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단상] '단식 광대'는 광대인가, 수도자인가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4-09-02 08: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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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지리산 자락의 낡은 농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주인장 농부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가끔 방문하는 환자를 돌보기도 했다. 밭갈이도 하지 않고 일체의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다. 잡초조차 뽑지 않는 특이한 농사를 추구했다. 잡초가 무성한 풀밭에 벼를 심어 수확했다. 다른 작물들도 그런 식으로 재배했다. 수확이 많을 리 없다. 하지만 그분은 밝고 우아하고 건강해 보였다. 마치 도를 닦는 구도자나 수도자처럼 느껴졌다. 카프카가 남긴 단편 <단식 광대>에서 그려진 단식 수도자 이야기가 떠오른다.

◇단식 광대의 비애, 열광 이후 잊혀지는 운명

격자 창살로 만든 우리에서 단식하는 수도자가 있다. 그의 단식을 구경하기 위해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사람들은 앙상한 그의 몰골을 살펴보고 점점 길어지는 단식 기간을 셈하며 경탄을 금치 않는다. 감시인들도 배치됐다. 몰래 음식을 먹는 것을 막거나 아니면 그의 철저한 단식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리라. 도시 전체가 그의 단식에 관심을 가졌고, 매니저는 홍보를 점점 강화하고 도시 전체의 축제를 기획한다. 단식 기간은 40일로 정했다. 40이라는 숫자는 서구에서 묘한 상징성을 지닌다. 모세와 예수가 광야에서 단식한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식은 대중에게 전시됐고 광대역을 떠안게 됐다. 단식 광대의 고행은 쇼가 되어 그 도시 최대의 볼거리가 됐다.

그에게 단식은 고행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단식을 힘겹고 경이롭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에게 단식은 가장 쉬운 일이었다.

"단식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아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었고, 다른 알 만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식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40일째가 되는 날, 열광하는 관객들이 원형극장을 가득 매웠다. 꽃으로 장식된 우리의 문이 열리자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은 환호를 지른다. 젊은 여자 두명이 단식광대에 다가가 신중하게 조리된 환자용 식사를 전달한다. 하지만 단식광대는 음식을 받아 먹지 않는다. 그는 아직도 더 단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직 '최고의 단식'에 도달하지 못한 지금 중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케스트라가 팡파르를 울리고 사람들은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는 단식을 중단하지 않는다. 열기는 식고 그는 곧 잊혀진다. 대중에게서 버림을 받은 단식 광대는 자존심을 접고 대형 서커스단으로 자리를 옮겨 거기서 단식을 하기 시작한다. 관객들이 몰려들자 그는 그들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공연을 찾아 단식 광대를 지나쳐 가버린다. 인기가 시들해지자 단식 박스는 극장의 구석으로 치워진다. 하지만 그는 단식을 지속한다. 홀로 믿기 어려울 정도의 경지까지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서. 가끔 우리를 지나치는 관객들이 힐끗 쳐다보기도 하지만 이내 지나가버린다. 그의 우리는 썩은 짚이나 넣어둔 채 완전히 방치된다. 우연히 우리를 발견한 감독이 묻는다. '아직도 단식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언제 끝낼 건가?' 단식광대는 자신에게 '경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저는 제 입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그런 음식을 찾아냈다면 괜히 소동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당신이나 다른 모든 사람처럼 배불리 먹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단식 광대가 남긴 최후의 말이 됐다. 그는 우리 안에서 쓸쓸히 죽는다. 사람들은 단식 광대를 짚더미와 함께 땅 속에 묻어버린다. 그들은 그가 단식했던 우리에 젊은 표범 한 마리를 집어넣는다. 관객들은 표범 주위로 모여들고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

◇단식 행위, 그 불가항력적인 광기

단식 광대의 말 속에 소설을 해독하는 단서가 숨겨져 있는 것같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 어떤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먹을 수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아 단식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어떤 음식도 맛이 없고, 삶과 세상 속에 있는 그 무엇에서도 기쁨이나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는 취향 때문에 오록 단식을 지속하는 단식광대는 어쩌면 카프카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는 글을 쓰는 작업 행위 이외의 그 어떤 행위 속에서도 만족을 누리지 못했다. 그는 외로운 자였다.

