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서사를 따라가다가 극적인 반전에 전율하게 되는 소설,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 Minor Detail>을 읽는 독자는 비극의 긴 여운에 젖게 된다. 아다니아 쉬블리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아랍계 작가이자 유럽에서 비판 이론, 철학과 문화 연구 등을 수행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사소한 일>은 간단하고 짧은 스토리지만 묵직하고 첨예한 이슈를 다루는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네게브 사막을 무대로 전개된다. 한 팔레스타인 소녀에게 가해지는 이스라엘 군인들의 사소하고도 잔혹한 범죄(1부), 이후 오랜시간이 지난 후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이 사건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긴장감 넘치는 여정(2부)으로 이뤄져 있다.
◇ 개 짖는 소리, 광야의 증언
1949년 8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고 건국한 직후이고, 무대는 이집트 접경지역 사막이다. 군인들은 샘물가에 있는 일단의 베두인 가족에게 총을 쏜다. 모두 학살되고 6마리 낙타도 죽임을 당한다. '딱정벌레처럼 웅크리고 있던 소녀' 하나가 체포된다. 군인들은 임시 막사 앞에서 냄새나는 그녀의 옷을 벗기고 머리에 휘발유를 붓고 고무호스로 물을 쏘아 그녀를 세척한다. 정찰 부대를 이끄는 젊은 장교는 한밤중에 그녀를 강간하고, 이후 소녀는 군인들에게도 집단 성폭행을 당한다. 3일째 아침, 장교는 그녀를 차량에 싣고 사막으로 가서 죽이고 암매장한다. 소녀의 고통과 죽음은 군인들에게 거의 '사소한 일'로 취급되어 묻혀버린다.
사막의 정적 속에서 개 짖는 소리와 총소리만 들린다. 며칠간의 사건 서사의 전개에 개 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소녀의 울부짖는 소리가 더 커졌고 개도 덩달아 짖기 시작했다. 34쪽
개가 앞발을 들고 뛰어올라 짖는다. 39쪽
(장교가 막사 안에서 성폭행하는 동안) 밖에서는 계속 개가 짖었다. 60쪽
진지로 돌아오자 정문에 있던 개가 사납게 짖으며 그를 맞이했다. 69쪽
마침내 차가 출발하고 개가 짖으며 차를 따라 달리면서 그들을 따라잡으려고 헛수고를 하고 있었다. 72쪽
무려 수 십 번이나 개 짖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그 개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인으로 그려진다. 개 짖는 소리는 일종의 증언이자 저항이기도 하다. 그 무력한 견공은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그러면 안 돼!', '너는 나쁜 놈이야!' '죽이면 안 돼, 정말 안 돼!'
개 짖는 소리와 몸부림은 유독 장교를 향한다. 부대를 이끄는 젊은 장교는 실로 성실하고 깔끔한 사람이다. 그는 무더위에도 순찰 활동을 쉬지 않고, 매일 샤워를 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씻는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이중적이다. 부대원들에게 소녀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고는 자신이 소녀를 덮친다. 그리고 부대원들의 성폭행을 방치한다. 소녀를 이송하는 척 하더니, 소녀를 사막 어딘가로 데려가 묻어버린다. 장교와 군인들의 행동은 지극히 냉담하고 담담하고 차분하기 그지없어서 보다 전율스럽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생각나게 한다. 나치의 홀로고스트가 잔혹한 거대 서사라면, 과연 유대 병정들의 행위는 그저 사소한 일에 불과한 것일까?
◇ 진실을 찾아나서는 위험한 여정
수십 년 후,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우연히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고 관심을 가진다. 아주 '사소한 점'이 매개가 됐다. "그 사건이 일어난 날 아침으로부터 정확히 사반세기 후 같은 날 아침에 내가 태어났던 것이다." 이것이 이 여성(소설 2부의 화자 '나')이 진실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 이유다. 소설 속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그렇지 아니한가? 사소한 일이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고 우리 삶을 어디론가 몰고 가기도 하고, 사소한 것이 진실을 열어젖히는 결정적 열쇠가 되기도 한다. 우연한 공통요소, 작은 단서, 미세한 파동, 실 한 올, 오브제 쁘띠아(대상 a)가 진실의 미학을 펼쳐내는 법이다.
"책상 위의 먼지나 명화 위의 파리똥 같이 사소한 것들에 집중하는 시각을 진실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진실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88쪽
이 여성은 그 사건의 현장을 찾아 떠난다. 문제는 곳곳에 검문소와 장벽이 설치되어 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그어놓은 경계선(boundary) 한 쪽에서 태어나 낙인찍히고, 언제나 경계선 안에 갇혀 살던 이 여성은 그 경계를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한다. 신분증을 빌리고, 통행증을 발급받고, 타인의 명의로 승용차를 렌트해 검문소들을 통과하고 군사 기록관을 방문하고 마침내 네게브 사막의 사건 현장 근처까지 찾아간다.
그녀는 억압이 내면화되어 있어 경계를 넘을 때마다 심각한 불안을 경험한다. 긴장감, 공포, 땀, 오한, 온갖 무서운 상상 등이 그녀를 덮친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집들과 건물들을 나누고 있는 벽들과 경계선들을 뛰어넘었다." 85쪽
하지만 그녀의 경계선 감각은 서투르다. 경계를 넘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온 그녀가 한번 경계선을 넘고서는 이제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모른다. 호기심이 지나쳤거나 위태롭게 경계선을 넘어가는 아슬아슬한 여정이 그녀의 경계선 감각을 붕괴시켰으리라. 그녀는 넘지 말아야할 선들을 지나 계속 나아가고 나아간다. 마침내 그녀는 사막 내 사격장 가까이까지 다가간다. "갑자기 타는 듯한 뭔가가 날카롭게 내 손을 꿰뚫고, 이어 가슴을 꿰뚫는다. 그리고 아득히 총성이 이어진다." 155쪽
◇ 미시적인데도 '큰 울림'
이 소설에는 '개 짖는 소리' 이외에도 암호처럼 고급스러운 은유와 문학적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 그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쉬블리 읽기의 묘미인 것같다.
