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은 악몽이 됐다.
지난 25일 성탄절 새벽.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23층 아파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모두가 잠든 휴일날 새벽 4시57분에 발생한 화재여서 희생자들이 더 많았다. 특히 30대 남성 2명이 가족을 지키려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3층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위쪽으로 번졌다. 화재가 발생한 3층 바로 위인 4층에는 박모(33)씨와 정모(34·여)씨 부부가 2살과 7개월 난 딸들이 잠들어 있었다.
매캐한 연기에 잠이 깬 박씨는 곧바로 아내와 2살배기 딸을 먼저 대피시켰다. 아내 정씨는 2살배기 딸을 아파트 1층 재활용 포대에 먼저 던지고 뒤따라 뛰어내렸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어깨 등을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박씨도 뒤따라 7개월된 딸을 감싸안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7개월된 딸은 무사했지만 아버지는 무사하지 못했다. 박씨는 떨어지면서 크게 다쳐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두 딸은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크리스마스 악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아파트 10층에 거주하던 임모(38)씨는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잠을 자다가 화재가 난 것을 알고 가족들을 깨웠다. 임씨는 119로 화재신고를 한 뒤 가족들을 먼저 대피시켰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집에서 나와 옥상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불길이 내뿜은 유독가스는 이미 비상계단을 모두 점령했고, 임씨는 1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연기에 질식해 숨을 거뒀다. 임씨의 부모님과 남동생은 연기를 흡입했지만 위중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화재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3층 거주자인 70대 남녀 2명은 밖으로 뛰어내려 생명을 건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30대 남성 2명을 희생시키고 29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게 만들었다.
소방당국은 새벽 5시 2분께 현장에 도착한 이후 차량 57대와 인력 222명을 동원해 화재를 4시간여만에 진화했다. 자다가 깬 주민 200여명은 새벽에 황급히 대피했다. 불길이 위로 치솟으며 아파트 2·3·4층 유리창은 모조리 깨졌다. 아파트 내부계단 통로가 굴뚝 역할을 하면서 내부 그을음은 15층, 외벽 그을음은 17층까지 이어졌다.
주민들은 한겨울에 이재민 신세가 됐다. 아파트 측은 경로당에 임시 대피소를 마련했으며 도봉구청은 현장에 통합지원본부를 꾸리고 주변 숙소에 임시거주시설을 마련했다. 3개 모텔의 9개 객실, 18명이 머물 수 있는 규모다. 현재 피해 접수규모는 17가구다.
소방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에 스프링클러와 방화문이 없던 것도 화재를 악화시킨 것으로 지적됐다. 건물 내 소방시설 설치가 의무화되기 전인 2001년 완공된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저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무조건 뛰어내리기보다는, 물을 묻힌 옷 등으로 문틈 및 창문 등을 막아 연기를 막고 화장실 욕조 등으로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휴대용 방독면을 비치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소방 관계자도 화재가 발생하면 화장실에 물을 틀어놓은 뒤 그쪽으로 대피하고, 소방과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방화 등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26일 합동 현장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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