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도시 사막에서 울고있는 낙타들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03-02 15: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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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관계에서 돌봄은 필요하고 소중해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감수성 필요해

몽골의 사막 지대의 한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다. 어미 낙타가 난산 끝에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어미는 자기가 낳은 새끼 낙타를 거부한다. 새끼를 밀쳐내고 젖을 물리지 않는다. 새끼를 떠나 멀리 가버린다. 산고가 그만큼 컸던 것이다. 다른 낙타의 젖을 받아 먹여보지만 새끼는 삼키지 않고 울면서 제 엄마만 찾는다. 그 가족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마침내 가족들은 멀리 도시에 있는 악사를 부른다. 오랫동안 몽골의 전통 속에서 행해지던 의식을 시작하는 것이다. 악사는 바이올린과 비슷한 두 줄 현악기를 연주하는데, 참으로 처연하고 애절한 곡조가 흘러나온다.

악사가 연주를 하는 동안 낙타를 돌보아왔던 며느리가 낙타의 몸을 어루만지며 구슬픈 가락의 노래를 부른다. 단조로운 가사다. 뭔가 애절히 호소하는 듯, 낙타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갑자기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얼어붙은 어미의 마음은 녹여지고 새끼를 수용하는 능력이 회복된다. 노래 가락이 흐르는 동안 가족들은 새끼를 어미에게 데리고 와 젖을 물게 한다. 이제 어미는 수유를 거부하지 않는다. 새끼에게 젖을 먹이면서 어미 낙타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치유 의식이 끝난 후 아기 낙타는 어미젖을 먹기도 하고 어미 몸에 붙어 애교를 떨며 마냥 행복해한다. 어미는 처음으로 새끼와 스킨십을 하며 함께 지낸다. 그날 밤 할아버지 부부와 아들과 며느리, 아이들로 된 그 가족은 텐트 안에서 악사의 연주에 따라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몽골에서 유목을 하며 살아가는 가족과 그들이 키우는 가축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우는 낙타 이야기(The Story of the Weeping Camel)로 방영됐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가슴 울컥하는 감동과 깊은 평화를 느꼈다. 어미 낙타와 며느리라는 두 아기 엄마 혹은 두 여인의 만남과 감정적 공조는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건으로 느껴졌다. 이 이야기는 치유 스토리다. 맑은 영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유목민 가족은 일종의 치유적 공동체였다. 정신분석가 박종수 교수는 그 치유 의식을 '낙타심리치유'라고 명명한다.

이 영화를 반추하면서 돌봄(care)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만남과 돌봄이 이뤄지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눈물 흘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이웃들, 절망의 나락에 내던져진 청년들, 외롭게 살아가는 노인들, 장애인과 그 가족들, 남모르는 아픔으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그 몽골 가족이 가진 생명 사랑, 어미 낙타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 그 며느리의 손길 같은 따스한 어루만짐, 그런 마음과 터치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악사도 필요하고 악기도 필요하다. 과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돌볼 줄 아는가?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적인 돌봄이 이뤄지고 있는가?

◇우리 각자는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돌봄이란 의료인이나 복지사 등 돌봄 전문가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돌봄이야말로 가장 필요하고도 소중한 돌봄이다. 가족이나 친족 사이에서 자녀와 노부모를 돌보는 일이라든지, 친구 사이에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친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우리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이나, 거래 관계나 직장에서도 돌봄이 이뤄질 수 있다.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것도 돌봄이다. 상대방의 말을 귀기울여 경청하고,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분을 존중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연약한 자를 배려하는 일은 더더욱 소중하다. 나의 일과 활동을 통해서도 뜻하지 않는 돌봄의 사건이 일어날 수도 한다.

