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절망을 떨쳐내는 방법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3-02-02 08: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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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불행하고 문제많다는 생각부터 극복해야
자기 배려를 하는 사람이 타인과 사회 건강하게 해


"내 삶이 위로받는 것 같아요." 오래전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의 말이다. 울컥하는 목소리로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는 책의 한 대목에서 자신의 삶이 위로받고 응원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우리에게는 작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사방에는 우리를 위축시키는 목소리들이 가득하다. '너에게 문제가 있다' '당신은 비정상이다', '당신을 실패한 사람이다', '왜 이렇게 살고 있니?', '당장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식의 말들이다. 심리학은 우리 마음이 병들었다고 진단하고, 언론은 부정적인 사건들을 주로 보도하고 영상미디어 매체들은 온갖 자극적인 내용으로 악이 득세하는 세상을 그려낸다. 지식인들은 늘 문제를 분석해 그 심각성과 사태의 회복 불가능성을 강조한다. 종교들은 인간이 죄 덩어리이며 탐욕에 사로잡혀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파한다. 더구나 유리체 빌딩들과 온갖 기업 광고들은 90%의 사람들에게 초라함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입이 신중하지 못한 사람들은 조언한답시고 도움되지 않는 충고의 말을 던져댄다. 과연 우리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문제가 많은 존재인 걸까?

◇ 자기 배려의 용기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조금도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공과 부를 찬미하는 세상에 절망하고 초라하고 평범한 자신에게 또 한번 절망한다. 우리는 완벽을 강요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완벽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또 다시 절망한다. 이중의 절망이다. 이 절망을 떨쳐내는 길은 없는 걸까?

자기 배려가 최선의 방법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는 자기 자신뿐이다. 자신을 돌보고 배려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자기 배려는 고대 그리스인의 삶의 바탕이 되는 생활 원리였다. '네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적 철학의 모토의 이면에는 자기를 배려하는 삶의 양식이 깔려 있었다. 자기 자식과 자리 배려는 마차의 두 바퀴처럼 함께 움직였다. 그러므로 철학적 사유나 자기 관조라는 내면의 탐구만 강조하고 자기 배려를 모른다면 반만 아는 것이다. 자기 배려는 자신의 삶과 신체를 돌보는 일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만 정신적 신체적 웰빙에 가깝다. 하지만 선비의 안빈낙도(安貧樂道)와 같은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결을 지닌다. 자기 배려는 삶을 긍정하고, 경제적 사회적 차원도 소중히 여긴다. 그리스 폴리스의 직접 민주주의 역시 권력의 폐해를 방지하고 시민 개개인의 자유와 생활을 최적화하려는 자기 배려의 가치에 기초하고 있다. 자기 배려는 자신의 삶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연루하는 낙관적 태도의 기술이다.

불행 중독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행복할 수 있는 수많은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불행한 이유를 찾는 습관을 가리킨다. 불행 중독에 빠지면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불행하지 않았을 건데…, 좋은 부모를 만났더라면 더 행복했을 텐데…, 저 사람만 아니라면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지 않았을 건데….' 자기 자신에게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대개 남탓을 한다. 숨 막히는 어떤 조직체나 어떤 사건, 불공평한 제도 등 온갖 이유를 찾아낸다. 그 지목하는 원인이 거짓말이거나 단지 환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들에 집착하고 불행할 이유들을 추적하는 속박된 정신이 문제다. 이런 태도라면 아마 파라다이스에서도 불행한 이유를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행복중독만큼이나 불행중독도 어리석고 소모적이다.

자기 배려를 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신체와 내면을 가꾼다. 선량한 쾌락주의자가 되어 매사에 자신과 남에게 기쁨을 주는 선택을 한다. 자기 배려를 아는 자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만세를 외치고자 몸부림치지 않는다. 골방에서도 광야에서도 노래 부르고 때론 길 없는 길을 찾아간다. 자기 삶이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에 이런 문장이 있다. "가장 아깝고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시간을 자기 자신한테 주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누군가 나에게, 아니 내가 남에게 이런 말을 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 "당신은 잘 살고 있다. 잘 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의 삶은 아름답고 가치 있다." 그걸 입증할 필요도 없다. 마음을 담은 말 한마디로 족하다. 자기 배려의 출발점은 자신에게 던지는 말을 바꾸는 일이 아닐까. 스스로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다. "내게 주어진 이 삶을 기꺼이 살아가겠다 나의 마음과 신체를 가장 건강하고 활기차게 하리라. 매사에 나를 존중하고 배려하리라."

