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칼럼] 우리는 난민을 환대하고 있나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1-08-30 17:37:26
  • -
  • +
  • 인쇄
아프카니스탄 조력자 390명 국내 입국 '환영'
명단에 없던 1명 미군 인계조치 '곱씹어봐야'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 활동을 도왔던 현지인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아프카니스탄 조력자 390명이 입국했다.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의 협력자들이기 때문이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들을 데리고 온 수송작전은 기적(작전명도 미라클이다)과 같은 이야기로 소개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신분을 '협력자'로 받아들인 법무부의 조치가 국제사회에서 호평을 받고 이를 통해 국격이 높아졌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무언가 개운치 않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이들은 '특별공로자'로 입국했다. 즉 이들 중에는 단 한 사람의 난민도 없다는 것이다. 이들을 받아들인 것은 한국 정부를 위해 협력한 공로에 대한 대가와 보상인 셈이다. 청와대는 '함께 일한 동료에 대한 도의적 책임'이란 말로 이들의 입국의 정당성을 갈무리했다.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전개돼 선제적으로 이들을 보호하는 조치가 불가피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들을 난민 지위로 받아들일 경우 발생하는 복잡한 난민 수용 절차와 예민하게 촉발될 찬반 논란을 넘어서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아프칸 조력자의 이송 스토리에는 비극적인 한 장면이 있다. 보도에 의하면, 카불을 떠나 기착한 파키스탄 공항에서 명단에 없는 한 사람을 발견해 일행에서 격리시켜 미군에 인계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왜 그를 데리고 올 수 없었나? 서류에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장면을 깊이 조명하고 성찰해야 한다. 그 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난민이었다. 그 한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제한 행위는 난민을 환대하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징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환대에 대하여>에서 환대 개념이 지니고 있는 모순을 지적했다. '환대'라는 말에는 상대방을 손님이요 이방인이라고 보는 뚜렷한 경계선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환대의 도식에서는 나는 주인이고 너는 객이며, 나는 은혜를 베푸는 자이고 너는 보호대상이 된다는 전제가 담겨 있다.

아울러 서구 사회에서 무척이나 강조하는 톨레랑스(tolerance)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관용을 베푸는 자이자 우월한 자이고 너는 관용의 대상이 되는 열등한 존재이거나 관용으로 품어야 할 어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즉 환대나 관용은 우월자적 입장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로 하여금 순수하고 철저하게 환대를 실천하도록 성찰하게 하는 사유가 아닐 수 없다.

아프카니스탄을 둘러싼 배치는 매우 복잡한 함수를 내포하고 있다. 이 영토를 둘러싸고 정신적 종교적 문화적 대립의 선이 강한 선분성으로 그어져 있다. 즉 미국 대 중동, 기독교 대 이슬람, 유태인 대 무슬림이라는 적대적 구도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환대는 유대그리스도교 사상에서 가장 중심적인 윤리다.

성서 전체에는 나그네 즉 난민을 환대하라는 사랑의 계명이 가득하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친 후처 하갈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광야에서 하갈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이때 천사가 나타나 돌본다. 하갈은 이방종교의 여인 즉 이집트 여인이었다. 이 이야기는 약자와 이방인을 환대하는 야웨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서의 맥락과 달리 유태인들과 그리스도교 진영이 유독 배타적이고 특히 무슬림을 적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우리는 난민을 환대하고 있는가. 390명의 조력자들은 넓은 의미에서 난민이다. 그들을 난민보다 우월한 지위로 받아들인 행위는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기관 협력자 이외의 한국기업과 NGO협력자들은 배제했다고 한다. 우리는 난민에 대해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사회의 정서는 유달리 이슬람 혐오와 포비아가 만연하다. 심지어 이슬람 난민을 경계하고 혐오하는 언어들이 등장하기조차 한다. 여러 통계를 보아도 우리 정부는 난민을 아주 까다로운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프칸 조력자'라는 언표(言表)는 우리의 닫혀있음과 배타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도 한때 난민이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숱한 전란들에서 전국토가 유린되고 백성들은 난민이 되어 유랑했었다. 흉년과 가난과 탐관오리의 갈취로 유랑의 길을 택하기도 했다. 가혹했던 일제의 지배로 대규모 유민이 발생했으며, 한국전쟁의 와중에 한반도 전체가 난민의 행렬로 가득했었다. 그 결과 지금도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전세계에 흩어져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한 사람'을 데리고 와 난민 수용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런 일은 위대한 상징적 제스처가 된다. 그렇게 했다면, 아마 우리 사회의 환대가 성큼 도약했으리라.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ESG '환경·사회' 지표 투자전략 반영했더니 지수 수익률 상회"

투자전략에 ESG 세부지표를 반영하면 시장대비 높은 장기수익률과 안정적인 위험관리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ESG 평가 및 투자자문기관 서

'몸짱 소방관' 2026년 달력 만든다...'우리동네GS'에서 사전예약

오는 11월 9일 소방의 날을 맞아 2026년도 '몸짱 소방관 달력'이 나온다.몸짱 소방관 달력의 정식명칭은 '소방관 희망나눔달력'으로, 서울시 소방재난본

SK이노, 에이트린 재생플라스틱 우산에 전과정평가(LCA) 무상 지원

SK이노베이션이 소셜벤처 '에이트린'의 재생플라스틱 우산에 대한 전과정평가(LCA)를 무상 지원한다.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

KT도 '유심' 무상교체 시행...김영섭 대표는 연임포기

KT는 최근 발생한 무단 소액결제 피해 및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 다시한번 사과하고, 고객의 보안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5일부터 교체를 희망하는 전 고

노동부 칼 빼들었다...'런베뮤' 지점과 계열사도 근로감독

고용노동부가 과로사 의혹이 불거진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모든 지점과 운영사인 엘비엠의 계열사까지 근로감독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런던베이글

SPC 허진수-허희수 형제 '나란히 승진'...경영승계 '속도낸다'

SPC그룹은 허진수 사장을 부회장으로, 허희수 부사장을 사장으로 각각 승진 발령하면서 3세 경영승계 작업을 가속화했다.4일 SPC그룹은 이같은 인사단행

기후/환경

+

아마존 '지구허파' 옛말?...14만건 산불로 '탄소배출원'으로 전락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지난해 산림벌채보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유럽연합(EU) 공동연구

韓선박 무더기 운항제한 직면하나?..."탄소감축 못하면 국제규제"

한국 해운업계가 탄소배출을 줄이지 못해 일부 선박이 운항제한이나 벌금을 맞을 위기에 직면했다.기후솔루션은 5일 전세계 100대 해운사의 온실가스

화석연료 못버리는 국가들..."파리협약 1.5℃ 목표달성 불가능"

전세계가 지구온난화를 1.5℃ 이내로 억제하기로 합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5일(현지시간) 미국 시사주간

[뷰펠] 에너지 저장하는 '모래 배터리' 개발...베트남 스타트업의 도전

뉴스트리가 재단법인 아름다운가게 '뷰티풀펠로우'에 선정된 기업을 차례로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뷰티풀펠로우는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단독] 정부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률 '61%안'으로 가닥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가 '61%안'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4일 정부 안팎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5

국제기후기금 97%는 기술에 '몰빵'...사회적 지원은 '찔끔'

국제적으로 조성된 기후기금의 97%는 기술투자에 투입됐고, 사람과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3일(현지시간) 영국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