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제재에도 루피-루블 무역협정...교역 움직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값이 크게 떨어진 러시아 석유를 인도에서 사들이고 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유가가 더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27일(현지시간) 미국 CNBC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3월 이후 인도로 향하는 러시아산 원유 수송량이 큰 수치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미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인 중국도 원유를 대폭 할인된 가격에 사들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맷 스미스(Matt Smith) Kpler 수석석유분석가는 "3월초부터 러시아산 원유 약 600만 배럴이 선적돼 4월 초 인도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전체 배출량의 절반에 달하는 엄청난 수치다.
이는 주요 세계강대국 및 러시아 석유를 기피하는 기업들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미국은 러시아에게 에너지 제재를 가했다. 영국은 연말까지 제재를 지속할 계획이며 유럽연합 또한 같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IEA에 따르면 러시아는 하루 약 5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는 세계 3위의 산유국이다. 이러한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석유 공급부족에 대한 공포로 시장이 요동쳤다. 분석가들은 제재로 러시아가 판매할 수 없는 과잉 원유가 발생해 시장에 격차가 생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17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산 원유가가 크게 떨어졌지만 아시아 석유 수입업체들은 대부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기존 공급업체를 고수하고 있다. IEA는 "현재 3월 중순 기준 러시아산 원유가 하루 300만 배럴가량 공급되고 있다"며 "이는 4월부터 증가할 수 있지만 규제나 비난 여론이 고조될 경우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와중에 ANZ리서치는 25일 브렌트유(영국 북해에서 생산되는 원유) 가격이 계속 인하되면서 인도 정유업체들이 러시아 우랄산 원유 입찰을 여러 차례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분석가 및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약 20% 저렴해진 석유를 구매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볼 때 배럴당 20달러 이상 할인된 금액이다.
인도, 중국 등 주요 석유수입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치솟은 유가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유가는 최근 몇 주 동안 변동성을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1년 전 대비 약 80% 상승한 수준이다.
사미르 N. 카파디아 보겔(Vogel) 무역책임자는 인도가 러시아로부터 연간 2~5% 사이의 명목상 점유율로 원유를 수입한다고 밝혔다. 인도는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나이지리아로부터 원유를 공급받아왔지만 지금은 해당 공급국 모두 가격이 인상된 것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카파디아는 "오늘날 인도 정부의 동기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이라며 "특히 팬데믹과 글로벌 성장 둔화의 여파 속에서 석유를 80~85% 수입할 때 원유 20% 할인을 포기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와 러시아는 냉전시대부터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인도 군사장비의 약 85%가 러시아 혹은 소련의 일부였던 국가에서 조달되고 있다. 러시아는 군사·방위장비 제공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인도를 지원해 왔다. 또 러시아는 카슈미르 영토를 둘러싼 중국 및 파키스탄과의 분쟁 등 중대한 문제에서도 인도를 지원했다.
이 때문에 인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중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 투표에서도 기권해왔다.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억제하라는 백악관의 압력도 인도에서 묵살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러시아·인도 간 루피-루블 무역 협정이 일주일 내로 체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3일 삭티벨(Sakthivevel) 인도수출단체연맹(FIEO) 회장은 인도가 러시아와의 무역협정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른바 루피-루블 무역협정이 빠르면 다음 주에 도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루피-루블 무역협정은 서방의 제재에도 인도 수출업체들이 러시아와 교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이다. 인도 재무부와 인도중앙은행(RB)은 지금까지 이 협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삭티벨 회장은 인도 정부에서 4~5개의 국유은행이 이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검토 중이며 중앙은행 총재, 재무장관 및 은행 간 협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오히려 인도 수출업자들에게 러시아 시장에서 확장할 기회를 준다고 덧붙였다. 서방세계 전체가 러시아를 금지하고 있는 만큼 인도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할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지속적인 무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제재를 가한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을 도발할 위험이 있다. 미국은 인도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인도 공식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인도-미국 교역 액수는 수출 710억달러, 수입 410억달러 등 총 1126억달러에 달한다. 수출 33억달러, 수입 69억달러에 그친 인도-러시아 교역보다 훨씬 큰 수치다.
한편 분석가들은 인도와 더불어 중국의 러시아산 석유 구매량까지 증가하면 전세계 유가에 타격이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석유수입국이자 러시아 원유수입국으로 IE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하루 평균 160만 배럴의 러시아 원유를 사들였다. 여기서 원유 할인 및 위안화 결제까지 가능해지면 구매량이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는 올해 소폭 증가했지만 분석가들은 이를 전쟁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스미스 분석가는 "중국의 ESPO 원유(러시아가 아시아태평양시장으로 수출하는 석유) 수요와 더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 흐름의 변화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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