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억 쏟아붓고 또 연기...'일회용컵 보증금제' 산적한 문제들

차민주 기자 / 기사승인 : 2022-09-28 08:01:02
  • -
  • +
  • 인쇄
무인회수기 1대 1000만원...자비로 구입하라?
일회용 컵 재활용 제대로 되는지 추적도 안돼

환경부가 당초 오는 12월 2일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할 예정이었던 '일회용컵 보증금제' 도입을 또다시 연기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환경부는 전국 3만8000여곳의 프랜차이즈를 대상으로 보증금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지난 23일 돌연 세종특별자치시와 제주특별자치도 프랜차이즈 매장에만 보증금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자원재활용법'에 근거한 것이다. 이 법은 지난 2020년 5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그동안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를 출범시키고, 보증금을 300원으로 결정하는 등 올 6월부터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도입하기 위해 준비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환경부는 제도 시행 20여일을 앞두고 비용과 일손 부담이 크다는 업주들의 반발을 수용해 시행일자를 올 12월 2일로 유예했다. 

6개월을 유예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점들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자, 또다시 연기한 것이다. 이번에는 시행일자를 못박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언제부터 도입될지도 알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무인회수기'로 꼽히고 있다. 또 수거된 일회용 플라스틱컵과 종이컵을 어떤 방식으로 수거하고 재활용할지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300원의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특수라벨을 부착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비용부담으로 컵제조사들이 참여를 꺼리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2년간 170억원을 쏟아붓고도 준비 미비로 또다시 연기된 일회용컵 보증금제,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씩 짚어봤다.


◇ 무인회수기 개발 '미적'···크고 비싼 것도 문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하면 프랜차이즈 매장은 일회용컵을 수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매장들은 컵수거 가판대나 무인회수기를 설치해야 한다. 회수장비가 없는 매장은 손님들이 반납하는 컵의 바코드를 일일이 찍어서 300원을 환불해줘야 한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제도가 원활히 시행되기 위해서는 서울에서만 최소 1000대 이상의 무인회수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환경부 검증을 통과한 무인회수기는 1대도 없다. 제도 시행이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는데 무인회수기가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것이다. 28일 무인회수기 개발이 언제 이뤄지냐는 뉴스트리 기자의 질문에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달 말에 무인회수기 개발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라면서도 "정확히 언제 될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무인회수기 비용도 문제다. 환경부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매장은 1대당 1000만원씩 하는 무인회수기를 자비로 구매해야 한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주들의 비용을 보전해줄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점주들 입장에선 값비싼 무인회수기 구매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무인회수기 설치는 필수가 아니기 때문에 선별 칸 등으로 충분히 대채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게다가 무인회수기 크기도 문제다. 협소한 크기의 프랜차이즈 매장은 높이가 2m 가까이 되는 무인회수기를 설치할 공간이 없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메가커피 가맹점주는 "매장이 협소해 무인회수기를 놓을 자리가 없다"며 "카페밖 인도도 좁아 무인회수기를 길거리에 설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 수거업체와 계약은 점주가 알아서?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목적은 일반쓰레기로 버려지는 일회용컵을 수거해 재활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환경부는 재활용 과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수거된 일회용컵들이 어떻게 재활용되냐는 질문에 환경부는 "환경부에서 선정한 수거운반사업자를 통해 회수된다"며 "회수 주기는 1주일에 2~4번 정도로 프랜차이즈 매장별로 상이하게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횟수 또한 프랜차이즈가 수거운반사업자와 직접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원하는 기간에 수거가 안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매장에서는 수백에서 수천개의 오염된 일회용컵들을 쌓아둬야 한다. 위생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수거되는 일회용컵들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재활용되는지 추적도 안된다. 환경부는 수거운반사업자가 일회용컵을 가져가고 그 컵들을 재활용업체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재활용이 이뤄진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작 수거운반사업자가 담당하는 카페도 정해져있지 않을 뿐 더러 일회용컵을 전달하는 재활용업체도 명확하게 지정돼 있지 않다. 


◇ 일회용컵 재활용 가능한 업체 '거의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27일 환경부로부터 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컵 재질 중 하나인 '페트(PET) 트레이'를 재활용할 수 있는 업체는 경기 화성과 부산에 있는 단 2곳의 업체뿐이다. 심지어 이 업체들은 보조금 문제로 인해 일회용컵을 받지 않을 전망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범 운영되는 제주도는 재활용품 처리시설이 아예 없다. 수거한 재활용품을 모두 배에 실어 내륙으로 옮겨야 한다. 한 재활용업체 대표는 "배에 실어 육지에 가져오면 또 차를 이용해 재활용 업체로 가져가야 한다"며 "이 과정은 비용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고 이송 과정에서 탄소도 배출돼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플라스틱 일회용컵의 재질이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다. 제도 도입에 앞서 스타벅스, 이디야, 투썸플레이스, 커피빈 등 국내 20여곳의 프랜차이즈들은 플라스틱컵과 뚜껑의 재질을 페트(PET)로 통일했다. 하지만 공차는 여전히 일회용 플라스틱 재질을 PP로 사용하고 있다. 99.99% 고순도 재생원료를 생산하려면 재질이 다른 컵을 섞어서 재활용할 수 없다. 재활용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플라스틱 재질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


