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자연복원법'이 각국을 휩쓸고 있는 농민시위에 떠밀려 25일(현지시간) 승인 표결이 무기한 연기됐다.
2년에 걸쳐 제정된 자연복원법은 EU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법안으로, 각 회원국들이 2030년까지 육지·바다의 20%를 복원하도록 자연복원 목표치를 지정한 최초의 법이다. 자연복원법은 유럽의회 내 우파 정당들의 반대로 폐기될 뻔했다가 지난달 가까스로 유럽의회를 통과해 이날 27개 EU 회원국으로 구성된 이사회 승인만 받으면 발효될 예정이었다.
당초 이사회 최종 승인 표결은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졌다. 그러나 막판에 헝가리가 법안을 반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게 되면서 표결 일정이 취소됐다.
영국 가디언은 이미 헝가리를 포함한 8개 회원국이 법안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웨덴은 반대로 돌아섰으며 오스트리아, 벨기에, 핀란드, 폴란드는 표결에서 기권할 예정이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19개국은 해당 법안에 찬성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은 6월 선거를 앞두고 헝가리를 비롯한 EU 회원국 곳곳에서 농민들이 시위가 계속되면서 변화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작비 급상승에 신음해온 유럽 농민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까지 시장에 유입되면서 생존 한계에 직면했다고 호소해 왔다.
여기에 EU의 각종 환경규제와 관료주의가 성난 농심에 기름을 부으면서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이같은 시위는 EU 시민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쳤고 운송 지연으로 기업들은 수천만달러의 비용을 추가로 떠안아야 했다.
최근 EU는 살충제 규정 강화 법안을 보류하고 농가에 대한 점검과 통제, 휴경 요건을 완화하는 등 농민 시위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 과정에서 친환경 규정이 퇴보했다.
어니코 러이스 헝가리 환경장관은 이번 법안에 대한 입장을 다시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면서 유럽 농업 부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럽환경위원회는 법안을 무기한 보류하는 것은 2022년 COP15 생물다양성 정상회담에서 앞장섰던 EU의 명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테레사 리베라 스페인 환경장관은 "유럽의 녹색의제 전체를 포기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며 법안 지지를 촉구했다.
EU 순회 의장국을 맡은 벨기에의 알랭 마론 기후장관은 "언제든 마음을 바꾸고 투표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해 법안을 다시 채택 안건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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