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평화' 만들긴 어려워도 파괴하긴 쉽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10-17 11: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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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긴장고조는 평화 붕괴의 위기 징조
군사력 시위보다 '평화세우기' 전략 필요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거칠게 요동치고 있다. 핵전력을 동원한 한미일 군사훈련과 북한의 연속적인 미사일 발사와 포 사격으로 남북 사이, 북미 사이의 전선이 팽팽해지고 있다.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이 불안의 기저 감정은 공포감이다. 예상할 수 없는 전쟁 발발의 암시를 받으며 다들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첨단 무기들과 살상기계들이 연이어 화염을 내뿜으며 한반도 영내의 모든 사람들을 숨죽이게 하고 있다. 세계 시민들과 국민들의 압도적 다수는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항대립적 대결을 마다않는 양 세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세 다툼을 하고 있다.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어렵다. 오랜기간 인내심을 지닌 정교한 노력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신뢰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아주 쉽다. 말 한 마디 혹은 거친 행동 한 번으로 단박에 그간의 평화 기조가 분쇄되어 버린다. 폭력적 방식으로 갈등이 표출되면 서로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아울러  되돌릴 수 없는 피의 보복과 압도적 무력 사용을 공공연하게 경고한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 평화적 공존·갈등 지닌 채로 살아가기

더불어 산다는 것은 갈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갈등을 지닌 채로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경쟁국 혹은 적대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평화적 공존을 위해 국경선을 만들었고 서로의 영토와 주권을 인정하며 공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땅이 지구 최후의 분단 민족이 되고 이미 소멸해 버린 냉전체제가 존속하는 것도 슬픈 일인데 지구촌에서 가장 살벌한 화약고가 되어 전운이 조성되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함께 살아야 한다. 다른 해법은 없다.

고대의 전쟁은 진멸전쟁이었다. 적국을 초토화시키고 전투가능한 모든 인명을 살상하고, 그 땅의 모든 재화를 약탈하고 여성과 쓸모있는 노동력은 노예로 끌고 갔다. 이제는 진멸전쟁은 불가능하다. 역사 속 제국들은 진멸보다 대리통치자나 식민지 총독부를 세워 장기적으로 갈취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역사 속 대국들과 식민지 개척을 한 유럽의 제국들은 적국이나 식민지를 속국으로 만들어 자기 이익을 채취했다. 현대에는 더더욱 진멸정책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공존해야 한다.

경험적으로 알다시피, 장기적 불화와 유혈충돌은 서로를 한없이 소진시키고 때로는 파멸시키기도 한다. 1997년 남미 온두라스의 깊은 산골에 있는 에스테반 마을에서 두 집안 사이의 평화협약이 이뤄졌다. 1976년까지 한 마을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두 집안이 갑자기 갈등관계가 됐다. 닭싸움을 하고 난 이후 서로 감정이 상했는데 그것이 심각한 대립으로 비화됐다. 아이들끼리 싸우다가 이어서 어른들끼리 싸웠다. 그러다가 살인이 일어났다. 피해자 집안은 보복을 하기 시작했고, 이후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이 이어졌다. 20년간 두 집안의 분쟁으로 죽은 사람의 숫자는 80명이나 됐다. 1997년 양가는 성인들과 아이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무기를 중재자에게 넘겨주고 평화협약을 맺었다. 유혈 분쟁만큼 어리석고 소모적인 일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 평화 조성하려면 '평화세우기' 전략 필요

평화의 씨를 심으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갈등을 진정시키거나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섬세한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의 한반도 군사 대결의 기조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전략의 프로그램에 따라 한미일 군사훈련을 전개하고 있고, 북한 역시 전략적 핵개발 프로그램에 따라 군사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로의 태도는 그 누가봐도 위험하다. 

평화의 전략을 세우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정부, 정치인들, 군대와 군사전략가, 시민사회, 국제사회 안에서 평화를 생각하고 평화적 방법을 모색하고 평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씨알들이 필요하다. 평화에의 노력과 평화 전략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필요한 법이다. 

