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변화는 예고하지 않는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8-08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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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인지 못하면 변화가 재앙으로 돌변
변화의 희생자 되기보다 주도자가 돼야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놀라서 펄쩍 뛰쳐나온다. 그런데 적당한 온도의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고 가열하면서 온도를 서서히 높이면 다르다. 개구리는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어느 순간 개구리의 사체가 물 위로 붕 떠오른다.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마냥 자신의 환경에 안주하는 사람은 바로 이 개구리와 같다.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아늑한 온도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재앙이 찾아온다. 이를 '슬로우 데스(Slow Death)'라고 한다.

누구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면 그 변화가 재앙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내가 감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미리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대개 자신을 담고 있는 그릇의 온도 변화를 계측할 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 않은 개구리의 감각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개구리의 관점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 인쇄술이 초래한 놀라운 변화

급격한 변화는 누구나 알아챌 수 있다. 자연 재해나 경제 공황이나 전쟁과 같은 격변이 대표적이다. 누구든 즉각 반응한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도 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기도 한다.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는 이를 알아채기 힘들다는 점에서 보다 치명적이다. 게다가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일수록 깊고 근원적이다.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변화가 진행되지만 그 상황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알아채기 힘들다.

서구에서 인쇄기를 발명한 사람은 구텐베르그다. 그는 14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세공업자이자 인쇄업자였다. 그가 만든 인쇄기술이 초래할 변화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구텐베르그 이후 유럽의 지식과 정보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이전에는 주로 필사를 통해 책이 제작됐고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이 지식을 독점했다. 주로 수도원에서 필사본 성서와 책들이 제작됐고 대중은 자국어로 된 책을 접하기가 불가능했다.

구텐베르그의 발명 이후 불과 50년이 지난 1500년경에 이미 900만권이 넘는 책들이 출판된다. 책들이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대중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르네상스(Renaissance)와 종교개혁에 직접적으로 영향으로 미쳤고 이후 근대를 여는 데 크게 일조한다. 그의 인쇄기가 지식의 독점 체계를 무너뜨리고 계몽을 빛을 비추는 도구가 된 것이다.

구텐베르그가 일으킨 인쇄 혁명의 의미를 사람들이 깨닫는 데도 반세기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 속도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겠다는 원대한 꿈을 앞세우며 '윈도95'를 출시한지 수십 년이 지났다. 인터넷의 대중화 이후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을까? 단지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연결만이 아니다. 기기와 시스템들이 입체적으로 연결되고 스마트화됐다.

생명공학과 우주공학의 혁혁한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생활하고 있다. 삶의 방식이 전면적으로 바뀌고 있다. 노동과 업무, 비즈니스, 거래, 금융, 기술혁신, 의료, 농어업, 교통, 문화와 레저, 소통과 조직, 예술과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놀라운 변화가 진행중이다. 이를 4차산업혁명이라고 한다.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소셜서비스(SNS)를 하지 않거나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거대 플랫폼 기업들과 연결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AI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있고 있다. 앞으로 AI 기술의 진화로 초래될 삶의 변화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우리 삶을 둘러싼 변화의 속도는 실로 미증유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변화의 물결 속에 잠겨 있어서 그 속도와 강도를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조선왕조 500년간 사서삼경이 교과과정이자 교재였다. 천년의 절반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제는 국가교육과정은 몇 년을 주기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고 과목과 영역들도 분화되고 교육방법도 다양해졌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학교교육 이외의 IT 관련 기술들을 반드시 습득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앞으로 가속화될 변화는 그 누구도 경험하지 않았으며 또 예상하지 못할 수준일 것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면 서서히 밀려나게 된다. 인식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대비해야 하고 역량을 키워야 한다. 단지 안일하게 느끼기만 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Slow Death' 과정에 있는 셈이다.

◇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들

사람마다 변화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먼저, 변화에 대한 무지한 사람들이 있다. 변화의 조짐이나 현저한 흐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무감각 혹은 태만에 가까운 반응이다. 둘째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를 감지하고서도 애써 무시하는 태도이다. 이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을 변화시키지도 않고 조직의 변화도 거부한 채 과거의 방법들과 질서를 그대로 고수하며 거기 안주하려 한다.