폴리처(Heinz Politzer)가 말했듯이 카프카는 삼중의 게토 상황에 처해있는 소수자였다. 그는 체코의 작가이지만 다수의 체코의 문인들에게 속하지 못하고,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혈통적으로 유태인이어서 프라하의 상층부인 독일인의 그룹 바깥에 떠돌고, 유태인이면서도 유태인 공동체와 전통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의 개인적인 삶의 서사도 불행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독일어 사전에 'kafkaesk'라는 단어가 있다. '카프카적인'이란 말인데 그 뜻은 '섬뜩한'이다. 좌절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상황과 부조리의 만연함, 소외와 절망으로 내모는 힘들에 의한 질식감 등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가련한 카프카는 하프 타임으로 직장에서 일하고 밤새워 글을 쓰며 살았다. 이런 맥락에서 단식광대의 단식을 '작가의 작업 행위'로 해석하면 소설이 보다 잘 읽힌다.

블랑쇼는 <카프카에서 카프카로>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는 글 쓰는 이로부터 펜을 앗아 가는 절망 속에서만 그 근원을 갖는다."
"작가는 죽을 수 있기 위하여 글을 쓰는 자이고, 그리고 그는 죽음과의 예견된 관계에서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길어오는 자이다."

블랑쇼만큼 카프카를 깊이 읽고 제대로 이해한 이가 드물 것이다. 사실 카프카는 글을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기 때문에 쓴다고 친구에게 말한 바 있다. 단식 광대는 단식이라는 광기의 행위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광기에 대항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연을 강요하는 극장 안에서 살아내기

아울러 '입맛에 맞는 음식'은 우리 삶에 대한 심층적인 은유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이 있고, 잘 할 수 있는 재능과 영역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흥행과 돈벌이가 되거나, 안정적인 직장이나 고소득 비즈니스를 획득할 때만 인정받는다. 만일 그런 일들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주목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하고 루저로 취급당한다. 우리는 예외 없이 타자의 시선과 인정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고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며 행복을 경험한다. 하지만 대중의 눈길은 새로운 볼거리와 신선한 자극을 찾아 이동하고 내게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단식 수도자가 광대의 역할을 하게 된 근원적인 사회적 배치는 대중의 욕망이라는 흐름과 상품성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장의 구도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개인의 노동이나 작업만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 종교와 영성, 지식과 기술, 교육과 의료 등 모든 것이 시장의 법칙에 포획되어 상품성과 대중성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고 미래의 운명이 정해진다. ‘단식 광대’는 이런 가혹한 시장에 의한 희생자이기도 하고, 그 단식은 한편 그런 시장의 지배를 거부하는 저항이기도 한 셈이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지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삶 속에 내동댕이쳐 있다. 과연 카프카가 그려내는 운명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일까? 수도자의 길과 광대의 길, 둘 중 하나의 선택만이 가능하단 것인가? 굴욕적인 삶과 죽음 사이, 순수한 창작 작업과 공연 사이, 수행적 추구와 시장을 겨냥한 쇼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면 우리 삶은 비극적 운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기 삶을 펼치는 나의 무대를 차리는 일과 흥행하는 공연을 강요하는 극장의 힘 사이에서 우리는 갈등하거나 무력하게 순응하게 된다. 아, 안타깝게도 카프카를 둘러싼 힘은 강력했고 그는 지나치게 허약했다.

더 이상 단식을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게 만드는 어떤 음식을 발견할 수도 있다. 다른 취향, 다른 일거리나 삶의 스타일, 황홀한 기쁨과 소소한 삶의 기쁨들 말이다. 슬프게도 그런 먹거리를 발견하는 순간 예술과 창작의 열정은  급격히 소멸하기 시작한다.

다른 한편, 세상을 잘 파악하고 진정 바라는 삶을 열어젖힐 내공을 키우는 일도 중요해 보인다.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혜로운 전략과 남다른 기술도 구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 안타깝게도 그렇게 하면 광대 혹은 스타가 되어 마냥 쇼를 하는 삶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언젠가 잊혀지고 버림받게 된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예술/일/영성/스타일을 추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마치 외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와 같이. 그 위에서 춤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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