냄새 모티브. 납치당한 소녀에게는 지독한 냄새가 난다. 물이 귀해 씻지 못했고 오물과 땀, 월경 냄새가 배여 있어서 군인들은 이를 견디지 못한다. 이 냄새는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선민 이스라엘의 혐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소녀를 발가벗겨 강제 세척을 한다. 흥미롭게도 장교는 어둠 속에서 거미에게 물려 허벅지에서 고름이 터져나온다. 고름이 썩어 자기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데도 장교는 그 소녀에게서 계속 냄새가 난다고 생각한다. 장교는 샤워를 하며 비누로 자기 몸을 씻는다. 마치 유태인의 청결규례를 행하는 듯하다. 혐오스런 냄새와 장교의 제 몸 씻기 행위는 역설적 이미지를 남긴다. 더러운 놈은 바로 당신이야.
껌팔이 소녀와 껌. 검문소에서 줄을 지어 기다릴 때 한 소녀가 다가와 껌을 사라고 조른다(100-101쪽). 여인이 거절해도 소녀는 계속 조른다. 계속 거절 의사를 밝혀도 소녀는 여섯 번이나 껌을 사달라고 조른다. 동전 몇 개를 주면서 껌은 필요없다고 말하자, 소녀를 껌 두 통을 운전석 옆자리에 던지고 달아난다. 검문소 앞에서 조여드는 불안감을 느끼며 '나'는 껌을 집어든다, 껌을 입 속에 넣고 씹기 시작한다. 그날 하루 그녀가 먹은 음식은 껌 외에는 없다. 소설 말미에서 병사들의 총구가 '나'를 향하자 '나'는 주머니를 뒤지며 내 껌을 찾는다. '껌팔이 소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역할만을 하지 않는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껌을 씹는 행위는 구강기적 본능, 생존 본능과 잠복된 공격성 등의 기호를 짙게 남긴다.
사라진 노파 에피파니(Epiphany). 여성은 사막의 교차로에서 한 노파를 발견하고 차에 실어준다. 노파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고, 둘은 침묵 속으로 피신한다. 노파는 아마 칠십 대쯤으로 보인다. 만일 그 소녀가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이 노파와 같은 나이일 것이다. 갑자기 노파가 여기서 내려달라고 한다. 차를 세우자 노파는 여성의 눈을 한 번 바라본 뒤 모랫길을 통해 사라진다. 뒤늦게 무언가를 감지하고 차를 되돌려 노파를 찾아보아도 마을이나 집들은 없고 텅 빈 사구들만 가득하다. 노파의 출현과 사라짐은 마치 유령의 출몰처럼 느껴진다. 이는 문학에서 흔히 구사되는 에피파니(epiphany) 기법이다. 에피파니는 보통 '깨달음'이나 '통찰의 순간'으로 해석되고 문학이나 종교에서는 '계시', '통찰' 혹은 '번뜩임'을 가리킨다. 어떤 진실 혹은 진리가 갑작스레 드러나는 순간을 말한다. 소설 속 화자는 노파에 대해서 무언가를 깨달았음에 틀림이 없다. 독자들도 무언가를 감지한다. 노파는 죽임 당한 소녀의 현현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간결하고도 정교한 아다니아 쉬블리의 문체는 단순성 속의 깊이를 느끼게 하고, 잔혹함과 서정성을 교묘히 결합하는 장면 묘사는 독자에게 기묘한 충격을 준다. 내내 사소한 일과 관련된 사소한 서사가 소소하게 전개될 뿐인데 거대한 여진이 남는다. 1부와 2부의 마지막 대목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울린다. 급작스런 반전을 일으키는 그 소리는 독자에게 메가톤급 폭발을 가한다.
<사소한 일>에는 작가의 미시적인 감각과 섬세한 감정이 잔잔하게 묻어 있다. 서사 역시 제목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을 포착하여 미시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20세기라면 근육질의 작가가 대하소설이나 폭로성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낼 이야기인데도 이 소설은 주요 인물의 내면과 심리만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이제 문학의 흐름이 바뀌어 문학적 키치가 먹혀들던 시대가 이미 저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서 저항소설의 냄새를 감지하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함성처럼 저항하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린다.
이 소설은 읽는 이에게 친숙한 불편함을 남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깊이 숙고하고 성찰하게 만들까? 그것은 이 사소한 이야기가 우리의 남근성을 마구 폭로하고, 우리를 들러 싼 온갖 경계선들과 배타적인 폐곡선들에 대한 무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자신의 못된 짓거리들을 태연히 사소한 일로 처리하는 우리의 무사유와 자기 합리화를 정면으로 건드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과거의 그 현실이 지금도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총은 여전히 장전되어 있고 총구는 누군가를 향하고 있다. 지금 팔레스타인에서는 격렬하게, 이 땅에서는 잠복된 채로. 이런 비극의 정점은 소설에서나 현실에서나 총알이 언제나 여성의 가슴을 관통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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