셋째,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변화를 대세로 인식하고 변화에 발맞추어 적절하게 태도를 정하고 생존하려는 태도다. 넷째, 변화의 파도를 타며 전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변화의 기류를 기회로 인식하고 이를 발판으로 도약을 이루는 감각을 지닌 자들이다. 변화를 환영하고 즐기기까지 한다. 파도타기를 위한 장비와 기술을 준비한다. 그리고 파도가 오는 곳으로 뛰어간다. 마지막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변화를 주도한다. 기존의 방법과 질서를 넘어선 그 무엇을 꿈꾸며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들을 체인지 에이전트(Change Agent) 즉 변화주도자라고 부른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일어난 변화 역시 실로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비대면 회의와 학습이 일상화되고, 금융거래의 대부분도 스마트폰으로 처리되고 있다. 특히 기술의 변화는 생산방식과 노동과 삶의 스타일을 크게 바꾼다. 아시다시피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각종 기술의 발달로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직업분포도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2017년 유엔 미래보고서는 2045년에는 지금의 일자리 80%는 인공지능(AI)이 대신할 것이고 현재 초등학교 어린이의 65%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직업에 종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AI의 발달로 전문직의 상당수는 그 전문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지구촌에 존재하는 직업의 수는 3만여개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의 직업들은 사라지고 점차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면서 직업의 수는 4만~5만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새롭게 생겨나는 직업은 어떻게 시작될까? 도도한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고 창의적으로 자신을 준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과 조직들에 의해서다.

◇ 변방에서 일으키는 새로운 변화

2008년 4명의 청년학생이 모였다. 그들은 학자금 대출금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안경을 잃어버리거나 부러뜨린 상태였다. 안경을 새로 장만하려 했지만 만만치 않는 가격으로 울화가 치밀었다. 안경 렌즈가 너무 비싸 구입도 못하고 불편한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안경가격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비즈니스를 의논했다. 당시 안경업계의 거대공룡인 룩소티카Luxottica가 안경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공룡을 쓰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저가 안경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회사를 차렸다. 안경점에서 보통 500달러에 팔리는 안경을 온라인으로 95달러에 판매하고, 안경 하나를 구입하면 저소득국가 지역의 사람에게 안경 하나를 기부하기로 했다. 2010년 그들은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는 웹사이트를 공개했다. 이들은 그날 하루 안경 한두 개라도 팔리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주문이 폭증했다. 한 달이 못되어 첫해의 판매 목표를 달성하고 수만명의 고객을 대기자 명단에 올렸으며 수요를 맞추기 위해 충분한 재고 물량을 확보하는 데 9개월이 필요했다.

이 회사의 이름은 와비바커Warby Parker다. 잡지 'GQ'는 그 회사를 안경 산업계의 넷플릭스라고 불렀고, 2015년 월간지 '패스트 컴퍼니(Past Company)'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의 목록에 올라갔다.


순응하는 길이 있고 독창성을 발휘하는 길이 있다. 순응conformity이란 이미 잘 닦여진 길로 들어가 앞서가는 무리를 따라가는 길이다. 반면 독창성originality이란 인적이 드문 길을 선택하거나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길이다. 창조적 시도의 특징은 분명하다. 주류적인 흐름이나 상식을 거스르는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시도를 하는 도전 정신이다. 참신한 아이디어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때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새 영토가 생겨난다.

와비바커Warby Parker의 스토리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누구든 그럴듯한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절로 잘 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무언가 도전하고 모험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는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주류적 흐름이나 지배적인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로는 변화를 이끌 수 없다. 그 속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고 안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영역만이 아니라 현장 노동, 비영리적 활동, 학생들의 공부와 새로운 학습, 공동체, 자기 수련, 조직 등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심부를 지향한다. 기존의 질서 안에서 상층부로 진입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언제나 심원하고 의미 있는 변화는 변방에서 일어난다. 정착민 마인드를 버리고 기꺼이 유목민이 될 때 창조적인 선을 긋게 된다. 변화의 희생자가 될 것인가? 변화의 주도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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