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정신건강 위기 '공중보건 차원 대처"
아시아와 유럽, 북미 등 세계 곳곳에서 때이른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기온이 오르거나 기온변화가 심하면 자살률과 범죄, 폭력이 증가하므로 공중보건 차원에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조지타운 대학교(Georgetown University) 글로벌 보건학과에서 정신 건강을 가르치는 샤밥 와히드(Shabab Wahid) 교수는 "주변 온도가 정상보다 1°C만 높아져도 우울증과 불안을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면서 "기후변화가 계속 악화될수록 건강에 악영향을 더 미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기후 관련 요인과 정신건강의 악영향 사이의 연관성을 밝히는 연구결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기후와 정신건강의 연관성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와히드 교수의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란셋 플래니터리 헬스(The Lancet Planetary Health)에 발표된 바 있다.
스탠퍼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 마샬 버크(Marshall Burke) 경제학 교수가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의 평균 기온이 1°C 상승하면 자살률이 1% 증가한다. 버크 교수는 "이는 매년 수 천명이 추가로 사망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며 "기온이 계속 상승하면 미국의 자살예방 프로그램과 총기규제 정책의 노력은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온의 급격한 변화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원인으로 '수면부족'을 꼽았다. 브라운대학교(Brown University)에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연구하는 조쉬 워첼(Josh Wortzel) 박사는 "자살과 자살 시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날은 1년 중 기온변화가 가장 심한 날"이라며 "갑작스런 온도변화로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정신건강 환자들은 더욱 불안감을 느끼고 자살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워첼 박사는 "수면은 매우 복잡한 기능이고, 신체 회복을 위한 수면이 부족하면 정신건강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며 "수면 장애가 양극성 장애 환자의 조증 에피소드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수면이 기분 조절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고온은 세로토닌 분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세로토닌은 기분 조절 호르몬 중 하나인 신경전달물질로 공격성 억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산불과 홍수 등 기후재난으로 인한 트라우마도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탠포드 의과대학(Stanford medical school)의 브릿 레이 (Brit Wray) 박사는 "모두가 PTSD를 겪는 것은 아니지만 홍수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훨씬 더 힘들어진다"며 "기후 트라우마 당사자는 경제적 위기같은 다른 사회적 스트레스도 함께 겪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복합 스트레스는 회복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약물남용, 가정폭력, 자살충동 등 부정적인 대처를 하게 만든다"며 "폭염이 뇌에 미치는 신경물리학적 영향과 이미 정신건강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에게 폭염이 미치는 실제적인 위협까지 더해지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진다"고 강조했다.
레이 박사는 '2023 프론티어스 포럼'(2023 Frontiers Forum)에서 "기후위기 속에 정신건강 위기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러한 사건이 너무 많이 겹치기 전에 미리 대처해야 한다"며 "이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지역사회에 대한 더 나은 지원과 기후변화, 트라우마, 정신건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더 심도있는 이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온과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예산 등의 지원은 미미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이는 공공보건의 영역이며 따라서 공적자금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워첼 박사는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것은 학계뿐만 아니라 폭염으로 인해 위험에 처할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라며 "폭염과 정신건강은 온난화로 인한 삶의 현실이며,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의 임상심리학 교수이자 기후정신의학연합(Climate Psychiatry Alliance) 회장인 로핀 쿠퍼 박사는 "우리는 기후변화를 정신건강 위기로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며 "기후변화를 공중보건 위협에서 제외한다면 우리는 의료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의 증가는 정신건강과 공중보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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