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이 화석연료 산업에 보조금을 쏟아부은 사실이 들통났다. 매년 기후 회의가 열릴 때마다 자금 지원을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전혀 지키지 않은 것이다.
국제지속가능발전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ustainable Development, IISD)가 23일(현지시간)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G20국가들이 지난해 석탄, 석유, 가스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사상 최대규모인 1조4000억달러(약 1870조원)에 달했다. 2년 전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세계 정상들은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합의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 보고서는 오는 9월 인도 델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수치가 올해 11월 개최될 예정인 COP28회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IISD 선임연구원 타라 란(Tara Laan)은 "이 수치는 기후변화가 점점 더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G20 정부가 화석연료에 계속해서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화석연료의 해악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특히 기후위기 가속뿐만 아니라 공기를 오염시켜 건강에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화석연료로 인한 대기오염으로 매년 100만에서 1000만명의 사람들이 사망한다. IISD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는 화석연료 생산업체와 그 고객들에게 공적 자금을 지원했다"고 비판했다.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G20국가들은 1조달러의 보조금, 3220억달러의 국영기업 투자, 500억달러의 공공금융기관 대출을 제공했다. IISD는 "이는 2019년 수치보다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고 말했다.
G20 정상들이 화석연료 보조금을 줄이도록 합의한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중단은 매년 국제정상회의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의제로 나왔다. 2009년 제3차 G20 정상회담에서 전세계 정상들이 중장기적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약속했다. 10년 후 열린 2019년 COP26 정상회의에서도 정상들은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보조금을 감축하기로 재차 확인했다.
그런데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상황을 바꿨다. 팬데믹과 전쟁으로 인한 여파가 애너지 부분까지 미친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가격안정화를 위해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 정부가 화석연료 시장에 개입해 보조금과 세제 해택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러나 기후 전문가들은 이를 '언발에 오줌 누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당장의 소매가 안정에만 급급해 미래를 보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특히 과학자들과 에너지 전문가들은 "화석 연료 보조금은 사람들을 죽이고 경제 구조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가 발표한 보고서는 "최근의 막대한 화석연료 보조금은 에너지 전환에 대한 우려스러운 신호"라며 "화석연료 보조금은 아직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취약계층을 위해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6월에 나온 세계은행(World Bank) 보고서는 "정부가 화석연료의 가격을 낮게 책정함으로써 과다 사용을 장려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고착화한다"고 밝혔다.
세계은행 지속가능성그룹의 수석경제 분석가 리처드 다마니아(Richard Damania)씨는 "보조금 개혁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며 "낭비성 보조금의 용도를 변경함으로써 지구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상당한 금액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며, 사람들의 삶을 의미있게 개선하는 데 보조금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IISD는 보고서를 통해 탄소세와 보조금 개혁을 주문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온실가스 1톤당 25~50달러의 탄소세를 책정하면 G20 정부들은 연간 1조달러의 추가 세수를 얻을 수 있다. IISD는 "이렇게 확보한 세금을 지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맞춤형 복지를 지급하는데 써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IISD는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공약할 경우 비효율적이라는 애매한 단어가 아니라 명시적인 사례를 넣는 것이 좋다"며 "부유한 국가는 2025년까지, 나머지 국가에서는 2030년까지 화석연료 보조금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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