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과학유산' 무더기 출토...조선전기 금속활자 1600점도 나왔다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1-06-29 12: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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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에서 금속유물 무더기 발견
서양보다 앞서 제작된 금속활자도 나와
기록만 전해오던 세종의 과학유물 출토
▲서울 인사동에서 조선전기 제작된 한글 금속활자 1600여점이 출토됐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15~16세기에 제작된 금속활자 1600여점과 물시계 부속품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천문시계 부품, 조선시대 화포인 총통, 동종 등의 금속유물이 한꺼번에 출토됐다. 유물이 나온 지점은 종로2가 사거리, 탑골공원 서쪽이다. 종로 뒤편에 있는 작은 골목인 피맛골과 인접한 땅이다.

2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금속활자와 물시계 부속품 추정 유물만 도기 항아리에 담긴 채로 발견됐고, 상대적으로 큰 나머지 유물은 주변에서 발견됐다. 활자를 제외하면 모두 일정한 크기로 부러뜨린 채 묻은 것으로 확인됐다. 활자 중 일부는 불에 타 엉겨붙어 있는 상태였다. 

유물이 발견된 곳은 조선 전기까지 한성부 중부 8방 중 하나로, 경제·문화 중심지인 견평방(堅平坊)에 속했다고 한다. 주변에는 관청인 의금부와 상업시설인 운종가가 존재했다고 알려졌다.

발굴조사를 맡은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건물터 형태를 보면 매우 특이하다"며 "관(官)이 지은 건물은 아닌 듯하고, 평범한 일자형 혹은 ㄱ자형 창고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수습한 유물이 일반 민가에서 소유할 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점에서 출토 위치가 상당히 미스터리"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유물 매장 상황을 봤을 때 누군가가 금속품을 모아 고의로 묻었고, 나중에 녹여서 다른 물건으로 만드는 '재활용'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수도문물연구원 관계자는 "도기 항아리를 기와 조각과 작은 돌로 괸 것을 보면 인위적으로 묻은 정황을 알 수 있다"며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화포인 소승자총통이 1588년에 만들어져 가장 늦은 편인데, 1588년 이후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묻었다가 잊어버려 다시 활용되지 못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누군가가 유물을 모아서 폐기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우리 금속활자 기술, 서양보다 앞선 것 '증명'

출토된 유물 가운데 '금속활자'가 가장 이목을 끌고 있다. 한자활자 1000여점과 한글활자 600여점이다. 조선전기 금속활자가 한곳에서 발견된 것도 처음이다.

조선시대는 금속활자에 제작한 해의 이름을 붙인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1403년 계미자(癸未字)로 시작해 1420년 경자자(庚子字), 갑인자 등을 거치며 발전했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에서 1434년 제작해 갑인자(甲寅字)를 붙인 금속활자를 비롯해 1455년(을해자:乙亥字), 1465년(을유자:乙酉字)에 제작된 금속활자가 나왔다. 이는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는 조선시대 금속활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보존하고 있는 임진왜란 이전의 금속활자는 30여점으로, 1455년 무렵 제작된 것이다.

특히 이번 금속활자 출토로 우리나라 금속활자 인쇄술이 서양보다 앞섰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만 유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증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1434년 제작된 금속활자가 나옴으로써 우리나라 금속활자 인쇄술이 서양보다 앞섰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구텐베르크가 144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와 인쇄술을 개발했다.

아울러 한글 금속활자 중에는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적으로 사용된 '동국정운식 표기법'을 쓴 활자와 한문 사이에 쓰는 한글 토씨인 '이며'나 '이고'를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이른바 '연주활자'(連鑄活字) 10여 점도 있었다.


◇ 세종대왕의 과학유산 무더기 발굴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과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 부속품 '주전'(籌箭)의 일부로 보이는 동제품 등 기록으로만 전해오던 세종대왕 시대 과학유산들이 대거 발견됐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 

'일성정시의'는 낮에 해시계로 사용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도구이다. '세종실록'에는 1437년 일성정시의 4개를 제작했다고 기록됐는데, 이번에 이 부품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출토된 '일성정시의' 부품은 원형고리 3점으로 보인다.

원형고리 3점의 명칭은 바깥쪽부터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이다. 주천도분환은 원을 나누는 각도인 365.25도를 등분한 고리이고, 일구백각환과 성구백각환은 하루를 100각으로 나눠 눈금을 새긴 도구다. 일구백각환은 태양을 관측하고, 성구백각환은 별을 볼 때 썼다.

▲ 세종 시기 제작한 천문시계 '일성정시의'에 사용된 원형고리

자격루와 같은 자동 물시계에서 시간을 알리는 시보(時報) 장치를 작동시키는 주전으로 추정되는 동제품은 활자를 제외한 다른 유물들처럼 잘게 잘린 상태로 발견됐다. 동그란 구멍이 있고 '일전'(一箭)이라는 글씨를 새긴 동판, 걸쇠와 은행잎 형태 갈고리가 결합한 구슬 방출 기구로 구성된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 나오는 주전 관련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동제품이 주전이라면 세종 20년인 1438년 제작된 경복궁 흠경각 옥루나 중종 31년인 1536년 창덕궁에 새로 설치한 보루각 자격루의 부속품일 가능성이 있다. 

물시계 자격루나 천문시계 일성정시의는 세종 시기 대표적 발명품으로 거론되지만, 실물은 없는 상황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중앙과학관에 있는 자동 물시계는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들이다. 국보로 지정된 자격루는 중종 31년인 1536년에 만든 유물로, 청동으로 만든 물그릇만 남아있다.

▲물시계 부품인 주전으로 추정되는 금속조각들

총통은 소형 화기인 승자총통 1점과 손잡이를 부착해 쓰는 소승자총통 7점으로 구성되며, 길이는 모두 50∼60㎝이다. '계미'(癸未) 글자가 있는 승자총통은 1583년, '만력무자'(萬曆戊子) 글자를 새긴 소승자총통은 15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소승자총통 명문(銘文, 금석에 새긴 글자) 중에는 제작자인 '희손'(希孫)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박물관 소장 '차승자총통'에도 나오는 이름이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만력무자' 글자 총통은 명량해역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동종은 '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이라는 글자가 있어 1535년 4월에 제작됐음이 확인됐다. 다만 왕실에서 발원(發願, 신에게 소원을 빎)한 동종과는 서체가 다른 것으로 분석됐다. 양식상으로는 15세기 후반에 제작한 '전 유점사 동종'이나 '해인사 동종'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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