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금수조치...해상경로 우선적으로 차단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의 90%를 단계적으로 수입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31일 EU 정상회의에 참여한 샤를 미셸 유럽이사회 의장은 "EU로 향하는 러시아산 원유의 수출을 금지하는데 합의했다"며 "즉각적으로 수입량의 3분의 2를 금수조치해 러시아가 전쟁비용을 대는 재원의 상당량을 삭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도록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겠다는 의도다.
EU의 이번 러시아산 원유 금수조치는 지난번 석탄 수입 전면 금지에 이은 6번째 포괄적 제재안이다. EU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에게 저지른 잔혹행위를 규탄하며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러시아에 5번의 제재를 가했다.
러시아는 EU에 원유를 수출해 매일 10억유로(약 1조3324억원) 상당의 돈을 벌어들이면서 전쟁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EU 차원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금수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달전부터 제기됐다. 하지만 최근 에너지 가격폭등으로 물가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EU 회원국들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기까지 진통을 겪었다.
특히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의 반발이 거셌다. 전 국토가 육지로 둘러싸여 해상 경로를 통해 에너지를 수입하기 쉽지않은 헝가리는 유일한 육상 경로인 '드루즈바 송유관'에 의존하고 있다. 드루즈바 송유관은 러시아에서부터 슬로바키아, 체코, 헝가리 등을 거쳐 독일까지 이어지는 4000km 길이의 세계에서 가장 긴 송유관이다.
해상 수입이 어렵고, 재생에너지 발전이 더뎌 상대적으로 원유 수입 중단으로 인한 충격이 심한 국가들은 드루즈바 송유관을 예외로 둘 것을 요구했다. 반대로 예외를 인정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불만이 겹치면서 EU회원국들은 제재안 도출에 난항을 겪었다. 벨기에와 독일, 네덜란드 등 해상운송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해온 국가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 다른 경로로 원유를 구해야 하는 반면 헝가리는 파이프라인으로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EU는 당장은 수입량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해상 경로를 차단하고, 연말까지 나머지 육상 경로도 줄여나가면서 최종적으로 러시아산 원유의 90%를 금수조치하는 타협안에 막판 합의했다. 이번 원유 금수 조치는 100% 수입 차단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EU가 단행했던 대러 경제제재 가운데 가장 파괴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밖에도 이날 EU 정상들은 러시아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를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제외하고, 러시아 국영 방송사 3곳의 수신을 막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라트비아 총리 아르투르스 크리샤니스 카린슈는 "회원국들이 개별적인 이익에 매몰되면 안된다"며 "물론 이번 조처로 지불할 비용이 늘겠지만, 오직 돈일 뿐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목숨을 댓가로 지불하고 있다"며 EU회원국들의 단합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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