◇ 보다 사회적일 필요있어

자기 배려는 타인에 대한 배려로 이어진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 사회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자기 배려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된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타자(others)가 없이는 나를 제대로 지탱할 수도 없고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타자에는 다른 사람들(타인, the other people)과 사회라는 구성체, 동물 및 자연 세계가 다 포함된다.

자본주의적 문화가 고도화되고 신자유주의 가치가 만연하면서 우리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과 '사회적인 것'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 버렸다. 그래서 오늘날의 시대를 '4무시대'라고 한다. 그 첫째는 무감동이다. 감정이 병들어 있어 느낄 줄 모른다. 기뻐해야 할 것을 기뻐할 줄 모르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 함께 울 줄 모른다. 불의와 부당함에 분노할 줄도 모른다. 둘째는 무책임이다. 윤리적 가치가 실종되어 상호적 책임을 회피한다.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무책임하다. 셋째는 무관심이다. 초이기주의가 만연하여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넷째는 무의미다.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극도의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삶이라는 열린 무대에서 매 순간 의미를 창조하며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

우리는 보다 사회적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 '사회적'(social)이라는 말을 결코 '사교적' 혹은 '외향적'이라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사회성'은 수평적이고 평등한 사회, 더불어 사는 공동체, 상호 배려가 만연한 관계성이라는 차원을 포함한다. 자살율이 17년째 세계 1위인 나라에서 너도 나도 잘 살 수 없다. 노인자살률이 OECD 평균보다 3배나 높은 나라에서 노년의 행복은 보장될 수 없다. 사회적 애도가 공적으로 거부당하는 사회에서 참사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마음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입시지옥 상태의 사회에서 우리의 자녀와 조카, 이웃집 아이들은 결코 편안할 수 없다. 청년 실업이 만연하고 청소년 및 청년 우울증이 심각하고 30대 이전 젊은이들의 죽음 이유 1위가 '자살'인 사회에서 모두가 안녕하기 곤란하다. OECD에서 주간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에서 노동자의 일상과 가정은 위협받는다. 사회의 상위 10%의 소득과 하위 90%의 소득이 무려 52배가 차이가 나는 불평등 사회에서 대다수는 경제적 고통과 소외감을 겪을 수밖에 없다. 30%의 부동산 소유자가 한국 내 부동산의 97%가 소유하고 있는 세상에서는 갈등과 불화는 필연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social)이라는 말은 지극히 불온시 된다. '사회'를 강조하면 별나게 보이고, 평등을 강조하면 정치적으로 낙인찍히고, 평화를 말하면 이념적으로 보이고, 공생과 나눔을 말하면 삐딱하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가장 반사회적인 사회다.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이지 않은 정치인과 정당은 외면 받고, 사회적 책임을 모르는 기업은 시대에 뒤처지고, 사회적 실천이 부재한 개인주의는 부끄러운 사회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복원해야 할 가치는 'social'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따라서 자기 배려를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를 위한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 길은 시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다. 정치는 사회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자기 배려이며, 자기 배려는 사적 영역에서 실행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지인이 헌혈을 하러 헌혈차를 찾아갔다. 간호사가 주소를 확인하더니 피검사도 하지 않고 헌혈을 거부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파주사람이라서 그렇단다. 당시 파주가 말라리아 위험지역이었다. 나름 작은 생명의 나눔을 하러 갔던 그는 아쉬웠고 기분도 묘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내 피가 건강하지 못하면 헌혈할 수 없구나. 내가 건강하지 못하면 남을 도울 수가 없다.' 그렇다. 내가 먼저 건강해야 하고,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배려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배려로 나아가는 기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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