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불통국가 3위 한국...소통의 열쇠는?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3-23 11: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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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대화하는 '우리'가 사회 이루는 골간
대화하는 용기...수평적 관계로 소통해야

요즘 소통이 화두다. 어디서든 소통을 강조하고, 소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로 이동하는 이유도 국민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전 과정에서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각종 사회단체들과 기업들에서도 소통을 최선의 정책으로 삼고 애쓴다. 과연 소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 걸까?

◇ 소통이 막히면 터진다

어느 단체에서 일할 때였다. 지도자는 성품이 좋고 경청을 잘하는 분이었다. 연말을 앞두고 그가 신선한 제안을 했다. "기획팀을 만들어 조직의 미래 설계를 위해 좋은 안을 만들어 주세요." 그래서 여럿이 모여 지혜를 모으고 토의하여 마침내 기획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기획은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지도자의 자기 기대와 이익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팀 회의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전혀 소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불통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소통을 할 줄 몰랐다. 사실 한 사람에게만 결정권이 집중돼 있는 조직에서 소통이란 대개 그럴싸한 장식품이 되고야 만다.

소통(疏通)은 단지 서로 교류하고 통하는 것 이상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함께 숙의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핵심이다. 단지 말을 섞는다고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해 최적의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통의 출발점은 상대방의 존재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상대방을 하나의 주체로 혹은 파트너로 존중하는 일이다. 가정이나 개인관계에서도 '상의하는 일'이 소중하다. 소소한 일이든 큰일이든 배우자나 가족구성원에게 의견을 묻는 일이 먼저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고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런 사전 정보도 의사교환도 없이 일을 진행해 버리면 가족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그것이 반복되면 심리적 거리감이 축적돼 마침내 멀어진다.

공동체 조직이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신경계가 촘촘하게 이어지고 혈류가 원활하게 순환해야 활력을 지닐 수 있다. 소통이 막힌 동맥경화증이 깊어지면 갈등이 터지거나 급사하기도 한다. 하나의 공간 혹은 사회속에 연결돼 공생하려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 마음은 소통을 통해 드러난다.

◇ '사이비 소통' 갈등만 부추긴다

의사소통은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는 상호주관성에 기초한 의사소통을 강조한다. 홀로 사유하고 결정하는 '나'가 아니라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우리'가 사회를 이루는 골간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가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타자를 단지 도구화하지 않고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하는 일. 둘째,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를 목적으로 삼는 일. 셋째, 합리적 대화를 하고 토의를 할 것. 이러한 전제에서 그는 토의 민주주의를 사회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토의 민주주의는 단지 토론이나 토의를 많이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시민 사회의 공론장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의견과 토의를 기초로 입법부가 법을 만드는 것을 방향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사회의 의사소통의 망은 국가권력이나 경제 체제의 영역으로부터 자율성을 지니는 사회공간을 뜻한다. 이는 다분히 서구적 정치경험에 기반한 하나의 이상일 것이다. 게다가 그는 국가주의 체제의 전일성과 포획 속성을 과소평가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하버마스의 아이디어는 오랜 세월 군주제와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시민적 공론의 경험이 빈약한 우리에게 신선한 도전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세번째로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1년 전경련이 2016년 기준 OECD 가입 30개국을 대상으로 갈등 지표를 산출한 결과, 정치 4위, 경제 3위, 사회 2위로 종합 3위를 기록했다. 종합 갈등지수는 1위 멕시코, 2위 이스라엘 다음으로 높다고 한다. 이는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부의 갈등관리 능력을 나타내는 '갈등관리 지수'는 27위로 최하위 레벨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 효율성, 규제의 질 등으로 평가하는데 그 수치와 순위가 낮을수록 갈등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적 재정적 인프라 수준이 미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의 정도와 양상은 심각하고 그만큼 사회적 통합력이 취약하다.

그간 사회적 통합, 대통합, 협치를 말하는 않는 정당이나 정치지도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회적 통합은 그럴싸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절실한 사회적 요구다. 소통의 진정성은 금방 드러난다. 아무리 소통하는 제스처를 하더라도 진심이 없다면 시민들은 곧바로 알아차린다. 소통과 통합은 시민들의 목소리와 사각지대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비명에 귀 기울일 때 시작된다.

◇ 직설화법 불편해하는 우리 사회

오랜 외국생활을 하고 고국을 방문 중인 교포를 만났는데 흥미로운 말을 했다.

"서구인들은 대화를 많이 해요. 무언가 하나를 결정하는 데 내 생각에는 한국인보다 10배는 많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 같아요. 시시콜콜한 것까지 대화하고, 뭐든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해요. 특히 '좋다' 혹은 '싫다'는 의견을 명료하게 드러내요. 그리고 일단 함께 결정을 하면 뒤집어지지 않고 잘 협력이 되는 편이죠."

10배는 아마 과장일 것이다. 대화의 양이나 물리적인 말의 분량이 2배냐, 5배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충분히 소통한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는 서구에 비해 간접적인 의사소통이 팽배하다. 자기 의견을 직선적으로 드러내면 무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를 우회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기성세대 입장에서 요즘 젊은 세대을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도 아마 직선적 의사표현 방식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 면에서 청년 세대는 중노년보다 더 진화돼 있다.

대화 부재와 일방적 의사소통은 사실 정치 영역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뼈속까지 배어있는 DNA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 위계질서 중심의 조직문화, 소통 부재의 관계, 폭력적인 의사표현으로 표출되고 있다. 거기에 물들어 우리 내면에도 오만하고 일방적인 독재자가 퍼렇게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 겉치레 벗고 대화해야 '진심 소통'

소통은 대화가 가능한 열린공간(Open Space)을 형성할 때 가능하다. 물리적 공간일 수도 있고, 마음의 공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사이비 소통에 지쳐있다. 불통에 식상한 것은 옛날이야기다. 소통을 앞세우면서도 소통하지 않는 위선에 대해 분노하고 냉소한다. 겉으로 소통하는 척하면서 소수가 밀실에서 다 결정해 버리는 것을 늘 목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통을 비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나 자신이 먼저 소통하는 주체, 소통할 수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의 생활 현장의 이야기, 삶의 이슈들, 온갖 고통과 감정들을 솔직히 말하고 그것이 모아지는 시민적 공론의 장이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하는 그 첫걸음이 있다면 나의 모든 관계를 수평적으로 배치하고 진심으로 대화하는 용기를 지니는 일일 것이다.

질 들뢰즈의 말이 생각이 난다. "존재론적 평면에서 만나라" 존재론적 평면이란 인간 본연의 자리를 말한다. 자연적인 존재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자는 것이다. 어떤 이해관계나 이념이나 위계질서 속에서 만나면 수평적 관계나 트인 대화가 어렵다. 나의 가면과 겉치레를 벗는데서 소통이 시작된다. 우리의 인간관계와 일상적 대화, 온갖 시민적 공론의 장에서 소통을 연습하는 것이 그래서 절실하다. 대화하는 용기를 지니자. 가까이에서부터 오픈 스페이스를 형성하자. 소통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반문화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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