리청의 설명이다. 그러나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는 니코틴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곤충의 신경계를 교란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빈대 뿐 아니라 꿀벌에게도 치명적이다. 전세계적으로 꿀벌 집단폐사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꿀벌을 보호하기 위해 DTN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니코틴 합성 살충제가 꿀벌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를 연구한 자료도 있다. 일본 가나자와대학교 연구결과에 따르면 DTN 살충제를 10배 희석시켜 먹이와 섞어서 벌통에 공급했을 때 꿀벌들은 급성 독성으로 집단폐사했다. 또 100배로 희석시킨 살충제를 먹이에 섞어서 공급했을 때도 만성 독성으로 이어져 결국 군집 붕괴를 초래했다.
보건당국이 긴급사용 허가한 DTN 살충제를 100배 희석하더라도 꿀벌들은 종국에 집단폐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양봉농가에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남양주시의 한 양봉업자는 "다른 나라에서 시판한다고 해서 무작정 받아들이고, 빈대를 잡는다고 익충인 꿀벌을 죽이는 약을 쓰는 건 너무 성급하고 한쪽만 보는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질병관리청은 DTN 살충제를 빈대 방제용으로만 사용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빈대가 특정지역에서만 출몰하는 벌레가 아니므로 DTN을 살포하다보면 생태계 누출은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빈대는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아니어서 감염병으로 관리되지 않으므로, 출몰 신고가 들어오면 그때마다 방제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꿀벌 영양제품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DTN 살충제가 누출되면 당장의 독성보다 생태계에 잔류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이라며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 남용으로 2006년부터 수십년째 군집 붕괴 현상이 계속되는 미국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라며 정부의 졸속행정을 비판했다.
게다가 질병관리청은 가정용 DTN 살충제도 허가를 검토중이다. 이에 한 시민은 "집안에 살충제를 뿌리게 되면 빈대보다 사람이 살충제를 더 많이 흡입하게 될 것"이라며 "살충제 내성이 생긴 빈대가 나타나면 또 더 강한 살충제를 써야 하는 건가"라며 우려했다.
서울환경연합 최영 생태도시팀장은 "야외에서 사용하던 살충제를 인체 피부와 직접 접촉하는 침대와 소파 그리고 방안 구석구석을 뿌리게 되면 사람에게 해가 없을까"라며 "정부는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증기나 고온처리·진공청소기 흡입 등 우선 물리적 방제를 통해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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