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감옥으로 다시 돌아온 죄수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4-28 15: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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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 왜 갑갑함 느끼나
새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새장 부수기로

1879년 프랑스 대혁명 때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시민군은 바스티유에 갇혀있던 정치범들과 장기수 그리고 억울한 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죄수들을 풀어줬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며칠 후 많은 죄수들이 감옥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다시 감옥에서 지내게 해주시오. 나는 여기가 가장 편합니다. 바깥세상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라고 애원했다. 그들은 갑자기 변한 환경과 자유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내 친구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친구는 대학시절부터 혼자 자취생활을 했고 이후 신림동 고시촌 골방에서 살았다. 친구는 결혼하면서 넓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넓은 안방의 안락한 침대에서 도저히 단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잠 자는 시간이 되면 이불과 베개를 들고 침대에서 빠져나와 아파트 베란다에서 쪼그려 잠을 잤다고 한다. 새장처럼 좁은 공간에 누우면 신기하게도 늘 숙면을 했다. 친구는 그 베란다를 벗어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내게 말했다.

두 이야기는 우리 인간은 갑자기 주어진 새로운 환경을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습관의 힘이 바로 그것이다. 아울러 우리로 하여금 자유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는 주어진 자유를 누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자유를 잃어버린 상태가 오래되고 거기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자유를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펼쳐진 자유를 누리기보다 오히려 좁은 공간에서 웅크려 있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적잖은 자유를 누린다. 노예제나 신분제 사회에서 강제됐던 신체와 신분의 속박이 없다. 사생활 보장과 개성적 자기표현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정치적 자유 역시 형식적으로 주어져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자유가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갑갑함을 느끼고 자유가 제한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 다르게 생각하는 자유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만큼 자유에 대해 근원적으로 사유한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지지자만을 위한 자유, 혹은 당원만을 위한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의 자유이다."

그녀는 당시 독일의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하면서도 생각의 들러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진정한 자유와 더 많은 자유를 추구했다. "더 많은 자유란, 더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이다. 당원만을 위한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자유'가 어떤 특권이 된다면 자유의 효용성은 없어지고 만다."

이렇게 사유하는 로자의 내면은 문학적 향기로 그윽하다. "난 항상 담을 따라 걸어, 나와 친한 새 한 마리는 내 걸음과 나란히 걸으면서 이 덤블에서 저 덤블로 뛰어넘어, 귀엽지 않니?"

다르게 생각하는 자유, 로자에게 이 자유는 기존의 질서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이자 소속한 정당과 당원의 이익을 넘어선 보편적 차원을 사유하는 자유였다. 다르게 생각함으로써 그녀는 주어진 사유의 틀에 갇히지 않았다.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넓게 바라보고 사유했다. 우리에게 이 자유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니면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우리들 대다수는 초월적 신처럼 작동하며 우리를 지배하고 속박하는 돈의 전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온갖 영상 광고와 미디어는 주술사처럼 우리의 생각과 무의식조차 조종하려 든다. 우리는 유행에 따라 옷을 입고 충동적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온갖 관광문화 상품의 틀 안에서 여가를 즐긴다. 너무 튀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남의 눈치를 보며 말한다. 사회의 주류에 속하려 애쓰고 다수적 흐름을 벗어나지 않으려 몸부림친다. 우리는 가장 자유로운 듯이 보이면서도 무언가 갇혀 있다. 특히 우리를 둘러싼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단단히 묶여 있다. 적대적 이념 대결, 혐오와 편견을 부추기는 정치 담론, 권력과 미디어 언론에 의해 편집된 정보와 이미지와 뉴스들, 플랫폼 기업과 AI기술에 의해 섬세하게 조종되는 연결과 통제 등으로부터 우리는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메카니즘 안에서만 생각하고, 그 도도한 흐름에 마구 휩쓸려 살아가는 이상 우리의 생각과 삶을 여전히 새장 안에 갇혀 있는 셈이다.

알랭 바디우 역시 로자처럼 다르게 사유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자유는 다르게 사유하는 자들을 위한–오직 정말로 사유하는 자들을 위한, 다르게 할지라도 여러 의견들을 맹목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닌 – 자유다."

◇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자유

'이 한 권의 책이 나를 변화시켰어요!'
'그 사람의 강론을 듣고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자기 고백이거나 정교하게 짜진 광고이거나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안타깝다. 책 한 권 읽고 삶이 바뀌는 것만큼 허술하고 위험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신선한 책을 읽고, 또다른 가르침을 접하고 또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몸을 던지는 변신은 자기를 잃게 만들고, 급격한 회심은 맹신과 광신을 만들어낸다. 많은 책을 읽고, 여러 가르침을 접하고 통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좋을 것같다. 물론 하나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후에 자신의 선택을 바꿀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하던 자와할랄 네루(Pandit Jawaharlal Nehru)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다. 그는 1921년부터 1945까지 아홉 번이나 감옥에 갔다. 옥중에 있을 때 그의 부친이 사망하고 아내마저 투옥됐다. 그는 감옥에서 외동딸에게 첫번째 편지를 보낸다. "딸아, 나는 네가 한 두 나라에 국한되는 편협한 역사를 배우지 말고 전세계의 역사를 연구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는 감옥에서 3년간 세계사에 관한 편지를 써서 딸에게 보냈고 그것을 모은 것이 <세계사 편력>이라는 유명한 책이다. 그는 그곳에서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극복하고 동서양을 균형있게 바라볼 것을 강조했다.

네루가 감옥에서 세계사와 인도사에 집중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당시 인도의 역사는 영국 식민통치자와 식민주의 역사가들에 의해 조작된 왜곡된 역사였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 잡고 드넓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이 저항운동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네루의 작업은 제국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인식을 깨뜨리는 일이었다. 그는 1950년 세워진 인도공화국의 초대 총리가 됐다. 아버지의 정성어린 편지를 읽고 자라난 딸 역시 훗날 인도의 총리가 됐다.

◇ 새장을 부수는 저항

카프카가 이런 말을 했다. "새장이 마침내 새를 찾으러 나섰다." 묘한 비의가 담긴 듯 느껴지는 말이다. 보통 우리가 상상하는 '새와 새장'의 이미지나 이상은 '새장에 갇힌 새가 철망을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이다. 카프카는 거꾸로 말한다. 아마 카프카는 우리들의 실존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일 게다. 카프카 자신의 실존, 오늘날 인간들의 실존 말이다. 새장의 엄습을 받고 있는 우리들, 온갖 종류의 새장들이 우리를 포획하려고 달려드는 현실 말이다. 슬라예보 지젝은 카프카를 언급하며 주인의 담론을 벗어나는 길을 제안한다.

"큰 과제는 이런 저런 버전의 주인의 담화에 의해 다시 포획되지 않을 저항의 공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 카프카라면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즉 저항은 새를 찾아 나선 새장이 아니라 새장을 찾아 나선 새라고."

갇힌 자기 자신의 삶과 좁은 생각의 틀을 인식하고 이를 벗어나는 이는 저항한다. 그 저항은 다르게 생각하는 일, 더 넓은 세계를 조망하는 일, 공중에서 세계와 새장을 내려다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런 저항은 정신적 상상력과 내면적 자기 성찰의 길을 넘어서는 통합적 인식과 사회적 실천으로 이뤄진다. 내면의 정신적 저항은 잠시 자유를 맛보게 하지만 어김없이 자기 위안에 이은 무력한 슬픔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실천은 나만의 새장에서 벗어나기를 넘어 모든 새장 부수기로 나아가는 작업이다. 우리는 자유로운가? 그렇다면 새장으로 쳐들어가 새장을 부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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