최근 한 작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었다. 그분이 섬유예술 작품을 전시했는데 한 구매자와 대화하게 됐다. 컬렉터는 4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작가는 작품설명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이 작품은 절벽 시리즈 작품입니다. 자연재해의 절벽, 시간의 절벽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지요. 과거로 되돌아가 지나간 일을 바꿀 수도 없고, 지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절벽들은 대부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것들입니다. '없어져라'고 하면 사라지는 것들이지요. 까짓것 놓아버리면 그 절벽들은 사라집니다. 절벽을 눕히면 대지가 되고 평지가 되기도 합니다. 물의 절벽에서는 떨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이빙을 할 수 있어요. 신나게 다이빙을 하는 거죠. 절벽 위에서 춤을 추세요. 모든 절벽은 내가 만든 절벽일 뿐입니다 …."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성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눈물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 여성을 살며시 안고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여성은 입을 열어 말한다. "이 작품은 절망 앞에 서 있다가 다시 시작하려는 지금의 나의 이야기여서 … 흰 바람들이 마음에 들어서 작품을 구매했어요." 이처럼 우연한 기적처럼 찾아오는 만남과 돌봄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 우리 각자는 돌봄의 사람이 될 수 있다.

◇ 사회적 돌봄의 흐름이 조성되어야

요즘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돌봄과 돌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마을공동체운동이나 지자체에서도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돌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돌봄을 받지만 단지 돈으로 돌봄 서비스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혹은 마을별로 자원봉사자와 전문가들과 행정기관이 돌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돌봄의 질을 높이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망을 만들고자 하는 흐름이 시도되고 있다.

알다시피 산업화와 도시화와 함께 전통적인 부락과 공동체가 해체돼 버렸다. 한 건물이나 아파트에 살면서 벽 하나를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서로에 아무런 접촉도 교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과 문화에서는 공동체적 교류나 돌봄이 이뤄질 수 없다.

정희원 교수는 <지속가능한 나이듦>이란 책에서 돌봄을 위해서는 사회적 자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노인의 경우 사회적 자원은 자신의 자산, 가족, 사회복지 시스템 등을 말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는 아주 산발적이고 분절적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그 종류는 무려 수백 가지에 달한다. 문제는 이러한 서비스들이 제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알아서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이 정보를 알아서 수혜를 받거나 지자체의 문을 먼저 두드려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다. 공동체적인 관계망과 서로에 대한 깊고도 지속적인 관심이 없이는 진정한 돌봄이 이뤄지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 '연민의 마음'이 출발점이다

영국의 한 마을에서 시작된 돌봄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의 프롬 마을에서 주민들이 컴패션 프로젝트(Compassion Project)를 만들어 노인 돌봄의 관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마을 사람들이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그리고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과 촘촘하게 연결돼 그들을 돌보고 있다. 10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community connector)들이 이어져 노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은 영국사회를 뒤흔들고 지구촌에 심원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한국의 우리에게도 큰 도전을 주고 있다. 단지 그 규모와 성과 때문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정신과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의 진정성 때문이다.

'컴패션'은 com과 passion이 합쳐진 말이다. 'com'은 '함께 함' 혹은 '공동체'를 의미하고, 'passion'은 '고통' 혹은 '격정'을 뜻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마음이 '컴패션'이다. 연민, 공감, 자비, 긍휼이라는 한국어로 번역될 수 있다. 돌봄은 바로 이 마음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우리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할 뿐 아니라 설령 관계가 형성되어도 가볍고 전혀 부담이 없는 관계만을 추구한다. 이기주의를 넘어, 초이기주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컴패션은 인간 본유의 성품이다. 하늘의 마음이자 자연의 마음이며 지극히 인간적이고 큰마음이다.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일, 타인의 얼굴을 통해 전해지는 고통을 알아채고 다정하게 손 내미는 일, 그에게 가장 시급하고 적절한 필요를 제공하는 공동체, 그것이 단지 이상적인 희망에 불과한 일일까? 오늘날의 도시 사막에서 울고 있는 숱한 낙타들에게 누가 음악을 들려주며 그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그 고통을 함께 느끼는 '나'이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즉 '공동체'다. 관계의 사막이 메마를수록 돌봄이 더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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