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혐오와 갈등 부추기는 표심몰이 '이제 그만'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3-08 09:18:25
  • -
  • +
  • 인쇄
선거 악용되는 지역주의와 색깔론 종식돼야
거대 양대체제 극복하는 정치대안 마련해야
▲20대 대통령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좌)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사진=연합뉴스)


대선 바람이 모든 국민들의 정신과 감정을 집어삼키고 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도, 우크라이나의 전쟁의 참화도, 바람을 타고 번지는 산불의 여세도 선거 열풍에 비할 바 아니다. 오히려 선거가 치명적인 감염병이자 증오에 찬 전쟁이며 검은 재를 만드는 산불처럼 보인다. 대결 양상이 더없이 첨예할 뿐 아니라 전례없는 증오와 혐오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열을 녹여 통합을, 슬픔을 지우고 기쁨을 안겨다주는 정치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선거가 민주주의의 약속이 되고 피아가 함께 웃는 축제가 될 수는 없을까?

◇ 혐오와 적의를 키우는 정치구조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선거를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고 말한다. 불쾌한 정보들을 쏟아내는 네거티브(negative)가 난무하는 데다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도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반문해 보자. 언제 비호감이 아니었던 선거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우리 역사에서 세련된 선거문화를 이뤄내 정치적 미학을 실현한 선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유권자들은 언제나 최악의 비호감 선거들만 경험했다. 그저 그것이 반복되고 누적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비호감'이란 워딩은 마치 특정 대통령 후보들이 하자가 많은 비호감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우리를 속이기 쉽다. 그런 이미지들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구도'가 만들어낸 파생물이자 다른 후보를 공격하는 선거전에 의해 조작된 차원이 다분하다. 약간만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보면 현재의 양당 정치체제와 적대적 정치문화가 괴물들을 만들어내어 모든 국민을 가상의 괴물들과 싸우게 만드는 형국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내면에 숨어있는 공격성을 자극하고 편 가르기를 일삼은 집단심리를 이용하는 정치, 그것이 더 큰 괴물이다.

정치는 언제나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르네 지라르(Rene Girard)가 지적했듯이 문화의 기원은 '속죄양'을 만드는 제의에 있는지도 모른다.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빌며 모든 죄를 전가하는 희생양을 만들어 집단적으로 희생시키는 행위가 그것이다. 희생양을 만들고 제거하는 일은 성스러운 집단 제의가 된다. 폭력이 가장 거룩한 의례로 치러지는 것이다. 종교적 제의로 치러진 희생양은 한 마리의 염소이지만, 사람이나 특정 집단을 그 대상으로 할 경우 이는 가공할 집단 광기가 된다. 그래서 폭력이 보복 폭력을 부르며 폭력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혐오와 적의를 키우는 정치는 국민들을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조종 대상으로 삼는다. 유권자를 주권자나 성숙한 시민이 존중하기보다 광기의 군중으로 내몰아 가려 든다. 분노를 점화하는 정치가 겨냥하는 바는 매우 단순하다.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는 폭력의 악순환을 낳는다. 물리적 폭력을 낳는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폭력, 언어의 폭력을 난무하게 하고 사회 공동체를 그 기저에서부터 균열시킨다.

◇ 지역주의와 색깔론 종식시켜야

혐오와 차별은 정치적 사회적 희생양을 만드는 고대의 제의와 매우 유사하다. 제거해야할 사람들, 지역 혹은 세력, 공존할 수 없는 내부의 적들을 만들어내어 '죽여도 되는' 희생양들로 삼는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먹혀들고 있는 색깔론이 대표적이다. 빨갱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죽여도 되는, 아니 죽여야 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로부터 노인들까지 레드 콤플렉스에 붙잡혀 살아간다. 이념적 지향을 객관적으로 사유하고 평가하기보다 색깔 이미지에 사로잡혀 증오 혹은 공포로 감정이 치닫는 것이다. 전근대적 희생양의 주술이다.

지역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호남지역 대 경상도지역을 편갈라 전선을 형성하고 서로 편견을 갖게 하고 적대하게 하는 정치적 구호들이나 캠페인도 이를 겨냥한다. 이 외에도 특정 집단이나 성별, 계층이나 취향의 사람들을 적대하고 혐오하는 논리가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히 자행된다. 특히 자신 혹은 특정 집단의 정체성에 기반해 다른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공격하는 '정체성' 정치는 악의적이고도 분열적인 정치 술수이다. 이십대 남성들을 포획하기 위해 여혐 커뮤니티들을 동원해 페미니즘과 여성을 공격하는 선거 전술은 혐오와 차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퇴행성과 비윤리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가 과열되면 이런 요소는 더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이용된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평소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극단적으로 변해 버린다. 자신도 모르게 희생양을 죽이는 성스러운 의식에 참여하는 신도가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그 제의의 대제사장으로 추앙하고 왕으로 삼으려 한다.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점은 지역주의와 색깔론을 부추기는 전략이 왕왕 시도됐지만 그리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나라 선거에서 '지역' 요소는 절대적 요소였다. 북풍이나 색깔론 공세로 선거판 자체를 뒤집는 일들도 왕왕 발생했다. 이번 선거는 그간 만연했던 지역주의와 색깔론 선거의 종언을 고하는 선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 다양한 의견 담아내는 정치제도 실현돼야

정치란 적대성과 증오를 제거·완화하고 통합과 상생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사회적 장치다. 그런데 아직도 양대 정당에 의해 국민들이 양분되어 대결과 적대성이 고조되는 일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우리 정치를 움직여온 주류 정당들의 책임이 결코 적잖다.