◇ "편의점과 무인카페는 왜 제외하나"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하려면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에서 제공하는 특수라벨을 일회용컵에 붙여야 한다. 라벨 가격은 1개당 6.99원이다. 컵이 투명하거나 무지인 표준용기는 4원, 컵에 인쇄물이 찍힌 비표준용기는 10원의 처리 지원금을 추가로 내야 한다. 라벨을 주문할때는 컵 1개당 보증금 300원을 선지급해야 하므로 음료 1잔에 약 311~317원의 비용이 추가로 드는 것이다.

이에 환경부는 환불표시 라벨 구매비용(1개당 6.99원)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지원금은 미반환 보증금을 활용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양의 일회용컵이 반환될 경우 지원금이 고갈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환경부는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 

심지어 일회용컵을 많이 사용하는 편의점과 무인카페는 보증금제에서 제외돼 있어, 프랜차이즈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한해 편의점에서 배출되는 얼음컵은 무려 5억개에 달한다"며 "보증금 제도는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모든 업소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증금제가 세종시와 제주시에 우선 도입되면서 지역차별 문제도 떠오르고 있다. 고장수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이사장은 "총 17차례 회의 동안 논의한 모든 내용은 전국 시행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재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환경부가 정치권 압박에 성급하게 제도를 밀어붙여 일부 점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배출권 구매하고 온실가스 감축?...소송 당하는 기업들 급증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온실가스를 상쇄했다고 주장한 기업들이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기후소송이 그만큼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런던정경대(LSE

엔씨, 탄소배출량 절반으로 감축…'ESG 플레이북 2024' 발간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탄소배출량을 전년 대비 50% 수준으로 감축했다.엔씨소프트가 지난해 ESG 경영 성과를 담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ESG 플레이북(PLAY

우리금융, 다문화 장학생 1000명 대상 18.9억 장학금 지원

우리금융이 올해 다문화 장학생 1000명을 선발하고, 18억90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한다고 26일 밝혔다. 우리금융은 우리다문화장학재단의 '다문화 장학사

계면활성제 대체제 나오나...LG전자 '유리파우더' 실증 나선다

LG전자가 세탁세제 원료인 계면활성제를 대체할 수 있는 기능성 신소재 유리파우더 '미네랄 워시(Mineral Wash)'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증에 나선다.LG

카카오, ESG 보고서 '2024 카카오의 약속과 책임' 발간

카카오가 2024년 한해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주요 활동과 성과를 담은 ESG 보고서 '2024 카카오의 약속과 책임'을 25일 발간했다.카카오는 2024년 AI

4대 금융 ESG평가 '최우수'...LG·현대차·KT·SKT 한단계 하락

KB금융, 신한지주, 우리금융, 하나금융 등 4개 금융지주사가 ESG경영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LG, 현대자동차, KT, SK텔레콤은 모두 한계단 하락했다.

기후/환경

+

챗GPT로 학교숙제?..."원자력으로 계산기만 쓰는 격"

인공지능(AI)의 탄소배출량이 모델 및 질문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질문 수준에 따라 최대 6배, AI 모델 수준에 따라서는 최대 50배까지도

배출권 구매하고 온실가스 감축?...소송 당하는 기업들 급증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온실가스를 상쇄했다고 주장한 기업들이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기후소송이 그만큼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런던정경대(LSE

"대구가 작아졌다"…1990년대 이후 몸집 절반 줄어든 이유

1990년대 이후 대구의 몸길이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이유가 인간의 포획활동을 회피하기 위한 유전적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인간이 몸집이 큰

열돔에 갇힌 美 대기오염도 악화...뉴욕 3일째 '오존 경보'

미국 중부와 동부를 뒤덮은 열돔 현상이 폭염뿐 아니라 대기질까지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뉴욕과 롱아일랜드 지역은 지상오존 농도

보조배터리부터 전자담배까지...'패스트테크' 전자폐기물 주범

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에 이어 일명 '패스트테크'로 알려진 저가의 소형 전자제품들이 전세계 전자폐기물 문제의 주범이 되고 있다.패스트테크는 휴

졸업식 도중 150명 '열사병'…美 1.6억명 열돔에 갇혀있다

미국 동부에 위치한 뉴저지주의 한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학생 150여명이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현재 미국은 열돔 현상으로 1억6000만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