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전쟁 에너지난에 EU내 집단대립 양상
독일이 마지막 남은 원전 3기 가동을 중단하면서 원전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두고 유럽연합(EU) 역내 회원국들 사이에서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독일은 16일(현지시간) 0시를 기해 남부 바이에른주 '이자르2'와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 '네카베스트하임2', 중서부 헤센주 '엠스란트'에 있는 3개의 원전 전원을 끄면서 완전한 '탈(脫)원전 국가'가 됐다.
독일은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단계적 탈원전'을 선언했다.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동독 출신의 '친원전' 물리학자였고, 이때 독일은 전력의 4분의 1을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었음에도 안정성과 환경문제를 고려해 내린 결단이었다.
'단계적 탈원전' 시점은 2022년말로 예정됐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빚어진 에너지대란에 마지막 원전 3기를 임시운영하다 이달 16일자로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이다. 1961년 독일이 처음 원전을 가동한 이래 62년만이다.
독일정부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자국내 반발도 없지않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 ARD 여론조사 결과, 원전 퇴출 찬성을 밝힌 응답자는 34%에 불과했다. 독일 시민 10명 가운데 6명이 원전 퇴출에 반대한 것이다. 이날 베를린 시내에서는 원전 퇴출 반대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마르쿠스 죄더 바이에른주 총리는 "독일의 번영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며 "유럽 전체가 기후친화적인 원전에 기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유럽연합(EU)에서 생산한 전력의 25%는 원자력에서 나왔다.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13개국에서 운영하는 원자력 발전소 103기가 EU 전체에서 생산하는 전력의 약 4분의 1을 생산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원전은 사고 발생시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인간과 환경에 끔찍한 피해를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부담이 크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적합한 까닭에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2035년까지 원전 6기를 건설하는 등 원전을 계속 사용한다는 입장이다. 2021년 원전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기존 정책 기조를 뒤집고 신규 원자로 건설을 재개한다고 선언했을 때도 기후변화 대응을 이유로 들었다.
지난달 28일 유럽연합(EU)이 원자력을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편입하는 문제를 두고 프랑스를 필두로 하는 친원전 국가와 독일로 대표되는 탈원전 국가가 양분되는 움직임이 나왔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아녜스 파니에 뤼나셰르 프랑스 에너지부 장관은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친원전 국가들의 에너지 장관을 소집했다. 원자력에서 생산되는 수소인 '저탄소 수소' 생산 확대를 EU의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에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에스토니아, 덴마크, 아일랜드,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 11개국 에너지 장관들도 따로 뭉쳐 친원전 국가들의 시도를 저지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탈원전국과 친원전국의 기 싸움 속에서 결국 EU는 운송·산업 분야에서는 원자력 기반 수소 생산 확대도 화석연료 수소 감축 활동으로 일부 인정하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벨기에는 2003년 탈원전을 선언하고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단계적으로 중단할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방침을 뒤집고 원전을 10년 더 가동하기로 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원전으로 회귀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를 제재하는 방안으로 가스 등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나가면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원전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한 것이다.
EU에서 탈퇴한 영국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2030년까지 원전을 1개만 남기고 폐쇄하려고 했으나, 전쟁 이후에는 전력 생산에서 원전의 비중을 15%에서 25%로 상향하기로 하는 등 원전 정책 방향을 '유턴'했다. 영국은 9기를 가동 중이고, 2050년까지 최대 8기를 더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재 추세가 전향적인 원전 증대의 계기를 마련하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부분의 원전이 40~60년 사용기한 만료에 가까워지고 있고, 새로 원전을 짓는다 해도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결국 10년간 재생에너지 발전이 더욱 다원화되고 안정화되면서 원전이 가격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장은 몰라도 경제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뮌헨 공과대학교의 미란다 슈레우르스 환경 및 기후정책과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적극적인 친원전 기조의 국가들도 원전 '확대'에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원전이 정말 미래가 있는지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만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독일은 2030년까지 40%대인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을 8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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