주목할만한 일은 여권 후보인 이재명 후보가 양당 체제를 다당제로 전환하고 여러 정당들과 공동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정치교체를 공언했다. 선거의 주요한 변곡점을 앞두고 내던진 공약이지만 그 의의는 적지 않다. 다당제 정치체제를 주장해온 안철수 후보가 돌연 사퇴해 그 실현 가능성이 모호해졌다. 하지만 유력 대선후보자가 다당제 정치를 공언하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를 당론으로 정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선거용 허언인지 아니면 진정성을 가지고 추진할지는 이후 정치 흐름과 시민들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 특히 비례대표제의 대폭 강화가 절실하다. 사실 비례대표제는 정당 비례대표만이 아니라 사회 내 주요 계층과 집단을 대표하는 대표자들을 직접 선출하는 것이 가능해야 이상적이다. 아직은 정당 비례대표제가 대폭 강화되어도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다양한 노선과 정책의 편차를 지닌 견실한 정당들이 생겨날 것이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는 갈등을 이견으로 처리하는 정치를 제안하였다. 그 핵심은 다음의 말로 축약된다.

"적나라한 갈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이것을 넘어서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이견'으로 다루어질 때 … 사회와 공동체가 성숙된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아직도 적나라한 갈등을 드러내는 일에만 몰두한다.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에 기반해 주장하는 바들을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공론의 장에서 타협해 나가는 성숙함과 지혜가 절실한 이유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나라 정당들이 두 패로만 나눠져 대결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정치적 이익에만 몰두한다.

정당은 사회 내의 다양한 '이견'들을 모아내고 타협하게 만들어 사회적인 통합을 이뤄야 하는데, 자기 편 만들기와 다른 정치세력을 섬멸하는 데만 주력했다. 더구나 정당들이 게으르다.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이 언제나 보장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보아도 주류 정당들이 진정한 '정체성'과 정치적 노선을 발견하기 어렵다. 잡탕 정책과 비빔밥 공약들이 대부분이다. 선거를 위한 것인지, 다른 정당들이 설 자리를 빼앗기 위해 제시하는 것인지 조차 모호하다.

이번 선거의 양상은 어느 후보든 압승하기 힘든 결과가 예측된다. 이는 좋은 징조다. 더구나 네거티브와 극단적 대결의 선거로 국민들이 양당 체제에 대한 피로감과 비판의식이 크게 높아졌다. 이는 그간 기득권 엘리트 정치인들이 전유해온 적대적 공생 체제를 지속하기 힘든 구도로 나아갈 배경이 된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느냐도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당선되더라도 더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통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을 찾으려면 정당 체제 즉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노출된 민심과 시민의 뜻이 바로 그것이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KT 판교·방배 사옥 경찰 압수수색…서버폐기로 증거은닉 의혹

해킹사고 처리과정에서 서버를 의도적으로 폐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KT가 압수수색을 당했다.1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

셀트리온, 美에 1.4조 韓에 4조원 투자..."4Q 실적 턴어라운드"

일라이 릴리로부터 미국 공장을 인수해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 생산기지를 확보한 셀트리온은 의약품에 대한 미국 관세리스크를 털어내고

한국ESG기준원, ESG평가 'A+등급' 20곳...올해도 S등급 'O'

하나금융지주와 KB금융, 신한지주와 현대백화점, 현대로템 등 20개 기업이 한국ESG기준원에서 주관하는 '2025 ESG 평가'에서 통합등급 'A+'를 획득했다. 이

CJ제일제당 '빨대없는 스토어' 캠페인...대체소재로 PHA 제안

CJ제일제당이 자원순환사회연대(NGO), CJ푸드빌과 함께 일회용 석유계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줄이기 위한 '빨대없는 스토어 만들기(Be Straw Free)' 캠페인을

호텔신라, 친환경 운영체계 구축 나선다

호텔신라의 모든 호텔 브랜드가 친환경 호텔로 도약한다.호텔신라는 글로벌 친환경 인증기관인 '환경교육재단(FEE; Foundation for Environmental Education)'과 업

KT 새 대표이사 후보군 33명...본격 심사 착수

KT의 대표이사 후보 공개모집이 마감되면서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이 33명으로 확정됐다.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4∼16일 진행한 대표이사 후보

기후/환경

+

[COP30]"BTS에 영감받아"...K팝 팬들도 '탈탄소화' 촉구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열리고 있는 브라질 벨렝에서 케이팝(K-팝) 팬들이 '문화 분야의 탈탄소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냈다.K-팝

내년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1700톤 쓰레기 어디로?

내년부터 수도권 지역에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가 시행됨에 따라, 소각장 설비를 아직 마련하지 못한 경기도와 서울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예기치 못

[COP30] 산림지키는 기후총회에...농업 로비스트 300명 활동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300명이 넘는 농업 로비스트가 몰리자, 원주민과 환경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COP30] AI는 기후위기 해결사? 새로운 위협?

인공지능(AI) 기술이 기후대응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동시에 막대한 전기수요를 발생시켜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18일(현

섬에서 새로 발견된 미기록 곤충 55.5% '열대·아열대성'

국내 섬 지역에서 발견된 미기록종 곤충 가운데 약 절반이 열대·아열대성 곤충인 것으로 나타났다.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농촌 기후대응 직불금' 도입되나...기후보험 대상 확대

기후변화로 인해 농작물을 재배하기 적합한 지역이 바뀌는 경우나 기후변화 대응 품종을 도입할 때 직불금을 주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한다.정부는 19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