특히 무력이나 폭력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힘을 시위하는 때일수록 직접적인 폭력을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사 전달하기, 군사대화, 정전 혹은 종전 선언, 평화구축(peace-building)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중재자 나서기, 평화구역 설정 및 확장, 조기 경보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 등이 직접적 폭력을 줄이는 방안들이다.

따라서 9·19군사합의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냉정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이미 휴지조각처럼 서로 내동댕이친 군사합의문이지만 이 마지막 장치마저 없애버리면 갈등 및 우발적 전투 발발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다시는 그런 합의를 이끌 가능성이 사라진다. 공공연하게 군사합의를 파기를 선언하는 일은 보복성 공격을 감수하겠다는 제스처로 해석될 정도로 위험한 일이 된다.

현재로서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유지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갈등과 적대성을 없앨 수 없다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위협과 맞장 뜨기식 대결, 정복과 항복 받아내기는 결코 평화의 길이 아니다. 승리한다고 항구적 평화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국지적 전투나 도발과 같은 군사적 충돌로 상징적으로나마 승리하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전쟁 트라우마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간 이어진다. 적의는 깊어지고 온갖 보복 행위를 초래하게 된다. 현대전의 경우, 전쟁은 쌍방이 모두 망하거나 치명적으로 망가지는 지름길이 된다.  

◇ 시민들이 평화의 목소리 내줘야

평화가 저절로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평화는 결코 우연히 이뤄지지 않는다. 평화는 줄기찬 여정이다.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걸음들이 모여 평화의 대열이 형성된다. 평화의 띠 외에는 전쟁이라는 거친 파열선을 덮을 수 있는 것이 어디에도 없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의 국제정세나 남북 내부의 정치구도로 보아 군사적 폭력적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살인적 물가인상과 인플레이션, 미국과 중국의 맞대결 분위기, 남북 정권의 고전적 안보 이념과 호전성, 정치적 지지기반 약화를 열전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유혹 등 악재들이 너무나 많다. 이럴 때일수록 평화노선을 보다 선명하게 천명할 필요가 있다.

모든 정부는 시민들에게 안전과 안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정부들에게만 내맡길 수 없다. 다른 트랙의 힘이 강해져야 한다. 비정부적 노력, 평화를 열망하고 평화를 세우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서구 냉전체제의 종식의 이면에는 서유럽 및 동유럽, 미국과 소련 안에서 평화를 세우고자 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평화여론이 거세게 작용하였다. 대결 국면에서는 자칫 '평화의 목소리'가 오해받기도 하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시민 주체의 평화운동이 없이 평화는 더더욱 요원해진다.

평화는 평화를 세우고자 하는 평화건설자(peace builder)들의 노력들이 모여 진척된다. 정부, 시민사회, 언론, 노동자와 농민, 기업들과 단체들, 지역과 마을, 학교와 학생들, 노인과 젊은이, 여성과 아동 등 모두가 평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다방면 노력들이 응집해 평화 파괴의 충동이 제어되고 최소한의 평화의 전략이 만들어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땅에서 이념 대결이 평화를 잡아먹고, 적대성이 공존의 가치를 밟아 누르는 대결 논리가 거침 없다. 이럴 때일수록 시민들이 평화의 염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지난 14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 '군사적 해결'보다 '평화·외교적 노력'을 원하는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외교적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67%로 다수를 차지했고 '평화·외교적 해결책은 효과 없으므로 군사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25%에 그쳤다. 보수정치의 텃밭인 대구경북 시민들 역시 63%가 '평화·외교적 노력'을 원했다. 갤럽의 여론조사의 질문 방식이나 어조를 떠나서 그래도 평화 여론이 크게 우세한 것은 다행으로 보인다.

평화적 대응과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시민들이 평화의 사람이 되고 평화의 건설자가 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에서 타자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비폭력적 관계와 대화를 실천하는 일도 소중하다. 평화 행진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해야 한다. 평화를 깨뜨리는 군사전략이나 무기의 힘보다 강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속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평화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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