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6월 재발의된 '기업인권환경실사법'에 기후대응 관련조항이 빠져있어, 이를 추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인권환경실사법'은 기업의 인권과 환경실사를 의무화한 법안으로 당초 2023년 9월 발의됐다가 국회 회기종료로 폐기된 이후 올 6월 13일 재발의됐다.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녹색전환연구소와 박지혜 의원실 주최로 28일 국회에서 열린 '공급망실사법과 기후전환계획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기업인권환경실사 법제화의 의의와 활용'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재발의한 '기업인권환경실사법'에 기후전환계획을 포함하거나 기후실사를 함께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인권환경실사법은 기업이 공급망 라인에 있는 협력사의 인권·환경 침해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도록 실사를 의무화한 법안이다. 오는 2028년 시행 예정인 유럽연합(EU)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발의됐다. 국내에서 '공급망실사법'으로 불리는 이 법의 적용대상은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 또는 매출 2000억원 이상 기업들이다.
박영아 변호사는 "국내에서 기업인권환경실사법이 발의됐다는 것은 해외 ESG 경영흐름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진전"이라며 "그러나 기후대응 관련 조항이 빠져있는 부분은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후위기가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고, 기후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조치도 인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안에 기후대응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인 지현영 변호사는 '공급망실사법 기후 접목 방안: 기후전환계획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기업인권환경실사법이 대응하고자 하는 EU의 CSDDD에는 '기후전환계획'이 포함돼 있다"며 "EU의 ESG공시에 해당하는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에도 기후전환 관련 내용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023년 개정한 '책임있는 경영을 위한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에도 실사를 통해 다뤄야 하는 주요 환경요인으로 '기후변화'가 명시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현영 변호사는 "실사 대상에 기후대응이 빠진다면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기업이 소송이나 투자 철회, 평판 추락 등 다양한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며 "법안에 기후실사 관련 조항을 명시적으로 반영해야 선제적 대응에 나선 국제기준에 부합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해당 법안에 기후대응에 대한 내용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최정윤 한국법제연구원 법학기초교육연구센터장은 "국제사회는 기후변화가 불평등하게 작용하는 글로벌 인권 리스크임을 인식하고, 공급망 실사 지침에 기후관련 요소를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며 "기후위기의 긴박성, 국제 ESG 규범 동향, 공시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실사체계와 기후전환계획의 연결구조를 통합하는 방향성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EU에서는 전반적인 규제를 완화하는 '옴니버스 패키지'가 발표되면서 규제 피로도를 이유로 실사와 기후전환을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가 규범 수용자가 아닌 규범 제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했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장은 "EU에서도 아직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 실사 의무화를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기업들이 부담감을 느낄 게 분명하다"며 "여기에 기후전환계획, 기후실사까지 포함되면 그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기후위기적 측면에서 보면 이같은 기후대응은 우리 사회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를 위해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라며 "기후위기 시계의 모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만큼 한시라도 빨리 명확하고 효과적인 대응을 유도하기 위해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안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국내 산업 현실에 맞춰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선미 유엔글로벌콤팩트한국협회 팀장은 "기업인권환경실사법이 국제기준, 특히 EU CSDDD 내 기후전환계획과 정합성을 갖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안에 정부와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지원하는 '동반 지원체계'와 전환금융의 연계, 파트너십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팀장은 "기업인권환경실사법은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영을 지원하고 글로벌 신뢰를 높이는 제도적 기반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희섭 현대자동차 상생협력실장은 "공급망 실사가 비용과 인력 배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만큼, EU 등의 사례를 참고해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현대자동차는 이미 2045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으며 기후실사를 포함한 ESG 경쟁력 확보를 위한 움직임에 들어섰지만, 이를 다른 협력업체에게 강요하긴 어렵다"고 기업 차원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어 "CSDDD 등 공급망 지속가능성 관련 법규들이 EU 내에서도 완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와 정반대로 향하는 국내법 도입은 국내 기업들에게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며 전반적인 규제 완화와 적용 시점 연기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광희 풍강 전무는 중소기업 입장에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풍강은 자동차용 체결 부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기업으로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사다. 이 전무는 "CSDDD 대응이나 기후전환계획의 실질적 이행에는 상당한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를 뒷받침할 지원사업이 지속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한시적이라도 중소기업이 관련 인력을 배치하고 육성할 수 있도록 비용 지원 제도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종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환경화 행정사무관은 기후실사 필요성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기업 경쟁력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잡힌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짚었다.
박 사무관은 "최근 CSDDD 개정안은 기후전환계획 관련 규정을 원안보다 완화했다"며 "법안에 동일 규정을 추가한다면 EU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법안이 국내 다른 ESG 제도와 정합성이 맞아야 한다"며 "EU가 제도 간 시너지 확보와 기업의 혼란 최소화를 위해 CSDDD와 CSRD를 긴밀히 연결 중인데, 우리나라 역시 ESG공시나 ESG지원법과 기업인권환경실사 간에 유사한 부분을 연계하거나, 일치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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