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서방국가들의 기후전략이 원주민들의 영토와 자원 그리고 사람들을 착취하는 '녹색 식민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7일~28일(현지시간) 펜데믹 이후 처음으로 미국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제22차 유엔 원주민 상설포럼에 참석한 각 국 원주민 지도자들은 "녹색경제로의 전환이 되레 원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며 "흔히 '아무도 뒤에 남겨두지 앓겠다'고 하지만 과연 선두에 선 서방국가들이 바른 길로 앞장서고는 있는 것인지 돌아볼 때"라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전기자동차에 필요한 광물 채굴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발전소 건설 등이 원주민들의 터전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원주민 옹호단체 문화적 생존(Cultural Survival)은 "전기차 생산을 위해 니켈, 리튬, 코발트 등의 광물을 채굴하는 것이 많은 원주민들로 하여금 부족 내 갈등과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며 "많은 국가들이 2030 탄소중립을 외침과 동시에 정부와 기업이 원주민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환경 비즈니스'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네바다의 인디언 부족인 쇼쇼니-파이우테(Shoshone-Paiute) 지도자 브라이언 메이슨(Brian Mason)은 "파이우테족의 땅에서 진행되고 있는 70개 정도의 리튬 채굴사업은 사전정보 제공이나 동의없이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유엔의 원주민 권리선언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거주지에서 행해지는 개발사업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메이슨은 "미국 내 전기차 생산 확대는 바이든 행정부의 탄소중립 전략을 지원하는 '패스트 트랙'이다"며 "문제는 이것이 원주민을 희생시키고 우리의 몫을 짓밟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보존을 명목으로 원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키는 나라들도 있다. 원주민 비정부기구(Pastoralists Indigenous 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의 에드워드 파록와(Edward Parokwa) 전무는 "수천명의 마사이족이 강제로 탄자니아에 있는 그들의 고향을 떠나야 했다"며 "COP28을 앞둔 시점에 탄자니아 정부는 이를 '보존'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호화 사냥구역을 만들기 위한 속셈"이라고 꼬집었다. 파록와 이사는 "아랍에미리트 국적의 한 대기업이 이를 주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마사이족 원주민들이 아랍에미리트 정부로부터 휴대전화 감시까지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문제는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토착 부족인 사미족의 목축 구역에 그들의 동의없이 풍력발전소를 건설했다. 일전에 노르웨이 대법원이 "사미족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강행한 것이다. 사미족 위원회(Saami Counci)의 군 브릿 레터(Gunn-Britt Retter)는 "사미족 등 원주민의 고향에서 유해한 '지속가능성'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녹색식민주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은 우리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기를 바란다"며 "이산화탄소(CO₂) 배출저감과 대체에너지 생산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것은 토착민과 문화를 존중하는 가운데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주민 당사자들과 권리옹호단체는 일제히 "기후변화를 위한 사업에 원주민들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콜롬비아 제누(Zenú)족의 몬탈보(Montalvo)는 "기후회의가 원주민을 포함하지 않았지만 기후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원주민의 지혜에서 나온다"며 "특히 생물다양성 문제는 토착민의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참여없이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등이 주도하는 기후변화회의에 원주민들의 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원주민을 평등하게 대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지난해 열린 COP27도 원주민을 소외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들이 원주민의 중요성을 언급했지만 정작 '손실 및 피해' 기금에서는 원주민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었다. 물론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기본협약(UNFCCC)에서 원주민 대표단이 공식적으로 참여하거나 이번 포럼에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과 원주민 출신 미국 내무부 장관 데브 할런드(Deb Haaland)가 최초로 기조연설을 하는 등 진전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많은 원주민들은 "아직 갈길이 먼 실정"고 말했다.
국제원주민 청년협회(Global Indigenous Youth Caucus)와 하와이 원주민 권리단체 모두를 위한 하와이(Ka'Lāhui Hawai'i)는 유엔이 원주민 여성과 청년의 안전을 더 잘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인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들은 "우리 대지의 어머니에 대한 파괴와 폭력은 지속되고 있다"며 "토착민, 특히 생명의 보호자이자 운반자인 토착 여성에 대한 폭력이 지속된다"고 말했다. 원주민 여성에 대한 환경 폭력은 최근 유엔 인권조약기구에서 처음 언급된 개념이다. 몬탈보는 "우리는 기후가 어머니 지구의 언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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